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량의 수호신들에게 드리는 기도
2006년 12월 10일 길상사 창건 9주년
오늘은 길상사 창건 기념일이니, 이 기회에 길상사가 세워지기까지의 과정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불교 교단에서 세운 절은 그 시작부터가 시주의 보시에 의해서였습니다.
최초의 절은 마가다국의 근교에 있는 죽림정사竹林精舍로, 마가다국의 왕 빔비사라의 발심에 의해서 세워진 절입니다.
그는 부처님이 수행자이던 시절에 이미 부처님께 귀의한 사람으로,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후 교단이 형성되자 절을 지어 기증했습니다.
제가 불일암에서 살 때의 일입니다.
겨울이면 직접 끓여 먹는 자취 생활이 지겹고 세상 구경도 할 겸 1987년 겨울부터는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송광사 분원 고려사에 가서 서너 달씩 지내다 오곤 했습니다.
물론 빈손으로 가지 않고 경전 번역 일거리를 가져가 일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이러기를 아마 4, 5년 했을 것입니다.
이 무렵 서울 성북동의 요정 대원각의 주인 김영한金英韓 여사를 고려사 회주인 대도행 보살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김영한 님은 당시 <샘터>에 매달 실리던 저의 글을 읽기 위해 정기구독자가 되었노라고 처음 만난 자리에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이때부터 대원각을 절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다.
그러나 저는 번거로운 일에 얽혀 들기 싫어하는 천성 탓에 마음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제 거처를 강원도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한 해 겨울, 중이 하는 일 없이 공밥만 축내고 있다는 사실에 몹시 자책을 느꼈고,
세상에 도움이 될 일을 이것저것 모색하던 차에 ‘맑고 향기롭게’ 살기 운동을 전개해 보기로 했습니다.
종로에 있는 사무실을 빌려 쓰게 되었는데, 여러 가지로 불편한 일들이 생겨 구체적인 도량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대원각을 절로 만들자는 거듭되는 제안에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절을 만들 때 어떤 조건도 붙이지 않고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로 해야 한다고 우선적으로 다짐을 받습니다.
모든 절이 다 이런 정신으로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사찰 운영을 의논하는 자리에서,
저쪽 재산관리인이 앞으로 절을 운영하는 데 재단법인을 만들어 이사와 감사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일어서고 말았습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절을 세우자는 처음 뜻에 어긋났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전통적으로 절 살림에 이사와 감사가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 절에 사는 스님과 신도들에 의해서 운영되는 것이 절 살림입니다.
그사이 다른 여러 스님들이 이곳에 절을 세울 생각으로 시주의 조건에 맞도록 절을 만들겠다며 접촉을 시도했지만,
시주 김영한 여사의 뜻은 10년 동안 초지일관, 오로지 저에게 이 장소를 맡기겠다는 데 변함이 없었습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9년 전 길상사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길상사가 창건된 지 얼마 안 되어 시주가 세상을 뜨게 되자, 저쪽 재산 관리인 측에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절의 일부 부지를 돌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법원에서는 1심과 2심에서 이유 없다고 기각했습니다.
절은 종단의 공동재산이지 결코 개인의 소유가 될 수 없습니다.
시주는 나를 믿고 내가 하는 대로 따르겠다고 했지만, 절은 개인의 사물이 될 수 없는 것이 전통적으로 내려온 승가의 규범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송광사 분원으로 이 절을 종단에 등록하게 된 것입니다.
절에 어떤 개인의 지분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그 절을 세우는 데 어떤 공이 있다고 해서 지분을 달라고 하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불교 교단의 계율에는 승가물僧伽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에는 사방승물四方僧物과 현전승물現前僧物이 있는데, 사방승물은 그 도량에 사는 스님들이 함께 쓰는 승단의 공유물을 가리킵니다.
그 절의 건물이나 방이나 전답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현전승물은 현재 그곳에서 살고 있는 스님들이 사사로이 쓰는 개인의 사물을 말합니다.
사방승물은 현전승이 개인적으로 나누어 쓰거나 처분할 수 없다고 율장은 규정하고 있습니다.
공과 사를 분명하게 가리고 있는 청정한 승가 정신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이 길상사에 제 개인의 방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일이 있어 산을 내려올 때 행지실에 잠시 머물 뿐입니다.
저는 아직까지 이 절에서 단 하룻밤도 잠을 잔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자지 않고 떠납니다.
이와 같은 처신은 제 개인의 삶의 질서이며 생활 규범이기도 합니다.
이 도량에 살지 않으면서 방을 차지한다면 그것은 부처님 법 밖의 행위입니다.
더구나 맑고 향기롭게 살자고 하는 염원으로 이루어진 도량이므로,
부처님의 가르침과 승단의 전통적인 규범에 어긋나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중노릇이란 어떤 것인가? 부처님 제자라면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남의 자리를 넘보지 말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모두가 자기 자리를 지킬 때 세상은 더 맑고 향기로워집니다.
길상사吉祥寺라는 이름은, 이 절이 세워지기 전 파리에 송광사 분원으로 ‘길상사’를 만들었는데, 그 이름이 좋아서 따랐습니다.
또한 송광사의 옛 이름이 길상사이기도 한 그런 인연도 있습니다.
절을 세우긴 했지만 자리 잡히기 전까지 저는 좀처럼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시주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절을 만들어 가야하는데, 요정이었던 건물을 절로 바꾸느라 여기저기 손대다 보니 빚이 쌓여 갔습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발원을 했습니다.
“길상사가 맑고 향기로운 도량이 되게 하소서. 이 도량에 몸담은 스님들과 신도들,
이 도량을 의지해 드나드는 사람들까지도 한 마음 한뜻이 되어, 이 흐리고 거친 세상에서 맑고 향기로운 도량이 되게 하소서.
좋은 스님들과 신도들이 모여서 법답고 길상스런 도량을 이루게 하시고,
안팎으로 보호하고 있는 신도들이 부처님과 보살들의 보살핌 속에 행복한 나날을 이루게 하소서.”
이와 같은 제 염원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입니다.
오늘 길상사가 있게 된 것은 알게 모르게 염려하고 보살펴 주신 많은 분들,
소임을 보아 온 스님들과 여러 신도들의 공덕임을 누구보다도 이 도량이 수호신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그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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