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방문인참문어록과 부처님말씀등

11, 서로 등불이 되고, 울타리가 되어

혜주 慧柱 2007. 1. 1. 22:11
 

서로 등불이 되고, 울타리가 되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부처님 가르침을 따라 행복을 찾는 길을 순탄하게 걸어온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이 좌절했던 지요. 또 얼마나 많은 방황과 이탈이 있었던 지요. 부끄러워 다 말하지 못합니다. 못나 빠진 내가 이렇게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면서 씩씩하게 행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은 많은 벗들이 저를 옹호해주고 이끌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길로 이끌어 주는 도반을 선지식(善知識) 또는 선우(善友)라고 한다 하지요. 내가 흔들리고 벗어날 때마다 용기를 주고, 부축해준 선우들이야말로 부처님 다음으로 고마운 인연들입니다. 부처님께서 “선우를 만나는 것은 도를 거의 다 이룬 것과 다름없다”라고 말씀하신 뜻을 마음 속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내가 어둠에 휩싸였을 때 등불이 되어주고, 내가 바른 법을 벗어나려 할 때 울타리가 되어 주었습니다.

이제는 저도 그분들에게 등불이 되고, 울타리가 되고 싶습니다. 꼭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등불이 되고 울타리가 되면서 함께 손잡고 나아가고 싶습니다.

부처님 나라를 건설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처님 나라를 장엄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 부처님 나라는 아득히 먼 어느 땅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우리들이 함께 손잡고, 이 세상을 좀 더 밝고 따뜻하게 만들고, 좀 더 살맛나는 세상으로 바꾸어 가는 것이 바로 부처님 나라를 세우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우선은 내가 주변을 밝히고 따뜻하게 만들어 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지만, 나 혼자만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배움과 깨달음은 자신의 의지에 달린 문제겠지만, 그것을 이루어가는 과정은 함께 손잡고 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좋은 일은 나 혼자 하는 것 보다는 힘들고 귀찮더라도 여럿이 함께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훌륭한 일에 동참하는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고, 또 그 늘어난 사람들이 여러 사람들과 함께 부처님 뜻에 맞는 좋은 일은 이루어 나간다면 이 세상은 차츰 부처님 세상으로 바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자랑스런 부처님 나라를 여기 이 땅에 세우는 동지이며, 그 부처님 나라가 장엄하게 이루어질 때 그 속에서 함께 행복을 누릴 부처님 나라 공동체의 시민입니다. 우리들이 손과 손을 맞잡고 이루는 공동체가 커 나가는 것이 바로 부처님 나라가 넓어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온 세상이 서로에게 등불이 되고 울타리가 되는 사람들로 가득할 때 부처님 나라는 완성될 것입니다.

이렇게 이루어 가는 부처님 나라 공동체의 중심에는 스님들의 출가 공동체가 자리합니다. 그리고 재가자들의 공동체가 출가 공동체를 옹호하고 받들면서 커다란 사부대중의 공동체를 만듭니다.

출가자들은 일반 재가자들이 누리는 즐거움을 포기하고, 부처님의 교단을 이어가는 중심 역할을 하는 데 생애를 바칩니다. 또 재가자들이 짊어지는 현실적인 의무에서도 벗어나, 온 힘을 기울여 부처님 가르침의 깊은 뜻을 밝히고, 수행으로써 그것을 몸에 체득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재가자들은 세속적인 의무를 다하면서 출가자들을 지원하고 옹호하며, 그분들이 온 삶을 던져 밝혀내고 체득한 부처님 가르침을 현실의 삶 속에 실현합니다.

물론 출가자나 재가자나 부처님 가르침을 지금 이 생애에서 깨치고 실현하겠다는 서원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역할이 다를 뿐이지요. 그들은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라는, 부처님 나라의 큰 법당을 세우는 네 개의 기둥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선 이 부처님의 공동체 속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실현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너와 나의 차별을 넘어서 모든 것을 평등하게 보는 지혜가 씨줄이 되고, 모든 생명을 두루 사랑하며 그 생명들이 평화와 행복을 누리도록 하는 자비의 정신이 날줄이 되는 그런 공동체를 만들어 나갑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부처님 공동체의 아름다운 정신과 규범이 확산되어 모든 생명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세계, 화합과 평화가 충만한 사회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부처님의 공동체는 폐쇄적이거나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진실한 불자이며 위대한 왕이었던 인도의 아쇼카왕의 선포는 불교의 종교적 관용성을 대변합니다.


자기 종교만을 숭배하고 다른 이의 종교를 비난하는 행위를 하지 말 것이며, 남의 종교도 존중할지어다. 그렇게 하면 자기 종교의 성장에 도움이 되며, 남의 종교에도 똑같이 도움을 주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종교의 무덤을 파게 되며, 다른 종교에도 피해를 주게 된다. 화합은 훌륭한 것이다. 다른 이가 가르친 교리에도 귀를 기울일지어다.

불교 교단과 불교 공동체의 일원인 불자들은 이와 같이 다른 종교의 가르침과 다른 종교인의 삶을 존중합니다. 다투려 하기보다 그들의 가르침에 담긴 귀한 점들에 귀 기울이며, 더더욱 훌륭한 모습을 가지게 되는 자신들의 모습을 통해 가르침을 전합니다. 이러한 불교의 성격은 종교 다원주의 사회에서 불거지는 종교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탁월함이 있습니다. 다투어서 억지로 불교가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기보다는, 차분하게 스며들어 불교의 정신이 구현되는 그러한 세상을 이루고자 하는 불교의 모습은 참으로 이상적인 현대의 종교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러한 종교 공동체의 일원인 것이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행복한 존재로서 사는 참된 생명을 구현하신 부처님은 궁극적 지향점에서 내게 손짓하며 부르십니다. 그분이 가르치신 진리는 나의 가슴에 환하게 빛나며 나에게 올바른 길을 보여줍니다.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는 거룩한 공동체는 나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 그 속에 부처님 나라를 세워 온 누라를 불세계로 만드는 희망찬 미래를 보여줍니다. 그 가운데 부족하고 어리석지만, 이제는 생명의 참모습을 살현하면서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내가 있습니다.

아직도 먼 여정이 남아 있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함께 가고 있는 벗들의 따뜻한 격려, 그들과 손잡고 가는 길은 힘들지 않습니다. 아니 그 길을 함께 걷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큰 행복입니다.

진리의 불을 밝혀 우리를 인도하고, 괴로움의 바다를 건너는 희망찬 항해를 하도록 해주신 부처님의 큰 은혜에 감사드리는 나날, 정말 나날이 좋은 날입니다. 완전한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나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