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품을 스스로 보지 못했을 뿐이요, 성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슨 까닭이겠는가? 보는 것이 곧 성품이니, 성품이 없으면 보지 못한다.
아는 것[識]이 곧 성품이므로 알음알이[識]의 성품이라고 하고,
깨닫는 것이 곧 성품이므로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고,
만법을 냄으로 법성이라 부르며, 또는 법신(法身)이라고도 한다.
마명조사(馬鳴祖師)께서 말씀하시기를,
‘법이라 함은 중생심(衆生心)을 말함이라. 마음이 나면 온갖 법이 나고,
마음이 나지 않으면 온갖 법도 나지 않아 이름조차도 없다.’고 했다.
미혹한 사람은 법신이 형상이 없으나 물건에 따라 형상을 나타내는 것임을 모르기 때문에 푸른 대숲을 보고는 법신이라 하고, 울울한 황화(黃化)는 모두 반야라 한다.
황화가 반야라면 반야는 곧 무정물(無情物)과 같은 것이요,
푸른 대가 법신이라면 법신은 곧 초목과 같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죽순(竹筍)을 먹으면 모두가 법신을 먹는 것이니,
이런 말이야 들어 둘 필요나 있겠는가?
마주 대하고서도 부처를 몰라보고 영원한 겁을 희구하며,
전체의 법 안에서 미혹하여 밖으로 향하여 찾는구나.
그러므로 도를 아는 이는 다니거나 머물거나 앉으나 누우나 모두가 도요,
법을 깨달은 이는 종횡으로 자재하여 법 아닌 것이 없다.
'일상속의 대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衆生日用不知這一物(수심결) (0) | 2014.05.24 |
---|---|
떠돌이 (0) | 2014.04.19 |
나옹 스님의 토굴가 (0) | 2014.02.16 |
무소의 뿔의 경 (0) | 2014.01.11 |
心外無佛性(심외무불성) (0) | 2014.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