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그릇 수행의 5단계(참회, 발원, 기도, 참선, 행불)◈
오 호 라 한심하다 이 글 을 자세보아 하 루 도
열두때며 밤으로도 조금자고 부지런히 공부하소
이노래를 깊이믿어 책상위에 피여놓고 시시때때
경책하소
참선곡에 마지막 대목이 되겠네요.
참선곡을 자세히 관통해서 공부하게 되면 공부가 깊어진다. 이 노래를 믿어 책상위에 펴 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읽고 실천하며 경책을 하라는 말이 되겠죠. 이 참선곡에 있는 말씀처럼 마음이란 어떤 걸까? 어떻게 생겼을까?
이렇게 한가지 만 잘 해 마음에 실체를 안 다든지 마음이라는 것이 본래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구나. 이것이 참나가 아니구나. 그러면 본마음 ‘참나’자리는 과연 어떤 걸까? 이렇게 하다 마음의 실체를 알아 버렸다면 복잡한 수행이니 체계니 하는 이런 것들은 필요가 없겠죠.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은 그렇지가 못하죠. 한마디에 바로 자기가 생각하는 몸이니, 마음이니 하는 것들은 실체가 없는 것이고, 본마음 참나 자리만이 진정한 ‘나’이며 바로 ‘두두물물’이 다 드러나 있는 불성의 바다에 살고 있는 것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수행의 체계를 만들게 된 겁니다.
그래서 그로 인해서 ‘화두’라는 것도 필요하게 됐고 ‘좌선’도 필요하게 됐고 이런 수행의 여러 가지 체험이나 이런 것들을 나름대로 모아서 엮은 것이 그릇이론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그릇에 비유를 해서 사람이 저마다 자기 마음그릇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커다랗고, 어떤 사람은 작고, 어떤 사람은 원만하고, 어떤 사람은 뾰족하고, 이렇듯 저마다의 마음그릇이 있어서 마음그릇을 먼저 비우고 다음에 비운 그릇을 다시 또 채우고 그래서 그릇을 키워나가고 그리고 그릇이 있는 한, 안과 밖이 있고 부처와 중생이 나눠지기 때문에 그릇을 완전히 또 없애고 그러고 나서 마지막으로는 그릇을 다시 만들어서 써나가는 단계 그게 바로 행불수행의 다섯 단계라고 하는 겁니다.
참회, 발원, 기도, 참선, 행불 5단계 수행법을 제가 있는 지리산 국사암에서 매달 한 차례씩 실천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불자님들이 모여서 먼저 108참회 발원문 제가 만든 108참회 발원문을 한 문장씩 읽으면서 절을 한 번씩하게 되어 있는 거죠. 그래서 그 108참회 발원문에는 스스로를 참회하는 그런 내용과 그다음에 새롭게 자기마음을 원을 세워서 일구어 나가는 그런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냥 절을 하는 것 보다 108참회 발원문을 한 문장씩 읽으면서 절을 하게 되면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해지는 그런 비결이 담겨져 있는 거죠.
참회를 통해서 마음을 비우고 또 발원을 통해서 비운 마음그릇을 원으로 채워 놓으면 그 다음엔 기도를 통해서 마음을 확장하는 순서입니다. 마음은 좀 커져야 되겠죠. 꾀죄죄한 중생심에서 벗어나서 불보살님과 상통하는 마음을 가져야 된다는 게 바로 기도입니다. 그래서 장궤합장한 자세로 천수경을 보다 보면 대다라니가 있어요. 천수다라니를 또 한 30분정도 함께 열심히 기도를 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불보살님과 참 에너지가 소통이 되고 나의 마음그릇이 확장이 되게 되죠.
◈‘마하반야바라밀’을 구념 심행하라.◈
참선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참선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고 여러 가지 화두가 있습니다. 그런데 육조단경에 보면 육조스님께서는 이렇게 권장을 하셨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을 구념심행하라.” 이게 육조단경의 수행법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선지식을 만나서 선지식의 지도로 자성을 보는 것이 최고의 좋은 방법입니다만 그렇게 일순간에 되질 않으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것은 ‘마하반야바라밀을 구념심행 입으로 염하고 마음으로 행하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육조스님이야 말로 참선의 최고 중흥조라고 말씀드릴 수 있죠. 육조스님 이전까지는 참선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특이한 사람들이 특이한 장소에서 특이한 시간에 특이한 방법으로 하는 것이 참선이었어요. 근데 육조스님께서는 참선을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것으로 문을 활짝 열 으셨습니다.
열린 참선의 선구자세요. 그래서 우리가 열린 참선을 해야 됩니다. 수행자들이 결제기간에 선방에서 하는 것만 참선이다. 이것은 닫힌 참선이죠. 열린 참선은 바로 육조스님의 가르침처럼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마하반야바라밀을 염하면서 그 소리를 듣고 소리를 듣는 성품을 돌이켜 듣는 것이 바로 참선에 한 가지 수행법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염하면서 소리를 내도 좋고 속으로 염해도 괜찮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자기가 내는 소리를 자기가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듣고 있는 순간 염하는 것이고, 듣지 않는 순간 번뇌 망상 또는 졸고 있는 것입니다. 듣고 있는 순간만이 깨어있는 순간입니다. 자기가 하는 소리를 자기가 듣는데 몰두합니다.
일단은 그래가지고 염하는 이와 듣는 이가 하나가 되면 일심이 성취되는 것이죠. 거기서 한걸음 나아가서 소리를 듣고 있는 이 성품은 ‘어떤 건가? 어떻게 생겼을까?’ 이렇게 참구해 나가는 것이 듣는 성품을 돌이켜 듣는다고 말씀 드릴 수가 있죠. 결국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안·이·비·설·신·의’를 통해서 수행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땅에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는 것처럼 우리는 육신을 통해서 수행을 할 수 밖에 없어요. 육신과 마음을 통해서 듣는 성품을 돌이켜 듣는 방법, ‘마하반야바라밀’을 염하는 방법, 이런 것들이야 말로 육조단경이나 능엄경 같은 불교의 대표적인 수행경전에서 가장 권장하는 방법이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육근 가운데 가장 수승한 것은 ‘이근’인데 귀로 듣는 성품인 것입니다. 눈이나, 코, 입, 촉감이라는 것들이 조금만 뭐가 막히거나 조금만 또 시간이 지나며는 무디어 집니다. 그러나 듣는 성품은 오랜 시간 또 어느 정도 뭐가 막혀도 멀리 떨어져 있어도 들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죠.
쉽게 피로감을 느끼지 않고도 오랫동안 정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근’입니다. 그래서 ‘마하반야바라밀’을 염하고, 그 소리를 듣고, 소리를 듣는 이 성품이 ‘어떤 건가? 어떻게 생겼을까?’하고 챙기면서 선지식의 지도를 받는 것이 바로 공부법이죠. 그러고 나서 행불수행. 생활 속의 선이라고 하는 겁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모든것은 오직 마음으로 짓는것이다.)◈
수행불행, 행불은 부처의 행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부처가 되고 나서 부처의 행을 한다는 것은 잘못된 고정관념입니다. 부처의 행은 하는 자가 부처라 하는 겁니다. 육조단경에 나옵니다. 부처가 뭡니까? ‘불행시불(佛行是佛)’ 부처의 행위가 부처다. 보살행을 하는 자가 보살인 것입니다. 보살이 정해져 있어서 보살행을 하는 것이 아니고 보살행을 하는 자가 보살이다.
컴퓨터를 통해서 인터넷 들어가 예를 들어 행불카페 같은 수행카페에서 완전 연소 방에서 함께 공동수행을 합니다. 거기서 자기의 몸과 마음을 완전 연소시켜 마음이 점점 쉬어가게 될 때야말로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이죠.
그렇지 않고 어떤 사람이 “나는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인터넷의 원리, 인터넷을 만든 사람이 누군지 또 저 소모임방이 어떻게 만든 것인지, 컴퓨터를 누가 처음에 만든 것인지, 컴퓨터의 기계 동작원리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이런 것을 모조리 알고 난 다음에 내가 인터넷에 들어가서 내가 완전 연소 방에 가서 마음공부를 하리라!” 이런 마음을 먹게 되면 그것은 하세월이라고 하는 것이죠. 언제 할 수 있을 수 있을지 그것은 기약을 할 수 없다고 하는 겁니다.
부처님께서 이미 평생 써도 남는 마음의 법칙을 베풀어 놓으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미 깨달음을 체험하시고 깨달음의 법칙, 마음의 법칙,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다. 모든 것은 오직 마음으로 짓는 것이다. 그러니 마음을 올바르게 쓰고 밝게 쓰고 크게 써라. 이런 이치를 다 가르쳐 주셨어요.
일체중생이 누구나 다 불성을 지니고 있다. 불성이란 부처가 될 가능성! 부처도 될 수 있는데 뭔들 될 수 없으랴! 무엇이 되는가 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다 선택하는 것이다. 이런 가르침을 다 베풀어 놓으셨어요.
누구에게나 다 자성이 있다. 자성은 무한한 가능성입니다. 무한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마음에 그리는 대로 이루어진다. 이런 성공의 법칙을 다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들을 써나가면 되는 겁니다. “부처님이 난행, 고행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으셨으니깐 나도 난행, 고행을 통해서 부처님같이 깨달음을 일단 얻고 그러고 나서 마음의 법칙을 써 나가리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을까요?
아버님의 유산. 아버님의 이 수많은 유산을 남겨 주셨어요. 아버님은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나오고 어려서부터 고생고생을 해서 자수성가를 해서 재산을 남겨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아들은 “초등학교도 안 나오고 고생고생해서 저렇게 유산을 남겼어. 나도 초등학교도 안 가겠어. 지금부터 나도 아버지처럼 똑같이 초등학교 안 다니고 중 ․ 고등학교, 대학교도 안 다니고 아버지와 똑같은 길 밟아보겠어.” 이런 아들이 있고, 또 한 아들은 “아버님은 고생고생해서 이렇게 유산을 남겼지만 나는 이 유산을 바탕으로 해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 외국유학까지 갔다 와서 아버님의 유산을 더 큰 유산으로 세계적인 기업으로 내가 발전시켜야겠다.” 이게 더 옳을까요?
아버님이 원하는 바로 유산을 충분히 활용해서 써먹기를 원하는 것이지. “너도 나처럼 똑같이 맨바닥에서 시작해서 인제 유산을 만들어서 나중에 써 먹어라.” 이게 아니지 아닐까요? 아버님이 남겨준 유산을 풍족히 잘 선용하는 것 이것이 아들이 할일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이 남겨주신 유산을 부처님이 이미 터득해서 벌어 놓으신 열어놓으신 마음의 법칙을 활용하는 게 먼저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도 부처님처럼 깨달음을 얻고 깨달음을 얻은 다음에 나도 중생제도를 해야 되겠다. 이런 마음보다 부처님이 이미 깨달아서 가르쳐주신 것 들을 내가 충분히 활용해서 ‘웃자 웃을 일이 생긴다. 감사하자 감사할 일이 생긴다. 일체는 다 오직 마음으로 짓는 것이다. 그러니깐 내가 지금부터 긍정적인 마음연습하자!’ 이렇게 해서 써먹어가면서 하나씩 하나씩 또 의문 나는 것들을 터득해 나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참선수행◈
깨달음으로 향한 수행을 하지 말고, 깨달음으로부터 출발하는 수행을 하자.
이런 소리죠. 부처님의 깨달음으로부터 출발하는 수행, 부처님의 깨달음을 향한 수행, 이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생사일대사’ 이런 것도 이미 부처님이나 선사님들께서 이미 밝혀 놓으셨던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일단 믿고, 이해하고, 또 내가 스스로 실행해 가면서 하나씩 하나씩 터득해 나간다. 그것이 바로 대승불교의 신, 해, 행, 증의 원리라고 하는 것이죠.
우리가 맨바닥부터 처리해야 할 것이 아니라 바로 ‘공사상’에서부터 출발하는 수행, 이것이 바로 참선수행입니다.
참선을 할 때 보통 좌선으로 먼저 시작하죠. 좌선에 대해 잠깐 설명해 드리자면 좌선은 반가부좌나 결가부좌를 틀고 앉습니다. 보통 다리가 길쭉한 분은 결가부좌가 비교적 잘 되지만, 쉽게 말해서 숏다리, 오동통한 분은 결가부좌가 잘 안됩니다. 그러면 반가부좌를 틀어도 괜찮습니다. 반가부좌부터 연습을 해서 나중에 결가부좌가 될 수 있도록 연습을 하면 되죠. 자세는 전체적으로 바른 자세로 똑바로 앉아야 하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허리를 바르게 펴줘야 됩니다. 허리를 너무 긴장을 해서 힘을 주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완전히 힘을 빼서 죽쳐져서 구부러져서도 안 되는 것이죠. 허리를 반듯하게 유지하는 것, 이렇게 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합니다.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시선 처리입니다. 우리가 좌선 할 때 시선은 정면을 바라본 상황에서 아래로 살짝 떨어트린 눈을 반쯤 연듯 한 반개의 시선을 취하면 됩니다. 그러나 진실로 중요한 것은 몸의 시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시선인 것입니다.
그래서 육신의 눈은 건성으로 떠 있는 것이지 육신의 눈을 가지고 일정한 처소를 집중해서 본다거나 초점을 맞춘다거나 하면 그게 바로 관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관찰하고 있는 것이잖아요. 관법이 되기 때문에 참선할 때 육신의 눈을 그저 건성으로 떠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의 초점이 어디에 있어야 하면 화두에 가 있어야 하고, 또 화두는 온 몸으로 들어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화두참구를 하다보면 머리로 사량분별, 계교심으로 참구하는 분들은 화두가 머리로 옵니다. 그래서 방편으로 말하는 것이 화두를 아랫배에 두어라. 아랫배에 화두를 두고 참구해라고 합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역시 방편이지만 머리로 화두를 듦으로써 오는 사량분별, 상기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말씀을 드리는 것이죠. 그래서 이 몸에 자세를 올바르게 하고 그 다음엔 마음의 자세, 화두에 마음의 초점이 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 되겠습니다.
그 다음엔 입술, 혓바닥인데 ‘구개’라고 그러죠. 입속 위 천장에다 살짝 갖다 대야 침이 덜 고이게 되죠. 침이 자꾸 고여서 꿀꺽하고 삼키면 옆에 있는 사람한테 상당히 방해가 됩니다. 선방에서 참선을 하다 보면 최소한 옆 사람 한테 방해는 되지 말아야 되거든요. 어떤 분들은 뭐 다리를 이리 폈다가 저리 폈다 그러시는 분들도 있고, 침을 ‘꿀꺽꿀꺽’삼키는 분들도 있고 또 조는 것도 편안히 앉아서 졸아야 되는데 막 ‘꽈당탕’하고 뒤로 넘어지는 분도 있고 하여튼 철야정진이나, 용맹정진하다 보면 별의별 모습이 다 있습니다. 어쨌든 다른 자세한 내용은 자꾸 참선하다 보면 또 스스로 점차 익혀지게 마련이고, 선지식의 지도를 받으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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