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을 알고 사는 이의 내일은 오늘보다 낫다
동서양의 불교학 관련 연구자들이 한국 불교의 정통 수행법인 간화선의 원리와 구조를 학문적으로 고찰하는 자리에서 간화선 실참에 관한 강연이 진행돼 눈길을 끌었다.
동국대 국제선센터 선원장 수불 스님은 8월 20일 동국대 종학연구소가 개최한 국제학술대회에서 ‘간화선의 실체와 세계화’를 주제로 기조강연했다.
수불 스님은 강연에서 실참자 입장에서 간화선 수행방법을 소개하고, 선지식의 역할과 간화선 세계화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다음은 수불 수님의 기조강연을 정리한 것이다.
1, 간화선의 의미
선은 본래 완벽하게 드러나 있는 실체를 등지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반야지혜와 무명업식이 본래 없음을 밝힘으로써, 단도직입으로 진리당처의 핵심오의를 드러나게 했다. 그렇지만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는 인연 있는 이들에게 참선을 통해서 실질적인 수행과 깨달음의 문을 열게 하였다.
부처님께서 가섭 존자에게 물려주신 이심전심의 선법은 28대 조사인 보리달마에 의해서 6세기 초 중국으로 전해졌다. 보리달마가 전한 선법은 역대 조사를 통해 면면히 계승됐고, 당대(唐代)에 이르러 조사선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조사선이란 깨달음을 완성한 역대 조사들이 중생들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성품을 바로 눈앞에 드러내 보여주신 법문이다. 그러므로 명인종사는 법을 물어오는 제자에게 지사문의(指事問義)와 기봉방할(機鋒棒喝)의 방법으로 지도해 정법의 안목을 체득케 했다. 이러한 문답들이 어록으로 기록되고 전승돼, 송대(宋代)에 이르러 1700 본칙공안으로 정형화됐다.
조사선은 그 뿌리를 중국 선종의 초조 보리달마에 두고 있으면서, 실제로는 육조 혜능(六朝慧能; 638~713)에 의해 제창됐다. 육조께서는 모든 사람이 본래 지닌 자성을 직시하여 바로 그 자리에서 몰록 깨치는 돈오견성을 천명하였다. 이후 조사선은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과 석두희천(石頭希遷; 700~790)을 거치면서 육조 문화에게 배출된 수많은 선승들에 의해 전성기를 맞았다.
조사선의 언하변오(言下便悟) 전통이 후대로 내려가면서 퇴색되자, 남송시대의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 선사는 현성공안에서 의심되어진 화두를 참구토록한 간화선을 제창했다.
간화선은 눈 밝은 선지식이 믿음을 낸 이로 하여금 화두 참구를 통해 참의심을 불러일으켜 돈오케 하는 수행법이다. 공안이 어록에 기록된 선대의 선문답이라면, 화두는 특정한 공안이 공부인의 내면에 투철한 문제의식으로 응집된 것을 말한다.
객관적으로 전해오던 본칙공안이 공부인의 내면에서 의심을 일으켜 활구 화두가 되면, 혼침과 산란 및 온갖 역순경계를 물리치고 오로지 본래면목을 밝히는 데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준다.
간화선은 조사선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수행법의 원리는 동일하다. 수행자는 의심에 걸려야 하고, 그것이 점점 커져서 온몸에 꽉 차면, 시절인연 따라 타파되면서 돈오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처음부터 선지식에 공안을 통해 공부인에게 화두를 걸어주고 결국 타성일편된 의단이 타파되도록 이끈다는 점에서, 간화선 수행이 오늘날 수행자에게 잘 맞는다고 할 수 있다.
2, 화두란 무엇인가?
화두는 공안에서 비롯된 의심이다. 공안이 어록이나 공안집에 기록되어 전해오는 1700여 깨달음의 기연들이라면, 화두는 선지식께서 공안을 통해 공부인으로 하여금 의심케 한 것을 말한다.
공부인은 스스로 의문을 일으키게 한 공안을 자세히 살펴야 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의심이 점점 커지면서 본격적으로 화두가 들려지게 된다. 이처럼 공안에서 비롯된 화두에 집중해야 한다. 화두가 제대로 들려져서 의심이 일어나면 활구(活句)가 된다. 곧 화두를 의심하지 않으려 해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렇지만 생기지도 않는 의심을 억지로 하려고 한다거나, 화두가 잘 들려지고 있다고 착각하고 밀어 붙인다면 모두 사구(死句)인 것이다. 활구 의심인 화두가 역순경계에 관계없이 동정(動靜) 가운데 들려진다면 의심하려 하지 않더라도 화두가 들려지는 의정의 상태가 형성된다.
화두의 불꽃이 지성해지면, 공부인의 몸과 마음도 극단으로 치달아서 마침내 화두가 타성일편 되어 의단이 독로하게 되고, 시절인연 따라 무명업식이 본래 허망한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원리대로 공안에서 비롯된 화두의 불꽃을 일으킬 수 있어야 간화선 수행이다. 이렇듯 간화선은 공안상에서 의심되어진 화두를 들고 공부할 수 있어야 한다.
3, 선지식의 역할
모든 사람이 불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인연만 닿는다면 누구에게나 깨달음의 길은 열릴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눈 밝은 선지식을 만나지 않으면 안 된다. 명안종사는 전도몽상에서 깨어나 중도실상을 눈뜬 분이다. 공부인이 법에 대해 물어올 때, 눈 밝은 선지식은 고통의 원인인 번뇌를 일으키게 한 원인제공자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깨닫도록 이끌 수 있어야 한다. 마음속에서 번뇌가 불타고 있는 한, 아무리 지식을 채우고 착한 행동을 하더라도 고통의 뿌리가 뽑히지 않는다. 모두 번뇌 망상 속의 일에 불과할 뿐이다. 선지식은 공부인으로 하여금 화두공부를 통해 번뇌가 본래 없었음을 확인시켜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올바른 선지식만 만나면, 이 공부의 반은 성취된 것과 다름없다. 간화선 수행의 승패는 전적으로 선지식의 지도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 간화선 수행의 실제
1) 활구 의심이 걸려야 한다.
어떻게 하면 ‘참의심’을 할 수 있을까? 공안 상에서 의심이 일어났다면 당연히 화두에 걸려 공부하게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공안의 뜻을 알고 싶어서 갑갑하고 조급할 수밖에 없다. 그 갑갑함이 커져서 화두를 들고 공부하려는 의지 속에서 살펴진,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갑갑함이 사라지지 않고 점점 더 커져서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면, 활구를 들고 바르게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활구가 들려 공부의 방향이 제대로 잡혔더라도, 마치 여울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뱃사공처럼 힘이 든다. 그럴 때 최선을 다해 마치 밝은 해를 볼록렌즈로 비춰서 불을 얻듯이 초점을 맞춰 집중해야 한다. 고인들은 이 일을 마치 쥐를 잡으려고 만들어진 물소 뿔로 된 덫 속으로 쥐가 먹이를 찾아 들어감에 꽉 끼어서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곳에서 앞으로 나아가려고만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마치 모기가 쇠로 만들어진 소등에 붙어서 주둥이로 계속해서 뚫어서 몸까지 뚫고 들어가려고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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