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기술+참선곡, 행불어록

경허스님 참선곡 전문

혜주 慧柱 2009. 8. 7. 17:41

참선곡(參禪曲)

경허스님(鏡虛 : 1846~1912)

 

홀연히 생각하니 도시몽중(都是夢中)이로다.

천만고 영웅호걸 북망산(北邙山)에 무덤이요.

부귀 문장 쓸데없다 황천객(黃泉客)을 면할소냐?

오호라, 나의 몸이 풀끝에 이슬이요 바람 속에 등불이라.

삼계대사(三界大師) 부처님이 정녕히 이르시되,

마음 깨쳐 성불하여 생사윤회(生死輪回) 영단(永斷)하고,

불생불멸(不生不滅) 저 국토에 상락아정(常樂我淨) 무위도(無爲道)를

사람마다 다 할 줄로 팔만장경(八萬藏經) 유전하니,

사람 되어 못 닦으면 다시 공부 어려우니 나도 어서 닦아 보세.

닦는 길을 말하려면 허다히 많건마는 대강 추려 적어보세.

앉고, 서고, 보고, 듣고, 착의끽반(着衣喫飯) 대인접어(對人接語)

일체 처, 일체 시에 소소영령(昭昭靈靈) 지각(知覺)하는 이것이 무엇인가?

몸뚱이는 송장이요 망상번뇌 본공(本空)하고,

천진면목(天眞面目) 나의 부처,

보고 듣고 앉고 눕고, 잠도 자고 일도 하고,

눈 한번 깜짝할 새, 천 리 만 리 다녀오고,

허다한 신통묘용(神通妙用) 분명한 나의 마음 어떻게 생겼는가?

의심하고 의심하되 고양이가 쥐 잡듯이,

주린 사람 밥 찾듯이 목마른 이 물 찾듯이,

육칠십 늙은 과부 외아들 잃은 후에 자식생각 간 절듯이

생각, 생각 잊지 말고 깊이궁구 하여가되 일념만년(一念萬年)되게 하여

폐침망찬(廢寢忘饌)할 지경에 대오(大悟)하기 가깝도다.

홀연히 깨달으면 본래 생긴 나의 부처, 천진면목(天眞面目) 절묘하다.

아미타불 이 아니며 석가여래 이 아닌가?

젊도 안고 늙도 안고 크도 안고 작도 안고 본래 생긴 자기영광(自己靈光)

개천개지(蓋天蓋地) 이러하고 열반진락(涅槃眞樂) 가이없다.

지옥천당 본공(本空)하고 생사윤회(生死輪回) 본래 없다.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서 요연(了然)히 인가(印可) 받아

다시 의심 없앤 후에 세상만사 망각(忘却)하고,

수연방광(隨緣放曠) 지나가되 빈 배같이 떠 놀면서,

유연중생(有緣衆生) 제도하면 보불은덕(報佛恩德) 이 아닌가?

일체 계행 지켜 가면 천상 인간 복수(福壽)하고,

대원력을 발하여서 항수불학(恒隨佛學) 생각하고,

동체대비(同體大悲) 마음먹어 빈병걸인(貧病乞人) 괄시(恝視) 말고,

오온색신(五蘊色身) 생각하되, 거품같이 관(觀)을 하고,

바깥으로 역순경계(逆順境界) 몽중으로 생각하여 희로심을 내지 말고,

허령한 나의 마음 허공과 같은 줄로 진실히 생각하여,

팔풍(八風)오욕(五慾)일체경계 부동(不動)한 이 마음을

태산(泰山)같이 써 나가세. 허튼 소리 우스개로 이 날 저 날 헛 보내고,

늙는 줄을 망각하니 무슨 공부 하여볼까?

죽을 제 고통 중에 후회한들 무엇하리.

사지백절(四肢百節) 오려내어 머릿골을 쪼개는 듯

오장육부(五臟六腑) 찢는 중에 앞길이 캄캄하니,

한심참혹(寒心慘酷) 내 노릇이 이럴 줄을 뉘가 알꼬.

저 지옥과 저 축생(畜生)에 나의 신세 참혹하다.

백천만겁(百千萬劫) 차타(蹉跎)하여 다시 인신 망연(茫然)하다.

참선 잘한 저 도인은 오래 살고 곧 죽기를 마음대로 자재하며,

항하사수(恒河沙數) 신통묘용(神通妙用) 임의쾌락(任意快樂) 자재하니,

아무쪼록 이 세상에 눈코를 쥐어뜯고 부지런히 하여보세.

오늘 내일 가는 것이 죽을 날이 당도(當到)하니

푸줏간에 가는 소가 자욱 자욱 사지로세.

예전 사람 참선(參禪)할 제 마디 그늘 아꼈거늘

나는 어이 방일(放逸)하며,

예전 사람 참선할 제 잠 오는 것 성화하여 송곳으로 찔렀거늘

나는 어이 방일하며,

예전 사람 참선할 제 하루해가 가게 되면 다리 뻗고 울었거늘

나는 어이 방일한고.

무명업식(無明業識) 독한 술에 혼혼불각(昏昏不覺) 지나가니,

오호(嗚呼)라 슬프도다.

타일러도 아니 듣고 꾸짖어도 조심(操心)않고 심상(尋常)히 지나가니,

혼미(昏迷)한 이 마음을 어이하여 인도(引導)할고.

쓸데없는 탐심(貪心) 진심(嗔心) 공연히 일으키고,

쓸데없는 허다분별(許多分別) 날마다 분요(紛擾)하니,

우습도다 나의 지혜, 누구를 한탄할고?

지각없는 저 나비가 불빛을 탐하여서 저 죽을 줄 모르도다.

내 마음을 못 닦으면 여간 계행(如干戒行)소분복덕(小分福德)

도무지 허사(虛事)로세. 오호라 한심하다.

이 글을 자세(仔細)보아 부지런히 공부하소.

이 노래를 깊이 믿어 책상 위에 펴 놓고 시시때때 경책하소.

할 말을 다하려면 해묵사이부진(海墨寫而不盡)이라.

이만 적고 그치 오니 부디 부디 깊이 아소.

다시 할 말 있사오니 돌장승이 아이 나면 그때에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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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사에 참선을 중흥시킨 경허(鏡虛)스님

경허스님의 참선곡은 참선의 핵심을 간결하고 명쾌하게 정리한 것입니다.

참선곡의 내용만 잘 숙지하고 있어도, 참선의 의미와 방법, 참선을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참선곡을 지으신 경허선사께서는, 1846년부터 1912년까지 우리나라 근세의 큰 인물이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일찍 출가하여 공부하셨는데, 동학사강사로 계실 때, 어느 날 출타하여 마을에서 비를 만나 처마 밑에 피신하게 되었는데, 그때 집안에서 신음소리가 들리면서 환자들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물어보니, 지금 마을엔 장티푸스전염병이 돌고 있어서, 다 죽어가는 판국이라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이 떨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배워온 경황이라든가 공부들이 생사 일대사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동학사로 돌아와서 학인들을 해체시키고 참선에 몰입하여, 참선수행을 통한 견성을 하게 됨으로, 한국 근대사에 참선을 중흥시킨 분이 되었던 것입니다. 참선이라고 하면, 불교의 핵심 사상을 갈무리 하고 있습니다. 불교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분들은 그런 질문도 하시데요. "참선은 불교가 아니죠?"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참선이야말로 불교의 핵심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참선은 불교사상의 핵심을 가장 잘 나타낸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