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8~9
8,
스승이 물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훌륭한 젊은이, 훌륭한 딸들이 이‘끝없이 넓은 우주를 일곱 가지의 보배로 가득 채워 여래 ․ 존경받을만한 사람 ․ 올바로 깨달으신 사람들에게 보시를 했다면 그 훌륭한 젊은이 ․ 훌륭한 딸들이 그 일로 인하여 많은 공덕을 쌓는 것이 될까?”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스승이시여, 행복하신 분이여, 그 훌륭한 젊은이들과 훌륭한 딸들이 이 일로 인하여 많고 많은 공덕을 쌓는 것이 됩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스승이시여, ‘여래에 의해서 설해진 공덕을 쌓는다는 것은 공덕을 쌓지 않는 것이다.’라고 여래가 설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래는 ‘공덕을 쌓는다. 공덕을 쌓는다.’라고 설하신 것입니다.
스승은 말하였다. “그래서 또다시 수보리여, 훌륭한 젊은이들, 훌륭한 딸들이 있어 이 광대한 우주를 일곱 가지의 보물로 가득 채우고, 여래 ․ 존경받을 만한 사람 ․ 올바로 깨달은 사람들에게 보시를 한다 하더라도, 이 법문으로부터 사행시(四行詩) 하나라도 끄집어내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면, 이쪽 일이 이 일 때문에 가장 많은 측량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는 공덕을 쌓는 것이 된다.
그것은 왜냐하면 수보리여, 실로 여래 ․ 존경받을 만한 사람 ․ 올바로 깨달은 사람들의 이 위없는 올바른 깨달음도 이로부터 생긴 것이며, 깨달으신 사람인 세존(世尊)도 또 이로부터 태어나셨기 때문이다.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 수보리여, ‘깨달은 사람들의 이법(理法), 깨달은 사람들의 이법이란 깨달은 사람들의 이법이 아니다.’라고 여래께서 설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깨달은 사람의 이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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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영원한 평안에의 흐름을 탄자[須陀洹]’가 ‘나는 영원한 평안에의 흐름을 탄자라는 성과(成果)에 도달해 있다.’고 하는 생각을 일으킬 것인가?”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스승이시여, 그러한 일은 없습니다. 영원한 평안에의 흐름을 탄자가, ‘나는 영원한 평안에의 흐름을 탄자의 성과에 도달해 있다.’ 이와 같은 생각을 일으킬 까닭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스승이시여, 실로 그는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영원한 평안에의 흐름을 탄자[須陀洹]’라고 불려지는 것입니다. 그런 형태를 얻는 것도 아니고, 소리나, 냄새나, 맛이나, 느낌의 대상이나, 마음의 대상이 나를 얻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평안에의 흐름을 탄자’로 불리는 것입니다. 스승이시여, 만약에 영원한 평안의 흐름을 탄자가, ‘나는 영원한 평안의 흐름에 탄자라는 성과에 도달했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면, 그에게는 자아에 대한 집착이 있는 것이 되며,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집착, 개체에 대한 집착, 개인에 대한 집착이 있게 될 것입니다.”
스승은 물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또다시 한 번만 태어나면 깨닫는 자[斯陀含]’가 ‘다시 한 번만 태어나면 깨닫는 자의 성과에 도달했다.’라는 생각을 일으킬까?”
수보리는 대답하였다. “스승이시여, 그러한 일은 없습니다. 또다시 한번만 태어나면 깨닫는 자가, ‘나는 다시 한 번만 태어나면 깨닫는 자라는 성과에 도달했다.’라고 하는 생각을 일으킬 까닭이 없습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다시 한 번만 태어나면 깨닫는 자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것’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한 번만 태어나면 깨닫는 자[斯陀含]’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스승이 물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제는 결코 다시 태어나 오지 않는 자[阿那含]’가 ‘나는 이제 다시 태어나서 오지 않는 자라는 성과에 도달했다.’라는 생각을 일으킬 것일까?”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스승이시여, 그러한 일은 없습니다. 이제는 다시 태어나 결코 오지 않는 자가, ‘나는 이제는 결코 다시 태어나 돌아오지 않는 자라는 성과에 도달했다.’라는 생각을 일으킬 까닭이 없습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스승이시여, 실로 이제는 결코 다시 태어나 돌아오지 않는 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어떤 것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결코 다시 태어나서 돌아오지 않는 자[阿那含]’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스승이 물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존경받을 만한 사람[阿羅漢]’이 ‘나는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되었다.’라는 생각을 일으킬 것일까?”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스승이시여, 그러한 일은 없습니다.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나는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되었다.’라는 생각을 일으킬 까닭이 없습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스승이시여, 실로 ‘존경받을 만하다.’라고 불려질 그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존경받을 만한 사람[阿羅漢]’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스승이시여, 만약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나는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일으켰다고 하면, 그에게는 그 자아(自我)에 대한 집착이 있게 되고,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집착, 개체(個體)에 대한 집착, 개인에 대한 집착이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왜야하면 스승이시여, 여래 ․ 존경받을 만한 사람[應供] ․ 올바로 깨달은 사람[等正覺]은 저에 관해 ‘다툼이 없는 경지를 즐기는 제일인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스승이시여, 저는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며, 욕망이 떠나 있습니다. 그러나 스승이시여, 저는 ‘나는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며 욕망이 떠나 있다.’라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스승이시여, 만약 제가 ‘나는 존경받을 만한 상태에 도달해 있다’라는 생각을 일으키고 있다면, 여래가 저를 두고, ‘훌륭한 젊은이인 수보리가 다툼을 떠난 경지를 즐기는 제일인자이며,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으므로 다툼을 떠난 자이다.’라는 말씀을 단언(斷言)하시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