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불통게(七佛通偈)
제악막작(諸惡莫作)하고 중선봉행(衆善奉行)하라.
자정기의(自淨其意)하면 시제불교(是諸佛敎)이니라.
온갖 악을 짓지 말고, 온갖 선을 받들어 행하라.
스스로 그 마음 깨끗이 하는 것,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니라.
사대를 빌려서 몸이라 하고 마음은 본래 없이 경계 따라 일어난다.
경계가 없으면 마음도 없어지나니 죄와 복이 요술 같아 일어나자 멸한다.
혜암(惠菴)선사께서 강조하신 말씀 중에 이런 법문이 있습니다.
“공부를 하되 가장 긴요한 것은 ‘간절 절(切)’ 자이니, ‘절’ 자가 가장 힘이 있느니라.
간절하지 않으면 게으름이 생기고 게으름이 생기면 방종(放縱)이 이르지 않는 곳이 없으리라.”
화두 참구는 선사와 제자 사이에 주고 받는 대화나 행동이기에 명안종사(明眼宗師)를 친참(親參)하여
공안을 타파하고 조사의 관문을 투과함에 있어 스승 없이 참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기에 화두는 반드시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야 하며 점검도 그 스승으로부터 꼭 확인을 받아야 합니다.
역대 조사와 천하 선지식들은 한결같이 말씀하시기를
“스승 없이 홀로 깨닫기란 만(萬)에 하나도 드물다. 스승 없이 홀로 깨닫는 자는 천연외도(天然外道)”라고 하였습니다.
화두는 ‘수미산(須彌山)’ 공안을 투득하지 않고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대혜스님도 조사 공안 천칠백 칙이 모두 운문 스님의 이 ‘수미산’ 화두 하나에 근본을 두어 일어난 것이라 하였습니다.
‘수미산’ 화두를 타파하여도 계속 공(功)을 들여야 합니다.
공을 들이지만 공(功)들인다는 생각 없이 공들여야 합니다.
공들인다는 것은 주력하듯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혜암선사님께서는
“나는 오십 년을 공(功)들였다. 이십 년은 별로 모르겠고 삼십 년 되니까 스승 없는 지혜가 나온다.” 고 하셨습니다.
화두를 타파할 때 마다 특별히 강조하시는 말씀이 “공을 들여야 하고 결코 파설하면 안 된다.”는 말씀을 항상 강조하셨습니다.
“불도를 구하고자 할진댄 마땅히 어떤 법을 닦아야 가장 뚜렷하고 요긴하겠습니까?”
“오직 마음을 관(觀)하는 한 가지 법이 모든 행(行)을 포섭하나니, 이를 뚜렷하고도 요긴한 것이라 부르느니라.
삼계(三界)의 업보(業報)는 오직 마음에서 생긴 것이니, 마음을 깨달으면 삼계 안에서 삼계를 벗어나리라.
땅을 인해 넘어지면 땅을 인해 일어나거니, 땅이 너를 향해 무어라고 하겠는가?
이 마음을 제하고는 따로이 부처를 찾을 수 없나니, 이 마음을 떠나서 보리(菩提)와 열반을 구한다는 것은 옳지 못하니라.
부처는 허물이 없건만 중생이 전도(顚倒)되어 자기의 마음이 곧 부처임을 깨닫지도 알지도 못하느니라.
자기의 마음이 부처인 줄 안다면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지 말지어다.
부처가 부처를 제도할 수 없는 것이니, 마음을 가지고 부처를 찾으면 부처를 알지 못하리라.
나고 죽는 일이 크니 헛되이 살아 버리지 말라.
진기한 보물이 산 같이 쌓이고 권속이 항하의 모래만큼 많더라도 눈이 떠있을 때는 보이거니와 눈이 감긴 뒤에도 보이던가?
그러므로 유위법(有爲法)은 꿈이나 허깨비 등과 같은 것임을 알 수 있으리라.
삼계(三界)의 뜨거운 번뇌(煩惱)가 마치 불타는 집[火宅] 같나니 그곳에 오래 머물러 길고 긴 고통을 달게 받을 수 있으랴?
윤회를 면하려 하면 부처를 구하는 것만 못하니, 부처를 구하려 한다면 부처는 곧 마음이니라.
그러므로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중생들을 두루 관찰하건대 모두가 여래의 지혜와 덕상(德相)을 갖추고 있다.’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모든 중생의 가지가지 허환(虛幻)한 변화가 모두가 여래의 원각묘심(圓覺妙心)에서 나왔다.’ 하시니,
이로써 알라! 마음을 떠나서는 부처를 이룰 수가 없느니라.
마음의 성품은 물듦이 없어 본래 스스로 원만히 이루어 졌으니
다만 허망한 인연[妄緣]을 여의기만 하면 곧 여여(如如)한 부처니라.
만일 알기를 바란다면 끝내 알지 못하리니, 오직 알려 하지 않을 줄만 알면 이것이 곧 성품을 보는 것이다.
보조스님의 옛말에도 있듯이 도(道)란 아는 데 속한 것이 아니며 알지 못하는데 속하지도 않는 것이니,
안다는 것은 망상(妄想)이요, 알지 못하는 것은 무기(無記)이니,
만일 참으로 통달하여 의심하지 않는 경지는 큰 허공같이 넓고 끝이 없거니와 어찌 시비를 억지로 일으키겠는가?
‘티끌 번뇌를 활짝 벗어나는 일은 예사롭지 않으니, 고삐를 꼭 잡고 한바탕 애쓸 지어다.
한차례 추위가 뼈에 사무치지 않으면 코를 찌르는 매화향기 어찌 얻으랴.’ 하였으니,
공부를 하되 가장 긴요한 것은 간절 절(切)자이니, 절 자가 가장 힘이 있느니라.
간절하지 않으면 게으름이 생기고 게으름이 생기면 방종(放縱)이 이르지 않는 곳이 없으리라.”
대장경은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경장(經藏), 율을 기록한 율장(律藏), 논을 모은 논장(論藏), 이렇게 합해서 삼장(三藏)이라고 합니다.
팔만대장경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불자 누구에게나 소중한 보물입니다.
부처님이 깨달은 연기법은 불교의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교리이며, 그 의미가 심원하여 바르게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
연기(緣起)라는 말은 빨리어로 ‘paticcasamuppada’, 우리말로 번역하면 ‘의지하여 함께 일어남’입니다.
부처님은 연기법의 순관과 역관 및 사성제를 깨닫고 탐 ․ 진 ․ 치 삼독을 멸하는 팔정도의 수행을 한 결과 열반을 성취하였습니다.
중아함경 상적유경에 부처님은 “연기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연기법을 본다.”고 말씀하십니다.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는 바로 이와 같은 연기법입니다.
우리도 연기법을 깨닫고 실천을 하면 누구나 부처님과 꼭 같은 지혜 덕성을 구비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남방불교를 소승이라고 폄하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어떤 분은 부처님 말씀만 불교라고 합니다.
대승불교를 위시하여 오랜 역사를 통해서 진리를 전해주신 조사님 어록도 바르게 이해를 할 수 있다면
부처님의 말씀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며, 조사님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달마대사와 혜가스님의 대화 핵심도 부처님께서 말씀한 무아를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공부를 하되, 첫째는 생사의 마음을 깨뜨리는 것이 가장 요긴하니라,
세계와 몸과 마음이 모두가 거짓 인연이라 실로 주재자가 없음을 굳게 간파(看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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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2일 혜주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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