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속의 대화

윤회속에서는 고통을 벗을 수 없다

혜주 慧柱 2008. 12. 25. 08:39

구불득고(求不得苦)

 

좋아하는 것을 갖고자 해도 구하지 못하는 고통이란

배고픔과 목마름을 해결하고, 필요한 것을 구하려고 노력하며,

추위와 더위를 이겨내고자 할 때 생기는 고통 등을 말한다.

 

어떤 사람이 일을 해결하려고 높은 사람에게 부탁하러 갈 때

처음에 그가 부탁을 들어줄 거라는 희망을 가지면서도 마음이 조마조마한 고통과,

후에 들어 주지 않을 때 느끼는 고통을 겪게 되는데 이러한 것들이 이에 해당한다.

 

재산을 모을 수 있는 근본인 논과 밭이 있는 사람들은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곳에도 고통밖에 없다.

농부가 농사일을 하기 위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 일해야 하고,

낮에는 햇볕에 타고, 바람이 불면 흙먼지 날리는 가운데 일해야 하며,

씨앗을 뿌리면 수확을 해서 곳간에 쌓을 때까지 홍수나 가뭄을 염려해야 되고,

제대로 수확할 수 있을지를 염려하는 등 그 고통이 끝이 없다.

 

재산이 없으면 없는 대로의 고통이 있다.

거지들은 오늘은 이것을 먹지만 내일은 또 뭘 먹을까 하는 편치 않은 마음으로

먹을 것을 찾으러 다녀야 하고, 비록 돌아다녀도 찾지 못하는 고통이 있다.

 

재산이 있으면 있음의 고통이 있다.

부자들이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서, 거지들이 동냥질해서 가져가고,

이웃이 빌려 달라고 해서 가져가며, 힘 있는 관리들이 빼앗아 가거나

심지어 쥐들 조차도 갉아먹는 등의 고통이 있다.

또 돈을 벌어야 하는 고통, 지켜야 하는 고통, 지키지 못할 때의 고통,

잃어버릴까 염려하는 고통, 남들의 시기 질투로

사실과 다른 비난을 들어야 하는 고통 등이 있다.

 

대장장이나 수선하는 사람 등, 기술이 있는 사람들은

먹을 것, 입는 것, 봉급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의 고통,

상대방이 불만스러워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고통 등이 있다.

 

출가자들도 욕심 없이 만족하면서 깨끗하게 수행하는 자가 아니면,

기도할 때 나오는 공양물은 고통일 뿐이다.

 

윗사람들은, 현장에서 일하는 아랫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지만 일하는 사람들도 고통밖에 없다.

입을 것, 먹을 것, 가진 재산이 별로 없고,

일이 서툴면 야단맞아야 하는 고통이 있다.

어떤 경우에는 먹을 시간도 없이 일에 쫓김을 당하는 고통이 있으며,

밤낮없이 걱정하면서 고통스러운 인생을 보낸다.

 

부하 직원들은 상사들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마찬가지로 고통스러움뿐이다.

나라의 국왕이나 대통령은 그 나라에

여러 가지 재난이 일어나면 그것에 책임을 져야 하며,

적국과 상대해야 하는 고통, 일가친척들을 직접 챙기지 못하는 고통,

권력을 빼앗기지는 않을까 염려하는 고통이 따른다.

 

결국 말 한 마리 크기만큼의 재산이 있으면 고통도 그만큼 생긴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처음에는 좋은 대화를 하지만,

조금 친해지면 입이 찢어지고 코가 부러지는 고통스런 이야기들만 줄줄 나온다.

겉으로 생긴 모습과 옷차림에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고통으로 가득 찬 인간의 내면은 모두 똑 같다.

 

누가 어디에 있어 필요한 그 무엇이 생기더라도,

친한 이와 함께 있더라도, 마음이 맞지 않는 것 등은

윤회의 세계가 고통 그 자체임을 드러내는 증거이다.

우리가 차 한 잔을 즐거이 마시는 순간조차,

잘 살펴보면 고통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절이나 외부 어디에 있더라도 그 또한 고통뿐이다.

처음 어느 절에 있다가 그곳에 만족하지 못해

다른 곳으로 옮기면 조금 낫지 않을까 하여 토굴로 들어가고,

토굴에서도 적응을 못해 순례를 떠나볼까 하여 순례를 떠나보지만

그 어느 곳에도 행복은 없다.

 

그래서 고향에 가보기도 하지만

어디를 가고 누구를 만나서 대화를 해보아도 먹을 것, 입을 것, 명예,

이 세 가지가 충족되지 못한 중생들의 만족스럽지 못한 소리만 들릴 뿐이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윤회에 머물기 때문에 오는 허물로서

우리에게 인간의 고통을 알아차리게 하는 것들이다.

만약 이러한 고통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고통을

일정한 장소와 주위 사람들과 외부 대상에서 얻은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사람들은 윤회라 하면 아주 멀리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모든 고통의 뿌리는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허물임을 알아야만 한다.

 

 

출가자들도 공양 받거나 시봉 받는 것이 죽을 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모두 무상하여 고통이 따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진정으로 발심할 수 있다.

 

중사도에서는 이러한 발심이 중요하다.

이와 같이 발심이 된 상태에서는 어떤 수행을 하더라도

그것은 곧바로 해탈의 원인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복전에 의지해서 수행하는 것을 제외한 다른 수행들은

윤회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훌륭한 수행이라고 해서 기()를 돌리는데 평생 매달리거나

밀교적인 수행을 아무리 많이 한다 해도

해탈과 완전한 깨달음의 길 근처에도 이르지 못한다.

 

그렇게 의미 없이 하는 고생스런 수행들을 잠시 뒤로 접어두고

출리심 · 보리심 · 올바른 견해,

이 세가지를 바탕으로 정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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