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明不敬所以(명불경소이)
3. 明不敬所以(명불경소이)
- 공경치 말라는 이유를 밝히다 -
[학인] 어찌하여 부처님과 보살들께 예배하지 말라 하는가요?
[달마] 하늘의 마왕 파순(波旬)과 아수라(阿修羅) 등이 신통을 나투어 모두가 부처와 보살의 모습을 이루되 가지가지로 조화를 나투니 그들은 외도요 모두 부처가 아니니라. 부처란 스스로의 마음이니, 부처에게 그릇되게 예배하지 말라.
불(佛)이란 범어(梵語)이며, 이것을 중국에서는 각성(覺性)이라고 하는데 부처란 신령스런 깨달음이라, 근기에 응하고 사물을 접촉하며, 눈썹을 치켜 올리거나 눈을 껌벅거리며 손을 움직이고 발을 옮기는 것 등이 모두 자기의 신령스레 깨닫는 성품이니라.
성품이 곧 마음이요, 마음이 곧 부처이며, 부처가 곧 도요, 도가 바로 선(禪)이니 선(禪)이라는 한 글자는 범부가 헤아릴 바 아니니라.
또 이르되, “근본 성품을 보는 것이 선(禪)이라” 하셨으니, 근본 성품을 보지 못하였으면 선(禪)이 아니니라. 설사 천경만론(千經萬論)을 강설하더라도 본성(本性)을 보지 못하였으면 범부일 뿐 불법(佛法)은 아니니라.
지극하도는 그윽하고 깊어서 말로는 미칠 수 없나니, 경전의 가르침으로 어찌 미칠 수 있으리오? 근본 성품을 보기만 한다면 한 글자를 모를지라도 좋으니라. 성품을 보면 곧 부처라, 성스러운 본체는 본래 청정하여 물드는 법이 없느니라. 있는 바 말씀이 모구 성인의 마음으로부터 일어난 작용이니 작용(用)의 바탕(體)이 본래 공하여 명칭이나 말로는 미칠 수 없거늘 12부경이 어찌 미칠 수 있으리오?
도는 본래 뚜렷이 이루어졌나니, 닦고 증득하는 일이 필요치 않고 도는 소리나 빛이 아니어서 미묘하여 보기 어려우니, 사람이 물을 마시매 차고 더운 것을 스스로 아는 것과 같으니라.
또 남을 향해 말하지 말지어가. 오직 여래만이 알 수 있고, 그 밖의 인간이나 하늘 등의 무리들은 도무지 깨달아 알지 못하리라. 범부는 그 지혜가 미치지 못하므로 겉모습에만 집착하나니, 자기의 마음이 본래 공적한 줄을 알지 못하고 망녕되게 겉모양과 온갖 법이란 것에 집착하면 곧 외도의 무리로 떨어지리라.
모든 법이 마음으로 쫓아 생긴 것임을 알면 집착이 있을 수 없으리니, 집착한 즉 알지 못하리라. 만일 근본 성품을 보았다면 12부경이 모두 부질없는 문자니라. 천경만론(千經萬論)이 오직 마음을 밝히고자 했을 뿐이니, 말 끝에 계합해 알면 교법(敎法)이 무슨 쓸모가 있으리요?
지극한 진리는 말을 떠났고, 교법은 말씀일 뿐이니 진실로 도가 아니니라. 도는 본래 말이 없는 것이라, 말이란 허망한 것이니라. 꿈에 누각이나 궁전이나 상마(象馬)의 무리나 나무, 숲, 못, 정자 등의 모습을 보더라도 잠깐만이나마 기꺼이 집착할 생각을 내지 말지니 모구 망념이 의탁해서 생긴 것이니라. 부디 주의할지니라.
임종할 때에 전혀 형상을 취하지 않으면 곧 의혹을 제하려니와 털끝만큼의 망념이라도 일으키면 곧 마구니 경계에 끄달리게 되리라.
법신은 본래 청정하여 수용해 느낄 것(受)이 없건만 미혹한 까닭에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나니 망녕되이 업보를 받는 까닭에 집착하여 기꺼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느니라. 지금이라도 본래의 몸과 본래의 마음을 깨닫기만 하면 곧 습성에 물들지 않으리라.
성인의 경지에서 범부의 경지에 들어가서 가지가지 잡된 모습으로 나타내 보이는 것은 본래 중생을 위한 까닭이니, 성인은 역 ․ 순(逆順: 경계)에 자재하여 온갖 업도 그를 구속하지는 못하리라. 성인의 지위를 이룬 지 오래되어 큰 위덕이 있나니 온갖 종류의 업이 성인의 지휘를 받아 움직이기 때문에 천당과 지옥도 그(성인)를 어쩌지 못하리라.
범부는 어두워 성인처럼 안팎이 밝지 못하니, 만일 의심이 있더라도 조작해 일으키지 말라, 조작한 즉 생사의 바다에 떠돌아 헤매면서 후회하더라도 구제받을 길이 없으리라.
빈궁과 곤란과 괴로움이 모두 망상에서 생겼나니, 만일 마음을 알아서 서로서로 경책해서 작용하는 티 없이 작용하게 되면 곧 여래(如來)의 지견(知見)에 들게 되리라.
처음으로 발심한 이는 정신이 온전히 안정되어 있니 못하니, 꿈속에 자주 이상한 경계를 보게 되더라도 선뜻 의심하지 말지니라. 모구가 자기 마음에서 일어났는지라 밖에서 온 것이 아니니라.
꿈에 광명이 솟아나되 그 빛이 햇빛보다 밝은 것을 보거든 나머지 습기가 몽땅 다 하고 법계의 성품이 나타나리라. 만일 이런 일이 일어나거든 부처를 이루는 요인이 될지니, 이는 자기만이 알 뿐이요 남에게는 말할 수는 없느니라.
혹 고요한 숲에서 다니고 멈추고 앉고 눕다가 크고 작은 광명이 눈에 띄더라도 남에게 말하지 말며, 또 집착하지 말지니, 자기 성품의 광명이기도 하니라. 혹 어두운 밤에 다니고 멈추고 앉고 눕다가 낮같은 광명이 눈에 띄더라도 괴이하게 여기지 말지니, 모두가 자기의 마음이 밝아지려는 징조이니라. 혹 꿈에 별과 달이 분명하게 보이면 이것 또한 자기 마음의 모든 반연이 쉬려는 조짐이니, 역시 남에게 말하지 말지어다.
꿈에 어두워서 밤중을 다니는 것 같음을 보면 또한 자기 마음의 번뇌의 장벽이 무겁다는 조짐이니 또한 스스로 알아야 하느니라.
만일 근본 성품을 보았거든 경을 읽거나 염불을 할 필요가 없나니 많이 배우고 널리 아는 것이 별 이익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정신이 어두워지느니라. 교법을 시설해 놓은 뜻은 마음을 표방하기 위한 것인데 마음을 알았을진댄 교법을 볼 필요가 없느니라.
만일 범부로 성인의 경지에 들고자 한다면 업을 쉬고 정신을 길러 분수에 맞게 세월을 보낼지어다. 성냄과 기뻐함이 많으면 도와 더불어 어긋나니 스스로를 속일뿐 이익이 없느니라.
성인은 생사 가운데서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숨고 들어남이 일정치 않나니 온갖 업이 그를 구속하지 못하니 도리어 삿된 마구니들을 무찌르느니라.
중생들이 근본 성품을 보기만 하면 나머지 습기가 단박에 소멸하여 정신이 어둡지 않아 모름지기 이 바로 아래에서 문득 회합하느니라.
지금 참으로 도를 알고자 한다면 한 법에도 집착하지 말고 업을 쉬어 정신을 기를지어다. 나머지 습기가 다하면 자연히 밝아져서 공부를 할 필요가 없게 되느니라.
외도(外道)는 부처의 뜻을 알지 못하므로 비록 공력을 가장 많이 들이나 부처님의 거룩한 뜻을 거스르기 때문에 종일토록 서둘려 염불하고 독경을 하여도 정신이 어두워 윤회를 면하지 못하리라.
부처는 한가한 사람이라 어찌 구구(驅驅)할 필요가 있으며, 명리(名利)를 널리 구한들 후일 무엇에 쓰리오. 오직 성품을 보지 못한 사람이 독경하고 염불하며 오래도록 정진하며 하루 여섯 차례 예불하며 오래 앉아 눕지 않는 등 널리 배워 많이 아는 것을 불법으로 여기나니, 이런 중생은 모두가 불법을 비방하는 사람들 이니라.
앞의 부처와 뒷 부처가 오직 성품을 보라는 말씀만 하셨나니. 재행은 무상하니 만약 성품을 보지 못하고 망녕되이 말하되 “내가 위없는 도를 이루었노라.”한다면 이는 큰 죄를 짓는 사람이니라.
십대제가 가운데 아난(阿難: 경희慶喜)은 성문 중 으뜸이었다. 부처님은 알음알이가 없음이라. 다만 성문(聲聞)과 이승(二乘)과 외도(外道)로 하여금 알음알이를 없애도록 하였다. 알음알이로 수행이니 증과니 따져 인과에 떨어져 있으니 이는 중생의 업보라 생사를 면(免)하지 못하고 부처님의 뜻을 위배(違背)하니 곧 이는 부처를 비방(誹謗)하는 중생이니, 죽여도 허물이 없다고 하였다. 경에 말씀하시기를 천제(闡提)인은 신심을 내지 않으니 죽이더라도 죄과(罪過)가 없다 하셨느니라.
만일 진정한 믿음이 있을진댄 이 사람은 바로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 성품을 보지 못한 즉 절대로 다른 어진 이를 비방하지 말지어다. 스스로 속여서 이로울 것이 없느니라. 선과 악이 뚜렷하고 인과가 분명한지라, 천당과 지옥이 바로 눈앞에 있느니라.
어리석은 사람은 믿지 않는 까닭으로 흑암지옥(黑暗地獄)에 떨어지는 것을 보아도 깨닫거나 알지 못하니, 이는 오직 업장이 무거우므로 믿지 않느니라. 비유하면 눈 없는 사람이 해에 광명이 있다는 말을 믿지 않는 것 같나니, 설사 그에게 일러 주더라도 역시 믿지 않는 것 같으니라. 오직 눈이 먼 때문이니 어떻게 햇빛을 분별할 수 있으리오?
어리석은 사람도 이와 같아서 당장 축생 등 잡된 무리에 떨어지거나 빈궁‧하천한 무리에 태어나 살려 하나 살 수 없고 죽으려 해도 죽을 수 없느니라.
비록 이와 같은 고통을 받으나 직접 물어 보면 도리어 “나의 지금 쾌락한 것이 천당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대답하나니 마땅히 알라, 모든 중생은 제가 태어난 그곳으로 기쁨을 삼아 깨닫거나 알지 못하는 것이로다.
이렇게 악한 사람은 다만 업장이 두텁기 때문에 신심(信心)을 낼 수가 없는 것이지, 다른 것 때문이 아니니라. 만일 스스로의 마음이 부처인 줄 안다면 머리와 수염을 깍고 안 깍는 데 관계치 않나니, 속인도 역시 부처이니라.
만일 성품을 보지 못하면 머리와 수염을 깍았더라도 역시 외도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