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迷心萬行未免輪廻(미심만행미면윤회)
2. 迷心萬行未免輪廻(미심만행미면윤회)
- 미한 마음으로는 만행을 해도 윤회는 면치 못 한다 -
[학인] 성품을 보지 못했더라도, 염불하고 경 읽으며 계행 지켜 보시하고 정진하여 널리 복을 닦으면 부처를 이루지 않겠습니까?
[달마] 못하느니라.
[학인] 어찌하여 못 합니까?
[달마] 조금이라도 얻을 法이 있다면 이는 유위(有爲)의 法이며, 인과(因果)의 法이며, 과보(果報)를 받는 法이며, 윤회하는 法이라 생사(生死)를 면치 못하거늘 언제 부처를 이루리요.
부처를 이루려면 성품을 보아야 하나니, 성품을 보지 못하면 인과(因果) 등의 말이 모두가 외도(外道)의 법이니라. 만일 부처라면 외도의 법을 익히지 않으리니, 부처란 업(業)도 없는 사람이며 인과도 없는 지위라.
작은 법이라도 얻는 것이 있다면 모두가 부처를 비방하는 짓이니 어떻게 부처를 이루겠는가?
한마음, 한 기능, 한 견해, 한 소견에라도 집착해 있다면 부처는 모두 허용치 않느니라. 부처는 지키고 범함이 없는지라 심성(心性)이 본래 공(空)하고, 또 더럽거나 깨끗한 법도 아닌지라 닦을 것도 증득할 것도 없으며 원인도 결과도 없느니라.
부처는 계를 지키거나 범하지도 않으며, 선을 닦지도 악을 짓지도 않으며, 부처는 정진을 하지도 게으르지도 않나니, 부처의 작위(作爲) 없는 사람이라 집착하는 마음이 있기만 하면 부처는 이를 허락지 않느니라.
부처라 하면 부처가 아니니 부처라는 견해를 짓지 말지어다. 만일 이런 이치를 보지 못하면 언제 어디서나 근본 마음을 알 수가 없느니라.
성품을 보지 못하고 항상 작(作)할 것이 없다는 생각을 지어낸다면 이는 큰 죄인이며 어리석은 사람이라,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져서 캄캄함이 마치 취한 사람 같아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리지 못하리라, 만일 작위 없는 법을 닦으려 하거든 우선 성품을 본 뒤에 반연하는 생각을 쉴지니, 성품을 보지 못하고 불도를 이룬다는 것은 옳지 못하니라.
어떤 사람이 인과를 무시하고 분주히 온갖 나쁜 업을 지으면서 망령되이 말하기를 “본래 공(空)해서 나쁜 업을 지어도 아무런 허물이 없다.” 한다면, 이런 사람은 무간지옥 ‧ 흑암지옥에 빠져 영원히 벗어날 기약이 없으리니,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런 견해를 짓지 않으리라.
[학인] 만일 분별하고 운동하는 온갖 시간이 모두가 본래 마음일진댄 색신이 죽을 때엔 어찌 하여 본래 마음이 보이지 않을까요?
[달마] 본래 마음이 항상 앞에 나타나 있으되 그대 스스로가 보지 못할 뿐이로구나.
[학인] 마음이 이미 보고 있는 것에 있는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제가 보기 못하는 것입니까?
[달마] 그대는 꿈을 꾼 적이 있던가?
[학인] 있습니다.
[달마] 그대가 꿈을 꿀 때에 그것이 본래 그대의 몸이던가?
[학인] 예, 제 본래 몸이었습니다.
[달마] 그대가 말하고 분별하고 운동하는 것이 그대와 다르던가, 같던가?
[학인] 다르지 않습니다.
[달마] 이미 다르지 않다면 이 몸 그대로가 그대의 본래 법신이며, 이 본래의 법신 그대로가 그대의 본래 마음이니라.
이 마음이 끝없는 광대 겁 전부터 지금과 더불어 조금도 다르지 않아 전혀 나고 죽은 적이 없는지라 나지도 없어지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좋지도 나쁘지도 않으며, 오지고 가지도 않으며, 옳고 그름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의 모습도 없으며, 승(僧)과 속(俗), 늙고 젊음도 없으며, 성인도 없고 범부도 없으며, 부처도 중생도 없으며, 닦을 것도 증득할 것도 없으며, 인(因)도 과(果)도 없으며, 힘쓸 것도 힘 자체도 없고 모양도 모습도 없는 것이 마치 허공과 같아서 취할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느니라.
산이나 강이나 석벽이라고 장애하지 못하며, 나오고 들어가고 왔다 가는데 신통 자재하여, 오온(五蘊)의 산을 벗어나 생사의 바다를 건너리니 온갖 업이 이 법신을 구속할 수 없느니라. 이 마음은 미묘하여 보기 어려우니라. 이 마음은 물질의 모습과는 같지 않아서 이 마음의 곧 부처이니라.
사람들은 모두가 보고자 하거나와 이 광명 가운데서 손을 흔들고 발을 움직이는 일이 항하의 모래 같되 물어보면 전혀 대답치 못함이 마치 허수아비 같나니, 모두가 자기의 수용(受用: 활동)이거늘 어찌하여 알지 못하는가?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온갖 중생은 모두 미혹한 사람이라 이로 인하여 업을 지으므로 생사의 바다에 빠져서 나오려 하다가도 도리어 빠지나니 오직 성품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 하시니 중생이 미혹하지 않았다면 허찌하여 물은 즉, 한 사람도 아는 이가 없는가? 그러므로 성인의 말씀은 틀리지 않건만 사람이 미혹하여 스스로가 알지 못할뿐임을 알겠도다.
그러기에 이 마음은 밝히기 어려우니 부처님 한 분만이 능히 아시고 그 밖의 인간, 하늘 등의 무리는 아무도 밝히기 못하는 줄 알지니라.
만일 지혜(智慧)로써 이 마음을 분명히 알면 비로소 법성(法性)이라 부르며, 해탈(解脫)이라고도 하나니, 생사가 구해하지 못하며 온갖 법도 구속하지 못하므로 대자재왕여래(大自在如來)라 이름하며, 부사의(不思議)라고도 하며 성인의 본체라고도 하며, 장생불사(長生不死)라고도 하며, 큰 선인(大仙)이라고도 하며, 이름은 비록 다르지만 체는 곧 하나이니라.
성인들의 갖가지 분별이 모두가 자기의 마음을 여의지 않았나니, 마음의 기량(量)이 광대하여 응용에 끝이 없느니라. 눈에 응하여 빛을 보고, 귀에 응하여 소리를 들으며, 코에 응하여 냄새를 맡으며, 혀에 응하여 맛을 알며, 나아가 온갖 활동이 모두가 자기의 마음(自心)이며 언제든지 다만 언어의 실이 끊어진 것이니, 이것이 자기의 마음이라.
그러므로 말씀하시되, “여래의 형색(形色)이 다함이 없으며 지혜도 그러하다” 하셨으니 형색이 다함없는 것이 곧 자기의 마음이니라.
마음[心識]이 능히 일체를 분별하며, 나아가 온갖 동작을 쓰는 것이 모두 지혜이니, 마음은 형상이 없으며 지혜도 또한 다함이 없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말씀하시되 여래의 형색(形色)이 다함이 없으며 지혜도 그러하다” 하시니 사대(四大)로 된 형색이 번뇌의 몸으로 생멸이 있거니와, 법신(法身)은 항상 머무르매 머무는 바가 없으므로 여래의 법신이 항상 변해 바뀌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경에 말씀하시기를 “중생이란 마땅히 불성이 본래 있는 몸임을 알아야 한다.” 하시니 가섭(迦葉)은 다만 본성을 깨달았을 뿐이요, 딴 일이 없느니라.
본래의 성품이 곧 마음이요 마음이 곧 성품이니,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마음과 같느니라. 앞 부처와 뒷 부처가 오직 이 마음을 전하셨을 뿐 이 마음 외에 따로이 부처를 볼 수 없느니라.
뒤바뀐 중생이 자기의 마음이 부처인 줄 알지 못하고 밖으로 구해 달리되 종일토록 설치며 부처를 염(念)하고 부처에게 예배한다니, 부처가 어느 곳에 있단 말인가? 이와 같은 소견을 짓지 말지니라. 다만 자기의 마름을 알기만 하면 마음 밖에 다시 다른 부처가 없느니라.
경에 “무릇 형상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하다” 하시고 또 “있는 것이 있는 곳에 부처가 있다” 하셨으니, 자기의 마음이 곧 부처인지라, 부처를 가지고 부처에게 예배(禮拜)하지 말지니라. 만일 부처와 보살의 모습이 홀연히 나타나더라도 절대로 예경하지 말지어다. 내 마음이 공적(空寂)하여 본래 이러한 모습이 없나니 만일 형상을 취한다면 곧 마에 포섭되어 모두가 삿된 도에 떨어지리라. 만일 허깨비가 마음에서 일어난 줄 알면 예경할 필요가 없나니, 예배하는 이는 알지 못하고, 아는 이는 예배하지 않느니라. 예경하면 곧 마에 포섭되리니 학인(學人)이 행여나 알지 못할까 걱정되어 이와 같이 밝혀 두노라.
부처님들의 근본 성품 바탕 위에는 도무지 이런 안팎의 모습이 없나니 간절한 마음으로 새겨 둘지어다. 특이한 경계가 나타나거든 결단코 취하거나[採括] 끌리지도 말고 또 두려워하거나 겁내지도 말고 의심하거나 헛갈리지도 말지니라. 내 마음이 본래 청정하거늘 어느 곳에 이러한 모습이 있단 말인가?
나아가서는 하늘, 용, 야차, 귀신, 범왕 등의 상(相)에라도 공경하는 생각을 내지 말 것이며, 두려워하지도 말지니라. 내 마음이 본래 공적한지라 저들 모습이 모두 허망한 형상(形相)이니, 결코 형상을 취하지 말도록 할 것이니라.
만일 부처나 법이라는 견해를 일으키거나, 또는 부처나 보살의 모습에 공경할 생각을 낸다면 스스로를 중생의 축에 집어던지는 격이라 하리니 만일 바르게 알고자 할진댄 다만 온갖 형상에 집착하지 않기만 하면 되리니 따로이 할 말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경에 “무릇 형상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하다” 하신 것이니, 도무지 일정한 실체랄 게 없으며, 환(幻)에 일정한 상이 없는지라 이것이 무상한 법이니 다만 형상을 취하지 않으면 거룩한 뜻에 부합되리라. 그러므로 경에 말씀하시기를 “온갖 형상을 여의면 곧 부처라 한다.” 하셨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