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에 허물어지지 않는 집을 세우라
2005년 5월 8일 낙성식
“보리누름(보리가 누렇게 익는 철)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따뜻해야 할 계절에 오히려 춥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는 뜻입니다. 보리누름에는 무척 춥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맥추麥秋라고도 합니다. 들에 나가면 누릇누릇 보리가 여물어 갑니다.
그 보리를 익히느라 오늘 이렇게 추운 모양입니다.
지장전이 세워지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신심이 들었습니다.
그 정성과 신심이 주추가 되고 기둥이 되고 대들보가 되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이 집은 나무와 돌과 흙과 쇠붙이와 유리와 시멘트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집이 세워지기 전까지 이것들은 한낱 자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집을 짓는 데 함께 쓰임으로써 평범했던 건축 자재는 새로운 생명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장전으로 인해 새로운 존재 의미를 부여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한낱 주민등록번호로 통하는 평범한 개인 존재는 인류가 지향하는 공동선共同善에 참여함으로써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세월의 비바람에 의해 깎기고 삭습니다. 덧없기는 건축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인연으로 세월의 비바람에 허물어지지 않는 지장전을 각자 마음속에 세웠으면 합니다.
건축물은 형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안에 혼이 들어있지 않으면 빈껍데기나 다름없습니다. 지장전의 혼이 바로 지장보살입니다.
모든 보살이 그렇듯이 지장보살 역시 역사적인 존재인 동시에 언제 어디서나 실재하는 보살입니다.
이웃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한다면 우리들 자신이 곧 현존하는 이 시대의 지장보살입니다.
지장보살의 존재 의미는 고통 받는 이웃을 구제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생아 없다면 보살의 존재 또한 무의미합니다.
마지막 한중생까지도 지옥의 고통에서 구제하지 않고는 자신의 임무를 마치지 않겠다는 지장보살의 기원을 거듭거듭 음미해 보십시오.
저마다 자기 몫을 챙기기에 급급한 비정하고 냉혹한 세태에 지장보살의 염원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 어떤 힘보다 자비의 힘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것만이 세상을 구할 수 있습니다.
지장보살의 염원을 각자 마음속에 심어 우리 함께 이 땅의 살아 있는 지장보살이 되십시다.
이 지장전 세워진 뜻이 바로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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