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행복을 향해 가는 길
행복을 향해 가는 길 - 세 가지를 닦음
나는 이미 진정한 행복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무한한 행복의 세계를 열어 보이신 부처님을 만났고, 그 가르침을 들으면서 나와 세상을 보는 눈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그렇게 달라진 것만으로도 예전에 느끼던 괴로움과 불만족이 어느새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부처님은 당신이 도달하셨던 행복의 세계로 나를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부처님이 보여주신 행복에 이르는 길은 정말 쉽고,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길입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윤리적인 행위를 위한 규칙을 지킨다. (戒) 둘째, 마음이 집중되고 평온하게 유지되도록 닦는다.(定) 셋째,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보는 지혜를 기른다.(慧) |
얼마나 간단하고 명료합니까? 그러면서도 어디 하나 빠진 것이 없어서 이 세 가지만 닦으면 괴로움과 불만족을 멀리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선 보십시오. 비윤리적인 행위를 하면 우리는 반드시 그 결과로 오는 괴로움을 겪게 마련입니다. 비윤리적인 행위를 하고서도 평화롭고 행복할 수 있다면, 그러한 세상은 정말 뒤죽박죽이 될 것입니다. 착하게 살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며, 건전하게 미래를 설계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지금 하는 행위가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오든 나중에 오든 반드시 온다는 믿음이 깨지면, 우리는 아예 설계를 할 수가 없겠지요. 우리는 나쁜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그 결과로 올 괴로움을 벗어나려고 설계를 합니다. 그리고 올바른 행위를 할 때 우리의 마음은 평화롭고, 그 뒤에 오는 결과 또한 좋습니다. 수학 공식처럼 결과가 그때그때 딱 들어맞게 오지는 않지만 부처님께서는 좋은 행위에는 좋은 결과가 오고 나쁜 행위에는 나쁜 결과가 온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 큰 지혜에서 나온 말씀을 나는 믿습니다. 우리가 무한한 시간과 무한한 공간을 살필 능력이 없기에 그것을 뚜렷이 알지 못할 뿐, 행위와 그 결과가 분명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나쁜 행위를 해서 험한 결과 속에 빠져 들면 그 괴로움이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짧은 내 삶을 통해서도 절실히 느낍니다. 일단 그렇게 나쁜 상황 속에 들어가게 되면 아무리 지혜를 발휘하고 마음을 써도 그 괴로움을 벗어나기 힘듭니다. 그러니 우선은 우리가 좋은 행위를 해서 좋은 결과를 누리는 것이 행복의 첫 번째 조건일 것입니다.
한번 가난의 고통 속에 빠져 보십시오.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은 헛소리입니다. 마음을 잘 막으려 해도 먹을 수 없는 부대낌이 있습니다. 너무나 괴로워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바로 보려는 마음 자체를 일으키기도 힘듭니다. 그러니 우선은 올바른 행위를 하는 규칙을 지녀서 나쁜 업보를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으로 집중되고 평온한 마음을 갖는 것도 괴로움과 불만족을 여의는 데 필요합니다. 마음이 들뜨고 산란하며, 불안한 것 자체가 우선 큰 괴로움입니다. 격정에 사로잡히거나 분노에 휩쓸린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괴로운 일입니까? 그리고 그 결과는 또 얼마나 괴롭습니까? 또 결정과 분노, 산란함 등의 마음 상태로는 올바른 행동을 하기 힘듭니다. 그리고 세상을 바로 보는 눈을 가질 수도 없습니다.
눈에 콩깍지가 씌워진다고 하든가요? 집중과 평온을 잃은 마음은 바로 눈에 콩깍지를 씌우는 주범입니다. 물에 파도가 일면 그림자가 일그러지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의 파도 역시 세상의 모습을 온통 뒤틀어져 보이게 만듭니다. 그렇게 파도가 인 상태에서 하는 행위 또한 절대 올바른 행위일 수 없습니다.
불안하거나 격정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하는 행위는 늘 후회와 탄식이 뒤따르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반대로 집중하여 차분하고 평온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면 어떤 사태나 사물의 깊은 면이라도 통찰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런 마음 상태에서 나오는 행위는 평화롭고 올바르며, 즐거움과 행복을 더해주는 결과를 낳습니다.
마지막으로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는 지혜는 정말 중요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이야기하는 내용 자체가 바로 지혜에 해당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그 가르침에 눈을 떠서 세상을 바르게 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많은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우리들을 괴롭고 불만족스럽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은 우리의 올바르지 못한 견해입니다. ‘덧없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나라는 것’이 있다는 잘 못된 관념을 가지는 것은 거의 모든 괴로움의 뿌리가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올바르게 눈을 떠 세상을 바르게 보는 것이 괴로움을 벗어나는 첫걸음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바르게 세상을 보지 않고 서야 어떻게 괴로움을 벗어나는 길을 시작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부처님의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만 이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항상 성찰하는 눈을 뜨고, 자신이 지닌 지혜의 힘을 꾸준히 키워 나가야 합니다. 우리들은 본디 지혜가 있고, 그 지혜는 닦으면 닦을수록 빛이 나고 힘을 키울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는 것을 바탕으로 하면서 우리가 본래 지닌 지혜의 눈을 크게 떠야 할 것입니다.
위의 세 가지는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다른 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올바른 행위가 아니면 그 행위를 하는 순간 마음이 평온이 깨지고 집중도 흐트러집니다. 그리고 그 행위의 결과로 오는 나뿐 조건들이 우리를 괴롭게 하여 마음의 평온과 집중을 깨뜨립니다. 마음의 집중과 평온이 깨지면 물에 파도가 일어 그림자가 이지러지듯, 세상의 참된 모습을 바로 볼 수 없습니다.
다른 것에서 시작해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올바른 지혜가 없으면 올바른 행위나 집중되고 평온한 마음도 없습니다. ‘덧없음’과 ‘나라는 것이 없음’을 바로 본 사람의 마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마음은 차원이 전혀 다릅니다. 바로 본 사람은 웬만한 일에 흔들리지 않는 집중과 평온을 유지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은 전혀 그렇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 각각의 행위가 어느 쪽이 올바른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이처럼 이 세 가지 수행은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으며, 이 세 가지가 함께할 때 우리를 온전하게 행복으로 인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