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거사에 대하여
방거사는 성이 방(龐)이고 이름은 온(蘊)이다. 때문에 방온 거사라 부르기도 하지만, 고래로부터 방거사라고 일반화되어 왔으며, 중국의 유마 거사라고 칭송되는 인물이다.『유마경』에는 부처님 당시 바이샤알리에 있으면서 부처님의 여러 제자들을 압도하고 마침내 문수보살과 당당하게 대론한 유마 거사의 풍모가 설시되어 있는데, 방거사의 삶이 이 유마 거사와 비견되기 때문이다.
방거사가 재세하던 8세기 중반에서 9세시 초까지는 마조(馬祖) 선사나 석두(石頭) 선사가 선풍을 크게 드날리고 있던 때다. 거사도 석두 선사를 친견하고 마조 선사 문하에서 수행하여 그 법을 이었는데, 재세하면서 당시에 유명한 선사들의 날카로운 기봉을 통쾌하게 꺾거나 때로는 당당하게 맞서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때문에 당대(唐代)의 불교를 선(禪)으로 특정 짓는데 많은 영향력을 선문(禪門)에 끼쳤다. 그러나 그는 법을 얻고도 승려가 되지 않고, 재가 거사로 일생을 보냈다.
거사의 부친은 형양(衡陽)의 태수(太守)를 지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그의 가계가 대대로 유학을 배웠고 학문으로 입신한 집안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그가 단하(丹霞) 선사와 함께 젊어서 유학을 공부하고 둘이 함께 과거를 보러 가던 중 행각하는 스님을 만나 벼슬에 뽑히는 것보다 부처가 되는 것이 좋다는 말을 듣고 마음을 돌려서, 두 사람이 행각승의 지시를 따라 마조 선사에게로 달려갔던 것에서 알 수 있다. 이렇게 발심한 거사는 수만 수레에 상당하는 가재(家財)를 배에 싣고 동정(洞庭)에 있는 상강(湘江)에 저어가서 그것을 전부 물속에 가라앉혀 버리고, 성 밖에 작은 집을 장만하여 거기서 대바구니를 만들어 그것을 팔아서 생계를 이었다고 한다.
그가 재물을 물에 던지려 할 때 사람들이 말렸다, 다른 사람들에게 주든지, 불사에 쓰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말하기를 “내가 이미 나쁜 것이라 생각하고 버리면서 어찌 다른 사람에게 주랴, 재물을 이것이 심신을 괴롭히는 근원이라.” 하였다고 한다, 거사의 선사상을 잘 말해주는 부분이다.
『방거사 어록』은 당시 양주(襄州)의 자사(刺史)였던 우적(于頔)이 편집한 것이다. 지금 현재 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간본은 숭정간본(崇禎刊本)인데, 이것은 명나라 말기인 숭정10년(1637)에 천주라산(泉州羅山)의 서은원(棲隱院)에서 출판된 것으로 상 · 중 · 하 3권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간행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임제선의 정맥을 잇고 있다고 주장하는 한국불교에서 왜 1200년 동안『방거사 어록』을 한 번도 간행하지 않았는지 참으로 의심스럽다. 또한 간화선의 주창자인 대혜 스님이 『서장(書狀)』에서 “다만 온갖 있는 것을 비우기를 원하고[但願空諸所有], 결코 없는 것들을 채우지 말라[愼勿實諸所無].”는 거사의 임종게(臨終偈)를 인용하여, “다만 이 두 글귀만 알면 일생 참선하는 일을 마치게 될 것이다.”라고 극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간화선을 수행의 근본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우리 불교계에서 무슨 까닭에 그 동안 본 어록을 간행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느 날 거사가 석두 선사에게 자신의 심경을 드러낸, 즉 “나날의 일은 무엇이라고 할 것이 없어, 다만 스스로 슬금슬금 잘도 옮겨가는구나. 어느 하나 가질 것도 버릴 것도 없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어긋남이 없네. 왕사니 국사니 누가 칭호를 붙였는가? 이 산중은 티끌 하나 없는 것, 신통이니 묘용이니 무엇을 말하는가? 물 긷고 나무 나르는 일 바로 그것인 것을.”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게송이 아닐 수 없다.
거사가 마조 선사에게 “일체의 존재와 상관하지 않는 자. 그것은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묻자, 마조 대사가 “자네가 저 서강(西江)의 물을 한 입에 다 마시고 나면, 그 때 그것을 자네에게 말해 주겠다.”라는 것은 불교의 현묘한 이치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약산 선사의 제자들에게 말한 “참 멋진 눈이다. 한 송이 한 송이가 다른 곳에는 떨어지지 않는구나!”라는 거사의 말에서는 한 발자국도 내디딜 수 없는 은산철벽과 같은 것이다.
입멸 1200주년이 지난 오늘 날 우리 시대에 조명하여, 방거사를 통하여 선종 본래의 모습인 당대의 선풍이 재생되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라며, 간화선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에 앞서 참선(參禪) 본래의 참구법으로 회귀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제방의 모든 선지식의 경책을 삼가 바란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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