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속의 대화

오가해 타자함

혜주 慧柱 2016. 2. 9. 09:31

금강경 오가해 중에서 타자를 함..

 

 

17, 究竟無我分(나라는 것이 본래 없음)

 

중간부분에...

 

경문 :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於然燈佛所 有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不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연등불 처소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법을 얻었느냐?

 

규봉 스님 ; 降怨王 請然燈佛入城 城中長幻盡迎 路泥 善慧布髮 佛與授記 故擧此問

二 斷疑念

항원왕(원수를 항복시킨다는 뜻)이 연등불을 성 안으로 청했을 때, 성 안의 늙은이나 젊은이 모두가 맞이하러 나갔는데, 선혜(석가의 전신)가 진흙길에다 머리카락을 풀어서 깔아드렸더니 부처님께서 수기를 하셨다. 그러므로 이런 질문을 던진 것이다.

둘째, 의심을 끊어준다.

 

 

경문 : 佛也 世尊 如我解佛所說義 佛於然燈佛所 無有法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기로는, 부처님께서 연등불 처소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법을 얻은 일이 없습니다.”

 

규봉 스님 ; 善慧 彼時 都無所得 離諸分別 由無法故得記 若有法者 是有相心 不順菩提 佛有與記

선혜가 그때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던 이유는 모든 분별을 떠났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수기를 받은 것이지, 얻은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상()이 있는 마음이라 보리에 맞지 않으므로 부처님께서 수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육조 스님 : 佛告須菩提 我於師處 不除四相 得受記不 須菩提 深解無相之理 故言不也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당신이 스승 계신 곳에서 네 가지 상을 없애지 않은 채 수기를 받았겠느냐고 물으셨는데, 수보리는 무상(無相)의 이치를 깊이 이해했기 때문에 아니라고 대답하였다.

 

규봉 스님 : 三 印決定

셋째, 확실히 그렇다고 인정하신다.

 

 

경문 : 佛言 如是如是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렇다.”

 

설의 스님 : 上明菩薩無我支意 今擧自己無所得 重明無我之意 佛欲明無得 假以有得問也 空生善契佛意 答以無得 可謂好知音也 再歎如是須著眼 滿口許他見家風

위에서 보살에게 아상이 없다는 뜻을 밝히고, 이어서 당신이 얻은 것이 없음을 밝힘으로써 무아의 이치를 거듭 밝히셨다, 부처님께서는 얻은 바 없음을 밝히시려고 우선 얻은 바가 있느냐는 것으로 물으셨는데, 수보리는 부처님의 뜻에 잘 부합했으므로 얻은 것이 없다고 대답했으니, 과연 마음을 알아주는 사이라 하겠다. ‘그렇다고 두 번이나 찬탄한 것에 주목해야 하니, 입이 마르도록 칭찬해서 가풍을 드러낸 것이다.

 

육조 스님 : 善契佛意 故言如是 如是之言 是印可之辭

수보리가 부처님의 마음을 잘 알았으므로 그렇다고 하셨으니, ‘그렇다는 인정한다는 말이다.

 

야부 스님 : 若不同床睡 爭知紙被穿

같은 침상에서 자보지 않았다면 속옷에 구멍 난 줄을 어찌 알겠나.

(저는 여기서 실소를 금치 못 했습니다. 자 보지 않았으면 팬티의 구멍이 난 줄 어찌 알겠나??? 참 스님도... ㅋㅋ )

 

설의 스님 : 同聲相應 同氣相求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고, 같은 기질은 서로 찾는다.

 

야부 스님 : 打鼓弄琵琶 相逢兩會家 君行楊柳岸 我宿渡頭沙 江上晩來疎雨過(疎一作初) 數峰蒼翠接天霞

북 치는 이와 비파 타는 이

한 집에서 둘이 만나

그대는 버들 언덕 거닐고

나는 나루터에 잠을 잔다

저무는 강에 이슬비 지나가자(어떤 본에는 로 되어 있다.)

몇몇 푸른 봉우리 노을 가에 닿았다

 

설의 스님 : 空生見世尊 打鼓人逢弄琴者 見來歌何事 君行楊柳我渡頭 要識渡頭光景麽 雨過雲收江上晩 數峰蒼翠接天霞 箇中無限淸意味 江上一句都說破

수보리가 세존을 만난 것은 북 치는 이가 비파 이를 만난 격이다. 만나서 무슨 노래를 했을까? 그대는 버들 언덕을 거닐고 나는 나루터에 있도다. 나루터의 광경을 알고자 하는가? 비 지나간 뒤 구름 걷힌 강가에 저녁이 되니, 몇몇 푸름 봉우리가 저 하늘 가 노을에 닿았다. 그 속에 있는 무한히 맑은 맛을 강 풍경 한 구절에 모두 설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