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중심으로 나아가라
“내 안의 중심으로 나아가라”
초하루 법문을 마친 정관스님과 마주 앉았다. 바로 전날 성지순례에서 돌아왔음에도 피곤한 기색이 전혀 없다. 본래지에 머무는 것이 얼마나 생동감 있고 싱그러운지를 스님의 환한 얼굴에서 읽는다.
“본래지 마음이 신(神)입니다. 마음 밖의 다른 신은 있을 수 없어요. 부처님 법에는 자성이 신이지 그 자리 따로 신 따로가 절대 아닙니다. 불교가 가야 할 길은 본래지의 증득입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에 가보니 다신(多神)을 숭배하면서 여기 저기 신을 모시는 탑을 조성해놓고 신에 대한 공포심에 시달리며 살고 있어요. 그것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부처님 가르침을 알게 된 것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어요. 신에 대한 공포 대신 본래부터 밝고 밝은 본래지를 향하는 바른 정진, 바른 지혜를 닦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스님은 무지에서 벗어나는 것의 소중함을 거듭 강조했다. 어리석은 소견은 안식을 가져다 줄 수 없으며 안식이 없이는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아무리 높은 지위에 올라도 진정한 행복에 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안식(安息), 그것은 인간의 구경(究竟)입니다. 왜 참선을 해서 본래지를 증득해야 하느냐 하는 이유가 여기서 나와요. 지금 세상 돌아가는 것만 봐도 물질이나 계급이 영원한 안식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어요. 물질도 계급도 늘 변화하잖아요. 그러나 그것을 가진다는 것이 일시적인 위안은 되겠지만 안식을 가져다주지는 못합니다. 세계대통령이 되어도,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어도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부처님께서 왕궁도 마다하신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본래지를 증득해야 안식자가 됩니다. 안식자, 독거락자(獨居樂子)가 되는 길은 지식으로 배워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 밝고 밝아 있는 본래지가 우주에 가득하니 간절한 신심을 일으켜 하루하루 꾸준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정진을 해야 합니다. 이유를 달지 말고, 결과를 바라지도 말고 그저 묵묵히 하는 그것뿐입니다.”
사탕을 물고 있는 아이의 표정은 행복하다. 그러나 사탕을 빼앗기면 아이는 금방 울음을 터뜨린다. 우리의 인생은 사탕에 연연하는 아이와 닮았다. 원하는 것을 가지면 웃다가 그것을 놓치면 울고 마는 끝없는 반복, 그 반복의 고리를 끊고 영원한 안식을 얻는 길이 불교의 구경이고 인간의 구경이다.
“사람들은 태풍을 겁내요. 그러나 진리에서는 태풍보다 더 무서운 게 변화입니다. 갑자기 변하면 더 무서워요. 멀쩡하던 눈이 갑자기 안보이게 되거나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암 환자가 되거나 하는 일이 하루아침에 일어나요. 그 변화 앞에 속수무책입니다. 늘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업이 두터운 사람들은 그 변화가 자신에게는 안 올 줄 알아요. 부처님께서 제행무상(諸行無常)을 설하시고 수천 년 전부터 변화에 대해 말씀해 놓으셨지만 그것을 알아듣고 곧바로 발심하거나 변하지 않는 것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은 드물잖아요. 이 몸뚱이는 변화합니다. 아무리 애지중지 보살펴도 늙어서 병들어 나를 배신해요. 잘 들리던 귀도 나를 배신하고 잘 보이던 눈도 나를 배신하는데 발톱에까지 꽃을 그려 넣으며 호들갑 떨면서도 나를 배신하지 않는 영원한 친구를 찾을 생각은 안 해요.”
영원히 나를 배신하지 않을 친구, 그 친구가 바로 본래지다. 스님은 영원히 나와 함께 할 본래지를 찾으라고 간곡히 권했다.
“세상은 바뀌어도 따뜻한 것을 따뜻하다고 알고, 찬 것을 차다고 아는 냉난자지(冷暖自知)는 누구나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면 언제부터 갖추고 있느냐하고 물어봅시다. 언제부터가 없어요. 본래부터지. 언제까지가 안 나와요. 그리고 그 본래부터는 언제까지냐. 그 끝도 안 나와요. 억만년이 흐른 뒤에 딴소리를 한다면 그건 진리가 될 수 없어요. 진리는 하나이고 진리에는 고금이 없어요. 본래지가 바로 그래요.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찬 것을 차다고 알고 뜨거운 것을 뜨겁다고 아는 그것은 변하지 않아요. 이 자리는 바뀌지 않고 영원히 나를 떠나지 않고 나를 배신하지 않아요. 눈물이 핑 돌만큼 반갑고 고마운 소식입니다.”
그러나 본래지는 책에서 배워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어떤 모양이 있거나 어떤 특정한 곳에 있거나 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없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사람들은 길을 잃는다. 그러나 길이 끊어진 곳에서 길이 시작된다.
“부처님이나 우리나 축생이나 모두 똑같은 본래지의 자리는 있다거나 없다고 잠을 찍을 수가 없어요. 부처님께서 점을 찍었다면 지금쯤 반론을 펴는 사람들이 많았겠지요. 어디에 점을 찍지 않았기에 진공묘유입니다. 점을 찍으면 상이 되고 개체가 되어 버려요. 허공처럼 텅 비어 있으면서도 무엇이든 다 담을 수 있는 그런 전체가 본래지입니다. 있다고 해도 안 되고 없다고 해도 안 되고 없으면서도 있고 있으면서도 없는 진공묘유가 바로 여기서 나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말은 쉽게 한다고 해도 그것을 자신이 손으로 만지듯 실감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어요. 경전공부도 하고 참선공부도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해요. 직접 체험을 해야 합니다. 공덕을 짓고 수행하는 것이 본래지를 향한 끝없는 길 위에 서는 것입니다.”
스님은 지금까지 오늘의 정진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성지순례 동안, 호탈에서도 하루 정진을 거르지 않았다. 스님은 정진에‘이유를 달면 안 된다.’고 했다. 이유를 달기 시작하면 정진을 이어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야생화하고 자주 얘기를 나눕니다. 사람이 오든 안 오든 때가 되면 피고 지는 야생화를 보면 공부도 야생화처럼 해야겠구나 하고 배우게 돼요. 남이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묵묵히 수행해야 합니다. 요즘 신도들 중에는 하루 철야정진하고 그 다음날 쓰러져 자고 이런 사람들 많아요. 한 사흘 열심히 하다가 때려치우고. 그렇게 정진해선 안 돼요. 언제나 처음처럼 그리고 마지막인 것처럼 간절히, 또 간절히 참구하는 그런 정진을 해야 합니다. 이유를 달지 마세요. 정진을 못할 이유는 백 천 가지도 더 넘어요. 그냥 이유를 달지 말고 하는 것 그 즐거움에 빠져야 합니다. 밤길을 가다보면 환하게 날이 새듯이 그 즐거움이 바로 최고의 길이고 목적지입니다.”
스님은 홀로 있어도 즐겁다. 그렇게 홀로 선 사람은 바깥으로 타인을 괴롭히지 않는다. 홀로 서지 못한 사람은 외로움을 견디기 어렵다. 늘 바깥으로 구하고 타인을 괴롭힌다. 스님은 준비 없이 맞이하는 노년에 대해 우려했다.
“사람 몸뚱이만큼 불쌍한 게 없어요. 늙으면 쓸쓸하고 고독해요. 그렇게 믿었던 육신은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좋은 음식도 맛나게 먹을 수가 없고, 돈이 아무리 많아도 재미있게 쓸 수도 없게 됩니다. 자기에게 남는 것은 고통, 슬픔, 그리고 중한 병뿐입니다. 평생을 육신에만 탐착하고 육신의 주인공인 본래지를 신(信)하지 않고 살아왔으니 의지처가 없는 것과 같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준비를 해야 합니다. 변화하는 것을 쫓지 말고 변화하지 않는 내 마음의 주인을 구해야 합니다. 본래지를 섬기고 본래지를 사랑하고 본래지를 신행하고 본래지를 참구하고 본래지를 관조하고자 발심한다면 무상의 재앙을 벗어나게 됩니다.”
세세생생 동반자가 되어 줄 친구를 만나, 더 이상 사탕에 연연하지 않기, 그것이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것이고 홀로 서는 일임을 본래지당을 나서며 다시 새긴다. 독거락자의 길, 그 길을 묵묵히 걷게 되길 발원하면서 우주의 중심에서 내 안의 중심으로 나아간다.
글 = 천미희 객원기자(수필가 ․ 현대불교신문 논설위원)
정관스님은
매일 새벽, 하루 일과를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며 시작한다. 오늘도 하늘을 볼 수 있는 게 고맙기 때문이다. 매일의 정진, 붓글씨, 보건체조 등은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은사스님인 동산 스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매일 마당을 쓸고 어디에 가든 예불을 잊지 않았던 은사스님을 세월이 갈수록 닮아 간다. 수행지침서인<간화선의 길>로 참선자들에게 길을 열어보였던 스님은 매주 화요일 오후 1시 30분부터 3시 30분, 토요일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 재가자들을 대상으로 참선을 지도하고 있다. <죽음이 없는 낙><인도성지참배><하늘같은 자유>들 간단명료하면서도 시원한 문장으로 진리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책을 여러 권 펴냈다. 또한<본래지는 마음이 신이다>출간을 앞두고 있으며, 인도네시아 성지순례의 느낌과 감상도 펴낼 예정이다. 1933년 경주에서 태어난 정관 스님은 1954년 동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후 14안거를 성만하고 금정학원 이사장, 대한불교 어린이지도자연합회 회장 등 포교의 중심에서 서기도 했다. 이제 본래지당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본래지의 길을 묻는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본래지당(本來知堂). 영주암 조실 정관스님이 주석하는 당우에 걸린 현판이다.
‘본래지당(本來知堂)’이라고 다시 한 번 읽으며, 영주암 대웅전에서 왼쪽으로 돌아앉아 있는 정관스님의 거처가 불현듯 우주의 중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본래지, 그것은 이 세상 모든 존재가 가야 할 본향이자 귀의처이기 때문이다. 본래지에 머무는 것, 본래지로 돌아가는 길이 정관스님이 손수 써놓은 현판에 담겨 겨울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