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과 신심명, 그리고 일기일회

22), 직선으로 가지 말고 곡선으로 돌아가라

혜주 慧柱 2010. 5. 22. 20:34

직선으로 가지 말고 곡선으로 돌아가라

2005년 10월 16일 가을 정기법회

 

가을입니다. 제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가을입니다. 이 시기가 되면 모든 것이 투명합니다.

햇살과 공기, 바람결, 물, 나무들, 무두가 투명합니다. 산사에 사는 수행자들은 귀가 매우 밝습니다.

방 안에 앉아 있으면서도 낙엽 구르는 수리, 풀씨가 익어 터지는 소리,

다람쥐들이 겨우살이 준비로 부지런히 열매를 물고 가는 수리까지 다 들을 수 있습니다.

 

오늘 산길을 나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출발지점에서 종점까지 훤히 보이는 길이라면 어떻게 될 것인가?

강원도에서 길상사까지 전혀 거치적거리는 것 없이 직선으로 뚫려 있다면 아마 지루해서 운전하는 맛이 없을 것입니다.

얼마나 무료하겠습니까? 졸음이 쏟아지거나 사고가 날 것입니다.

제가 목포까지 그 길러 가보았는데, 다른 고속도로에 비해 직선이 많고 곡선이 거의 없습니다.

또 개통 초기에는 편의시설이 없어서, 운전자들이 도중에 쉴 수 없었기 때문에 사고가 많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앞날을 미리 예측할 수 없기에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만약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의 일을 미리 예측할 있다면 살맛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모르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기 직선과 곡선의 상징이 있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빚어 놓은 문명은 직선입니다. 그러나 본래 있는 그대로의 자연은 곡선입니다.

나뭇가지, 흐르는 강물, 산맥, 해와 달을 보십시오. 다 곡선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만든 집이나 그 밖의 구조물들의 거의 직선입니다.

직선은 조급하고 냉혹하고 비정합니다. 곡선은 여유와 인정과 운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곡선의 묘미’에서 삶의 지혜를 터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목적만을 위해 과정을 소홀히 한다면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됩니다. 가령 차를 타고 어디로 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가는 동안 많은 사람들과 사물을 보면서도

시간 맞춰 목적지까지 가려는 의식 때문에 도중에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목표지점보다는 그곳에 이르는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그 과정이 곧 우리들의 일상이자 순간순간의 삶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삶은 미래가 아닙니다. 지금 이순간입니다. 매 순간의 쌓임이 세월을 이루고 한 생애를 룹니다.

 

우리 이전 세대들은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참고 기다릴 줄 알았습니다.

그것을 통해 이루어 놓은 삶의 축적이 오늘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예전에 비해 여유롭게 사는 것은 그 덕분입니다.

사랑 역시 기다림의 세월을 동반하지 않으면 성숙할 수 없습니다.

하나의 씨앗이 움터서 꽃 피고 열매 맺기까지 봄, 여름, 가을이 받쳐 주어야 합니다.

 

식당이나 고속도로 휴게소에 가서 음식을 먹어 보면 그곳의 밥은 뜸이 안 들어 있습니다.

뜸이 들지 않은 밥을 먹을 때마다 ‘조급한 현대인들에게 알맞은 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참고 기다릴 줄 모르고 즉석에서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신비스런 사랑까지도 그 자리에서 끝장을 내는 것입니다.

 

세상을 자기중심적으로 살려고 하면 그 길이 막힙니다. 여럿이 어울려 사는 세상이기 때문에 남의 처지를 살펴야 합니다.

관계의 이웃을 고려하여 그 속에서 자신을 찾고 닦아야 합니다.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직선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곡선적인 사고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보다 앞서 살다 간 선인들의 여유로운 생활 태도를 배우십시오. 목표를 향해 줄곧 달리지 말고 때로는 천천히 돌아가야 합니다.

가는 도중 여기저기 눈을 팔면서 느긋함을 즐기기도 하고, 더러는 길을 잃고 헤맬 수도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삶의 기술입니다.

 

티베트 속담에 “서둘러 걸으면 라싸에 도착할 수 없다. 천천히 걸어야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티벳트는 지역이 매우 넓고 지형이 험준합니다.

사람들은 얼마나 멀리 떨어진 데 살든지 중부지역에 있는 수도 라싸로 성지순례 가는 것이 평생소원입니다.

달라이 라미기 사는 포탈라 궁과 유명한 조캉 서원이 거기 있기 때문입니다.

동부와 북부의 히말라야 골짜기에 사는 사람들은 한 달 넘게 걸어야 이곳에 도착합니다.

빨리 도착하려면 빨리 걸어야 할 것이지만, 너무 빨리 걸으면 산소도 희박하고 길도 험해서 금방 지치거나 병에 걸립니다.

그러면 집으로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유 있는 걸음으로 주위 풍경도 구경하고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차도 마시고 야영도 하면서 계속 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생각보다 빨리 라싸에 도착해 있습니다.

 

이것이 삶의 기술입니다. 삶에도 기술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곡선의 묘미가 있습니다.

여기서 얻은 삶의 지혜를 통해 자기 자신을 극복할 수 있고, 또한 남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아량이 생기게 됩니다.

그 인생의 저력이 쌓이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당장에 이루려고 서두르지 마십시오. 삶이 제대로 성숙하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안으로 여물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떤 행위는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연쇄적인 파장을 일으킵니다. 그것을 업력이라고 합니다.

 

사람 사는 세상은 하나의 메아리입니다.

불교에서는 개인이 지은 업을 ‘별업別業’이라 하고, 여럿이 함께 지은 업을 ‘공업共業’이라 말합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지구의 재앙은 인류의 오만한 공업에서 초래된 것입니다

 한정된 지구 자원으로 앞다퉈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를 한 결과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지진과 해일과 태풍은 우연한 현상이 아닙니다. 명상가들은 공통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이것을 교만한 인류의 공업에 대한 경고의 소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갈수록 이러한 현상이 심해질 거라고 말합니다.

 

전 지구적인 재앙의 늪에서 벗어나려면 반자연적인 그릇된 습관부터 고쳐야 합니다.

우리가 먹고 입고 타고 다니는 것 전부가 하나같이 얼마나 반자연적인 행위입니까? 집도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자연을 등진 형태입니다. 인간은 무엇입니까? 대자연 속의 한 개체이기 때문에 대자연의 흐름을 따라야 합니다.

살아 있는 생명을 무엇보다도 존귀하게 여기십시오.

자신의 목숨이든, 남의 목숨이든, 짐승과 식물의 목숨이든, 살아 있는 생명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생각을 갖지 않으면 지구는 편할 날이 없습니다.

 

이 청명한 가을날 이런 이야기를 꺼내기가 대단히 미안하지만, 이 땅의 현실이기 때문에 제가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국 산부인과 집계에 의하면 연간 낙태 시술이 35만 건에 달한다고 합니다. 북한은 포함되지 않은 남한만의 일입니다.

하루에 천 명의 어린 생명들이 살해되는 것입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일 것입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건강이 좋지 않다거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일 수도 있겠지만, 대개는 이와 반대되는 경우입니다.

생명을 경시한 데서 오는 결과입니다.

 

낙태로 모든 것이 깨끗이 끝나는가?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도 하나의 업입니다.

비유하자면 멀리서 어렵게 찾아온 손님을 방이 비좁고 먹을 것이 없다고 해서, 사교육비가 많이 든다고 해서,

도중에 걷어차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서 나오려고 하는데, 도중에 그것을 막아 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20년 전 불일암에 살 때의 일입니다. 겨울이었는데 어떤 사람둘이 찾아왔습니다.

대전에서 왔다고 하는데, 그중 한 사람의 얼굴을 보자마자 섬뜩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인사를 주고받고 나서 알고 보니, 그전에 저한테 편지를 보내 한번 찾아뵙겠다고 했던 산부인과 의사였습니다.

제가 그런 인상을 받은 까닭은 아마도 낙태 시술 등을 많이 한 과보 때문일 것입니다.

수사관들의 얼굴을 보면 살기등등하지 않습니까? 얼마 전 뉴스에 나온 정보부 차장인가 하는 사람 얼굴을 보십시오.

무척 험악하게 생겼습니다. 그것이 바로 업의 얼굴입니다.

 

우리들 자싱 역시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아이들임을 잊지 마십시오. 나를 의지해서 세상에 나오려고 하는 생명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마치 자라나는 새싹을 무참히 꺾는 일과 같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자기 자신의 싹을 꺾는 것입니다.

이는 큰 죄업이 됩니다. 업이란 두고두고 연쇄적인 파장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끝으로 제가 잘 아는 집안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이 가을날 너무 부정적인 소리만 늘어놓은 것 같아 이제는 흐뭇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내일모레면 환갑이 되는, 아내와 다 키운 아들딸을 거느린 어엿한 가장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모두가 선망하는 소위 일류대학을 나온 사람입니다.

1960년대에 우리나라가 5개년 계획을 세워서 해외로 많이 진출했지 않습니까? 그때 대기업에 입사를 합니다.

그리고 그 회사에서 30년 동안 착실하게 근무합니다.

그러다가 IMF 때 회사의 임원으로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직장에서 해고를 당했습니다.

재판도 했지만 결국 무일푼으로 쫓겨났다고 합니다.

부인 명의로 된 얼마 안 되는 재산만 남은 것입니다. 그것이 30년 직장 생활의 전부였습니다.

 

예순이 다 된 이분이 한국 사회에서 새로 취업을 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어떡해야 좋을지 앞날이 막막했을 것입니다.

처음 한두 달은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 주로 산에 다녔습니다. 산을 오르내리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공부하는 일이고, 하나는 운전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나이에 공부하는 것은 힘들고 운전기사를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습니다,

어디서 들으니 3년만 택시 운전을 하면 개인택시 면허가 나오는 데다 정년도 없다고 했습니다.

자식들은 다 키워 놓았으니 부부가 살 길은 열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부인에게 택시 기사를 해 보겠다고 하니 부인이 깜짝 놀라더랍니다. 지금 여기 오신 분들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의 아버지가 강제 퇴직을 당하고 집에서 놀다가, 갑자기 택시 기사를 한다고 하면 어떻습니까?

그리하여 그분은 운전면허를 1급으로 갱신하고 택시 기사 교육도 받고 자격증을 땄습니다.

처음 차를 몰고 나가던 날 불안해하는 아내에게 남편은, 25년 무사고 운전사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했다고 합니다.

평생 육체노동이라고는 모르고 회사 일만하던 사람이 12시간이나 되는 고된 노동을 하게 되었으니, 그 아내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그런데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남편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밝고 활기찼다고 합니다.

남편 말은 막상 부딪쳐 보니 이 일도 재미있더랍니다. 그렇게 6개월이 흘렸습니다.

 

“지난 여섯 달간 저희 집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결혼 생활 28년 동안 요즘처럼 집안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돈 버는 일벌레이고 가족에게는 무관심한 사람이라는 가족들의 생각이 이제는 바뀌었습니다.”

 

이런 아버지를 자식들이 존경스러워하고 안쓰럽게 여기면서 자기 대신 이것저것 챙기는 것을 볼 때마다

부인은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수입으로 치면 회사 다닐 때의 3분의 1도 안 되지만 힘든 기색 없이 꿋꿋하게 살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에 온 가족이 고마워합니다.

그전에 직장 다닐 때는 얼굴도 안 비추던 식구들이 이제는 아침에 아버지가 출근할 때 모두 현관에 나와서,

오늘도 아무 탈 없이 운전 조심하시라고 인사를 한다고 합니다.

 

“하루에 4, 50명의 손님들을 대하다 보면 세상 돌아가는 별별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들 삶의 모습을 접할 때마다 새삼스레 아내와 아이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몸은 고되지만 회사 다닐 때처럼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가끔씩 보람 있는 일도 생겨서 재미있습니다.

때로는 친절한 기사양반이라고 하면서 명함도 달라고 합니다.

노인들을 보면 부모님 같아서 잘해 드리고 싶고, 젊은이들을 보면 자식 같아서 살뜰하게 대해 주고 싶습니다.”

 

이런 생각이 사람을 안으로 여물게 합니다.

여기 한 인생의 길에도 곡선의 묘미가 있습니다.

지나간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현재의 주어진 상황 아래서 자신이 좋아하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은,

그 어떤 명예와 부를 가진 삶보다도 값지고 축복된 섦입니다.

“가정의 행복이란 화목과 사랑의 나눔에 있음을 요즘에 이르러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체면을 생각한다면 더 이상의 인생은 없습니다. 모든 것을 훌훌털어 전생의 일로 미뤄 버리고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현재 상황 아래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곡선의 묘미는 거기에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삶은 과거나 미래에 있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입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살 줄 알아야 합니다,

순간순간 그날그날 내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업을 익히면서 사는가에 따라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개인의 삶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나와 관계된 사람들의 삶도 달라집니다.

누가 나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나를 만들어 갑니다.

이 가을, 보다 투명하고 따뜻하며 선한 이웃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