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방문인참문어록과 부처님말씀등

제방문인참문어록(諸方門人參問語錄) 12

혜주 慧柱 2011. 6. 26. 11:47

 

12.

어떤 손님이 물었다.

“저는 율사 ․ 법사 ․ 선사 가운데서 어느 분이 가장 수승한지 모릅니다. 화상께서 자비로써 지시해 주십시오.”

대사가 대답했다.

“율사라는 것은 비니(毘尼 ; 계율)의 법장을 열어서 부처님 일대의 유풍(遺風)을 전하고, 지키는 것과 범하는 것을 잘 알고 열고 막는 것을 통달하여, 위의를 잘 갖추어 규칙을 수행하고, 세 차례의 갈마(羯磨)를 거듭하여 네 가지 과위(果位)의 밑받침을 삼으니, 만일 전생부터 공덕을 쌓은 대덕[白尾]이 아니면 어찌 감히 쉽사리 할 수 있겠는가?”

“법사란 사자좌에 걸터앉아 폭포 같은 웅변을 쏟고, 빽빽이 모인 많은 사람들에게 현묘한 관문을 열어 주며, 반야의 미묘한 문을 열어 주어 3륜(輪)이 고루 공한 보시를 하게 하니, 용상대덕이 아니면 어찌 감히 이 일을 감당하랴.”

“선사란 요점을 추려서 마음의 근본을 바로 통달하고, 나고 들고, 펴고 오므리며 종횡으로 사물에 응하며, 모든 현실과 이치를 균등히 하며 단박에 여래를 보아, 생사의 깊은 근원을 뽑아 버리며 바로 눈앞에 작동하는 삼매를 얻나니, 선정에 안정하여 생각을 조용히 하지 않은 이는 여기에 이르러서 모두가 어리둥절 한다. 근기에 따라 법을 일러주는 것은 삼학(三學)이 다르기는 하나, 뜻을 얻고 말을 잊는다면 일승(一乘)과 무엇이 다르랴.”

“그러므로 경에 말씀하시기를, ‘시방의 불토(佛土)안에는 오직 일승의 법만이 있고, 둘이나 셋은 있지 않다. 부처님의 방편으로 말한 것만은 제외하나니 오직 거짓 이름으로써 중생을 인도한다.’고 하셨다.”

“화상께선 불교의 뜻을 깊이 통달하여 걸림이 없는 변재를 얻으셨군요.”

그리고 다시 물었다.

“ 유교 ․ 도교 ․ 불교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은 무었입니까?”

대사가 대답했다.

“도량이 큰 사람이 활용하면 같고, 기틀이 작은이가 집착하면 다르다. 모두가 한 성품 위에서 일어난 작용으로서, 근기의 견해에 따른 차별로 셋이 된다. 미혹함과 깨달음은 사람에게 달렸고, 교법의 같고 다름에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