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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공간에서는

혜주 慧柱 2005. 7. 8. 13:48


선은 부처의 마음이다. 이 마음은 우리가 일상으로 쓰고 있는 그런 마음이 아니다. 이 마음은 부처가 깨달은 뒤 나온 마음이라는 것이어서 범부중생이 쓰고 있는 마음과 깨달은 사람이 경험한 뒤 나온 마음은 언어는 같이 쓰고 있으나 다르다. 깨달은 뒤에 경험에서 온 마음의 뜻과 깨닫치 못한 범부중생의 마음은 구별되져야 한다. 깨달은 뒤에 온 마음의 성품은 불성 혹은 자성이라 표현되어 지고 있다. 그 경험한 내용은 경에 자세히 설명 해 놓았다. 다시 말을 붙이면 깨달음이 오기 전의 마음을 설명하므로 이 설명 되어진 마음이 깨달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眞 깨달은 마음은 설명할 수 없으니 깨달음 아님 마음을 깨달아 놓으므로 스스로 경험되어 질 수 있는 것이 있으니 경험하라는 것이 불의 가르침이다. 이것은 심법이어서 아는 마음으로는 접근이 안 되니 심행 처멸이니, 언어도단이니, 생각이 끈어져야 된다느니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험이 오면 심안이 생겨 어떤것을 지키지 않고 보는 눈을 갖게 된다. 이것을 지혜라고 하는 것이다. 이 지혜는 아는 마음을 벗어나 있으면서 아는 마음을 쓰고 있으나 아는 마음에 물들지 않고 있으므로 아는 것에 초연해 있다. 그래서 일반인이 쓰고 있는 마음을 꾀 뚤러 볼 수 있는 것이다. 실참에서 경험한 지혜있는 자는 의리로 그려진 마음을 구별 하게 되니 의리선을 잡아내어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소위 말하는 선지식인 것이다. 이것을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은 불의 뜻을 바로 아는 사람이다. 중생 마음과 불의 마음을 구별하는 지혜가 있어 척사 현정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척사 현정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바른 공부길로 들어가기가 쉽다. 이런 사람은 옛과 지금을 둘로 보지 않으며 중생과 불을 또한 둘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지혜가 있어서 구별하되 구별에 머무르지 않으므로 중생속에 있으면서 중생의 마음에 물들지 않는다. 그리고 중생의 마음을 구별해 내는 것이다. 이것은 반듯이 옛것과 지금에 뚫러져 있어야 한다. 이 말은 불의 마음과 중생 속에 있는 불의 마음이 하나이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스스로 사람 안에 있는 불을 가려 버리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알아 말해 줌으로 깨침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의 마음은 불의 마음이고, 사람 안에 물들지 않는 마음이 곧 禪의 마음인것이다. 그래서 이 禪문에서는 心법을 씀으로 마음을 떠나있는 말은 그 말을 이해가 되어진 말이든 안되어진 말이든 중요한 것이 아니어서 따라 다니지를 않는다. 옛사람들의 표현에 화살이 신라로 가버렸다는둥 활이 이미 활 줄을 떠났다는둥 .... ...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는 죽은 말(타는 짐승)에 침을 안준다는 등의 말들은 마음을 떠나 버려 의리로 선을 그리므로 의리선이라고 하는 말이 나온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이런 가상공간에서 이런 답을 하고 묻는것이 가능이나 할까? 첫째 , 마음이 일어나자 마자 상대에게 전달되기도 전에 시간이 지나가 버린다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법을 헤아림으로 전달이 가능하겠는가? 헤아리는 즉시 멀어지니 서로 상면해야 하는 것이다. 서로 상면해서도 서로의 법을 향하는 바른 믿음이 갖추어짐이 결여되면 서로 어긋나니 큰 믿음이 없는 이에게는 사량하는 마음속에 있음이 분명해 진다. 이런것 때문에 옛사람들은 필답을 꺼려했다. 활구니 말후구니 또는 사구니하는 말들을 내 놓았던 것이다. 이런 성질을 아는 사람은 묻고 질문하더라도 이런 성향을 참작해서 진실을 찾아야지 자신이 가상속에 있는 상태에서 실상의 답을 요구하는 것은 가상공간을 현실로 전도몽상하여 진실이 전해 지기를 기대하는 저 켠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서로간에 바른 예의와 믿음, 최대한의 진실이 담긴 정성스런 간절함이 보이면 인연따라 어느 부분까지는 가능한 부분도 표출해 낼 수는 있다고 본다. 그러나 마침내는 사람을 만나야 함은 기정 사실인것이다. 실물을 등진, 가상 공간에서는 분명한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고 말하는 것이 건강한 자의 기본이 될 것이다. 잘못되면 비겁한 인격을 만들어 내고 정신분열을 조장하는데 큰 영향을 미침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新 문명이 만들어 낸 기계, 이 기계 앞에 앉아서 선을 공부하고 선 문답이라고 주고 받는것은 현대인을 가상 공간속으로 끌고 들어가 중독시켜 버리는 신종 문화병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약간의 얇고 깊이가 있을 뿐 이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귀의불 양족존, 귀의법 이욕존, 귀의승 중중존..()()()... 회오리 선이라 칭하는 화두찾기 놀음이 문제입니다. 불교의 꽃인 참선을 수행치 않고 그저 탁마나하자 하고 말 장난으로 일색되어 지고 일선의 교법만으로 뭇중생들을 희롱하는 자들이 많은 때입니다 경전공부와 참선을 병행하지 않고 단지 말장난으로 가는 병폐를 조심하여야 할것같습니다. 나무승가 () 07/03 오후 3:33 無底船 화두찾기 놀음 유행 가만이 있는 부처 얼굴에 진흑으로 화장을 하니 그 금색갈이 온데 간데 없어 졌구나. 그러나 색갈없는 부처 얼굴이 진흙에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공연히 일어나는 생각을 주체 못해 꿈 속에서 불을 그리니 항상 미소 짓고 있는 부처를 언제나 맞이 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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