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방문인참문어록(諸方門人參問語錄) 5
5,
법명(法明)이라는 율사(律師)가 와서 대사께 여쭈었다.
“선사들은 흔히 ‘공’에 빠지더군요.”
대사가 말했다.
“도리어 좌주(座主)들이 흔히 ‘공’에 빠지지.”
법명이 깜짝 놀라서 말했다.
“어째서 ‘공’에 빠진다 하십니까?”
대사가 말했다.
“경(經)과 논(論)은 종이와 먹으로 된 문자이다. 지묵과 문자는 모두가 공하나니 소리 위에다 이름[名]과 구절(句) 따위를 건설한 것으로서 ‘공’이 아닌 것이 없다. 좌주들은 그러한 교체(敎體 : 글자와 문구)에 집착되었으니, 어찌 ‘공’에 떨어지지 않았겠는가?”
“선사는 ‘공’에 떨어지지 않습니까?”
“‘공’에 떨어지지 않았다.”
“어째서 안 떨어집니까?”
“문자 따위는 모두가 지혜에서 생기는데, 대용(大用;활용)이 나타났거늘 어찌 ‘공’에 떨어졌다 하리오.”
법명이 말했다.
“그러므로 한 법이라도 통달치 못한 것이 있으면 실달다(悉達多)라 하지 못합니다.”
대사가 말했다.
“율사는 ‘공’에 빠졌을 뿐 아니라 낱말도 잘못 알고 있구나.”
법명이 정색을 하고 어디가 틀렸느냐고 물으니, 대사가 다시 말했다.
“율사는 중국과 인도의 말을 가리지도 못하거늘 어찌 율문을 강의했는가?”
“스님께서는 저의 잘못된 곳을 지적해 주십시오.”
“실달라라는 말이 범어(梵語)인 줄 모르는가?”
율사가 속으로 잘못을 깨달았으나 아직도 분한 생각이 남아 다시 물었다.
“경과 율과 논은 부처님의 말씀이건만 가르침대로 읽고 외우고 받들어 수행하는 이들이 어찌하여 성품을 보지 못합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미친개는 흙덩이를 좇지만 사자는 사람을 무는 것과 같나니, 경(經), 율(律), 논(論)은 자성(自性)의 작용이요, 읽고 외우는 것은 자성의 법칙일 뿐이다.”
“아미타불(阿彌陀佛)도 부모와 성이 있습니까?”
“아미타의 성은 교시가(憍尸迦)요, 아버지의 이름은 월상(月上)이요, 어머니의 이름은 수승묘안(殊勝妙顔)이다.”
“어떤 경전에 있는 말입니까?”
“다라니집(陀羅尼集)에 있다.”
법명이 절을 하고, 찬탄하면서 물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