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출가 정신이 요구되는 현실
새로운 출가 정신이 요구되는 현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인간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현실의 가치관이나 사회구조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보다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불교운동이나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신념을 가지고 보살의 길을 간다고 해도
과거의 욕망 충족 가치관에 길들여진 업의 지배를 받고 행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대기업에 취직해서 남부럽지 않게 잘살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다.
한편으로는 남이야 어찌되든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이 사회가 잘못되어 고통을 받는 사람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이 사회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어려운 삶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지닌 채 사회운동에 헌신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삶은 기득권을 포기했다는 점에서는 고타마의 출가와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욕망을 추구하는 가치관을 버렸는가 하는 점에서는 고타마의 출가와는 전혀 다른 삶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활동하는 공동체 내에 있거나 공적인 일을 할 때에는 자신의 이념에 입각해 생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치관의 전환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삶에서는 기존의 자기중심적으로 욕망을 좇아 생활하고,
또 언제든지 다시 그런 삶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지향하는 신념과 자신의 다른 한편에서 요구하는 욕망 충족의 삶 사이에서 갈등하고 회의합니다.
물론 우리의 삶이 이렇게 갈등하고 방황하면서 이를 극복하며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이기심을 버리고 타인을 위해 헌신하며 사는 사람은
러한 삶이 올바른 삶이기에 ‘비록 나는 현실적으로 불행해지거나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이를 참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여러 가지 역경이나 어려움을 이겨낼 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다시 한 번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타인을 위해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이라 해도 그 삶이 자기에게 일방적으로 고통만 준다면 그 삶은 바람직한 삶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소중합니다.
그런데 그 소중한 삶을 고통스럽게 몰고 간다면 분명 크게 잘못된 일입니다.
또한 타인을 위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자신의 삶에 대해
‘내 자신은 현실적으로 불행해지거나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이를 참아내야 한다.’는
생각에 머문다면 자신의 삶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출가로 이루어지는 가치관의 전환이란 타인을 위한 삶이 자신을 위한 삶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에만 이루어집니다.
욕망을 좇는 삶은 결국 자신을 파멸로 이끌 뿐이라는 확신이 섰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타인과 나의 삶을 하나로 보게 될 때, 이미 타인을 위해 산다는 생각을 그 근거조차 없어지게 됩니다.
출가란 불행을 자초하면서 고통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노예에서 벗어나 주인의 길을 걷는 일입니다.
출가자는 불국정토가 이루어진 다음에야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출가를 한 그 시점부터 이미 그의 삶은 대자유 속에서 행복을 만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어떠한 유혹과 고난이 오더라도 그 유혹에 휩쓸리거나 고난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또 다시 욕망의 가치에 종속된 노예가 될 것이 두려워서 출가의 길을 되돌려 돌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