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이 세상에 없을

42, 당신의 성품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혜주 慧柱 2009. 2. 14. 23:00

당신의 성품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일상생활에서 언제든지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자 하는 것은 참으로 좋은 수행 법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돌이켜 듣는 성품은 어떤 것일까요?

 

 

여기에 한 물건이 있습니다.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하여,

일찍이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으며,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지을 수도 없는 물건입니다.

이 물건을 바로 보고 듣고 돌이켜 비추기도 하여 보지만,

무어라 이름 붙일 수도 없고 그 모양을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이 무엇일까요?

 

육조 혜능스님의 제자인 하택 신회(670-762 당나라스님)

이를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요, 신회의 불성이라고 대답하였다가 서자(庶子)가 됨을 면치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남악 회양 선사(677-744 당나라스님)

설사 한 물건이라고 해도 맞지 않는다(設使一物卽不中)’고 대답함으로써

육조 혜능 스님의 적자(嫡子)가 되었다고 합니다.

닦고 증득함이 없지는 않으나 결코 오염될 수 없는 것, 이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럼 달리 생각해 봅시다.

나에게 하나의 경전이 있는데, 종이와 먹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네.

그래서 펼치면 한 글자도 없건마는 항상 큰 광명을 내 뿜는다네.”

 

그렇다면 이것이 또 무엇인가요?

 

 

여기에 대해서 시비분별로 따져서 알려고 하지 말고

그리고 깨치기를 기다리지도 말고, 다만 이 뭐꼬?” 하고 들어가면 화두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를 들면서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용을 쓰다 보면 머리 쪽으로 열이 오르는 상기병(上氣病)이 생기므로 너무 조급해서도 안 됩니다.

또한 너무 느슨해서도 안 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거문고 줄의 비유와 같이 너무 팽팽하게도 너무 느슨하게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따라서 너무 부지런하게 공부하려 하기보다는 차라리 꾸준히 공부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참선의 요령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마하반야바라밀(큰 지혜로 피안의 언덕을 건너간다는 뜻)을 외웁니다. 이때 소리를 내어도 좋고, 마음속으로 읊어도 상관없습니다.

둘째, 그 소리를 듣습니다. 스스로 내는 소리를 스스로 듣는 것입니다.

셋째, 소리를 듣는 이 성품은 어떤 걸까? 어떻게 생겼을까? 하고 반문하소 생각해봅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누군가 나를 폄하하는 소리를 듣거나 심지어 상대방이 나를 욕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 욕됨에 성질내기보다는

그 욕설을 듣고 있는 이 성품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고 반문하여 보십시오.

그러면 생활 속의 참선이 실답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며,

당신은 지금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