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는 욕심을 버리라고 하는데,
욕심이 없이 이 험난한 경쟁사회를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사실 산속에서 혼자 유유자적하면서 살면 모르겠지만 이 경쟁사회에 그렇게 살려고 하면 몸과 마음이 따로 놀게 되어 오히려 뒤처지게 됩니다.
그래서 대승불교에서는 ‘욕심을 버려라, 마음을 비워라.’ 라는 말 대신 ‘원願을 세워서 열심히 살아라.’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욕심은 자기 자신 또는 가족만을 위한 것이지만 발원은 나와 남을 함께 위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욕심으로 사는 사람은 남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만을 채웁니다.
이런 사람이 국가의 지도자가 되거나 중요한 자리에 앉게 되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므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발원을 갖고 올바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발원을 가져야 비로소 대승보살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이 세상은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북경의 나비 날갯짓이 저 지구 반대편에 폭풍우를 몰고 올 수 있다.’ 는 나비효과(butterfly effect)이론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입니다.
나와 남을 동시에 위한 발원을 해야 진정 나를 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욕심은 본능적이지만 발원은 능동적입니다.
욕심내는 것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잘하지만 발원은 일부러 마음을 능동적으로 일으켜야 합니다.
예를 들면 ‘모든 생명을 사랑하겠습니다.’ 또는 ‘마무는 마 없이 마음을 내겠습니다.’ 라는 서원은 본능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본능적으로 인간은 자기 자신을 아끼며, 베풀려는 마음보다는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욕심이 강합니다.
어떤 분의 말씀이,
자신은 예전에 참 힘든 삶을 살았는데 한순간 마음을 바꾸니까 요즘은 세상살이가 참 편해졌다고 하시더군요.
항상 무언가 불만족스러웠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렸을 때 소원이 하루 세끼 쌀밥에 고등어 반찬 먹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그것 이상으로 잘 살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돈도 악착같이 벌려 하지 않고 그냥 충실하게 일을 하고 편안하게 마음을 가지니까 세상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처럼 과분한 욕심만 버리면 오히려 더 지혜롭게 살고 남들을 배려할 줄 알게 되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욕심은 결과를 중시하지만 발원은 과정 자체를 즐길 줄 압니다.
다시 말해서 미래에만 마음이 가 있으면 현실이 괴롭습니다.
현실을 즐길 줄 알아야 미래도 즐거워지는 것입니다.
웃어야 웃을 일이 생기고 현실에 감사할 줄 알아야 감사할 일이 생기듯이, 현실을 희생하기만 하고 오직 미래의 결과만을 놓고 인생을 살면 괴롭습니다.
예를 들어 여행을 간다면, 여행 떠날 준비를 할 때부터 마음이 즐거워지죠?
여행지에 가서 뿐만 아니라 여행을 준비하면서도 즐길 줄 알아야 진정한 여행의 행복을 느끼는 것입니다.
여행을 간 순간에만 즐겁고 나머지 과정이 괴롭다면 어찌 여행을 가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바로 지금 여기에서 실행해 나가는 그 자체를 즐길 줄 알아야 인생을 제대로 살아갈 줄 아는 것입니다.
열심히 살되 애착愛着하지 않는 비결이 바로 발원發願에 있는 것입니다.
이른바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할 때 그 마음 내는 것이 발원이고, 머무는 바 없는 것이 애착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애착이 생기기 때문에 머물게 되고, 머문다는 것은 때와 장소와 사람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꾸준히 항상 바로 지금 여기에서 충실히 살면 그 뿐인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그 삶이 충실하게 되고 업그레이드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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