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연히◈
홀연히 생각하니 도시 몽중이로다.
‘홀연히’라는 말에는 불교의 시간관이 잘 담겨있습니다. 모든 것들은 다 홀연히 생긴다고 하는 거죠. 이는 현대 과학에서도 입증이 됐죠. 빅뱅 또는 블랙홀, 그래서 홀연히 막 터져가지고 우주가 생기고 홀연히 빨려 들어가서 우주가 소멸되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보면 홀연히 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어느 날 홀연히, 참선이라는 게 있다는데 그게 무얼까 참선을 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다는데 어떻게 하는 걸까. 이러한 생각이 홀연히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죠.
홀연히 생각해 보면 인생살이, 삶, 이 모두가 도무지 꿈과 같다는 것입니다. 꿈이라는 것은 실체가 없고, 고정되어 있지도 않으니 인생살이 역시 꿈처럼 고정되어 있지 않으니 모두가 똑같다고 하는 것이죠. 우리의 몸, 마음, 사실은 고정된 실체가 없습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은 나가 아닌 것입니다. 참선곡 풀이를 듣기 전의 여러분과 참선곡 풀이를 듣고 난 후의 여러분은 같은 여러분이 아닌 것입니다. 전과 후에는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몸가짐이 달라져 있기 때문입니다.
아난존자가 어느 날 성 안으로 탁발을 하러 갔다 와서, 부처님 앞에서 호들갑을 떨었어요. “부처님, 오늘 제가 아주 신기하고 기괴한 일을 봤습니다.” 그러는 거예요. “무슨 일을 봤느냐?”, “제가 탁발을 하러 성 안으로 들어갈 때 성문 앞에서 풍악쟁이들이 풍악을 잡으면서 신나게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탁발을 마치고 나올 때 보니까 방금 전에 그렇게 신나게 놀고 있던 풍악쟁이들이 다 죽어 있었습니다.” 이러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부처님이 말씀하셨죠. “나는 어저께 그거보다 더 괴이한 일을 보았느니라.”, “무슨 일을 보셨습니까?”, “어제는 내가 탁발을 하러 들어갈 때 보니까, 풍악쟁이들이 신나게 놀고 있었는데, 탁발을 마치고 나오면서 보니까, 여전히 신나게 놀고 있더라.”, “네?” 아난존자의 입장에서는 풍악쟁이들이 갑자기 죽어버린 게 괴이한 일이지만 찰나 생멸의 도리를 투철하게 알고 계시는 부처님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놀고 있는 게 괴이한 일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어제도 숨을 쉬었는데 오늘도 숨을 쉬고 있는 거, 이게 괴이한 일입니다. 어제 숨을 쉬던 사람이 오늘 갑자기 죽은 거 이게 당연한 일이라는 겁니다. 왜냐? 모든 존재는 무상한 것입니다. 변화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지요. 그래서 변화하는 것이야말로 당연한 것이고, 변화하지 않고 있는 게 그게 바로 이상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현실을 살면서 진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죠. TV, 라디오를 켜면 뉴스, 사건, 사고 엄청 나옵니다. 어느 나라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나고, 우리나라에서도 교통사고가 일어나고 수십 명 때로는 수백 명이 갑자기 죽거나 다치고 이런 소식을 보면서도 우리는 언제나 ‘강 건너 불!’로 보고 있습니다. 설마 나한테는 설마 내 가족한테는 저런 일은 안 생기겠지. 그러나 미안한 일이지만 언제 어느 때에 그런 것들이 나한테 닥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몸뚱이에 대한 애착◈
천만고 영웅호걸 북망산 무덤이요, 부귀문장 쓸데없다 황천객을 면할쏘냐?
오호라 나의 몸이 풀끝의 이슬이요, 바람속의 등불이라.
제가 중국의 낙양방면에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 가니까 북망산이 진짜로 있대요. 서울에 망우리고개가 있듯이 거기 북망산의 강변에 수많은 무덤들이 있는데 여러 종류도 수도 없이 많습니다. 살아생전에 고고한 대작이었던 사람은 호화스럽게 지어졌고, 일반인들은 잘 보이지 않게 있고, 그렇게 모든 영웅호걸이라 하더라도 피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생로병사라고 하는 것이죠. 부귀문장도 쓸데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황천객은 면할 수가 없다. 아무리 잘 살든, 우리나라 최고의 재벌이었던 분들도 다 때가 되니까, 다들 돌아가 시대요. 그렇게 돈 많으면 병도 안 걸릴 것 같고, 병에 걸렸다 하면 치료 다 받고 나 낳을 수 있는 것 같지만, 미안하게도 돈 많은 사람들도 다 늙고 병들어서 죽습니다. 또 심지어는 어떤 분들은 그 종교를 믿으면 다 피해갈 것처럼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 역시도 피해가지 못 합니다. 그릇된 견해인 것이지요. 종교의 성직자조차도 때로는 교통사고도 나고, 때로는 암에도 걸리고, 뭐 이런 식으로 해서 결국은 늙고 병들어 죽는다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 몸뚱이는 풀끝의 이슬과 같고, 바람 속의 등불과 같아 그렇게 순간적으로 언제 갈지 기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영구히 살 것처럼 이렇게 생각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릇된 몸뚱이 착(着)이라고 하는 것이죠. 몸뚱이에 대한 애착.
◈무위법과 유위법◈
삼계대사 부처님이 정녕히 이르시기를,(이렇게 잘못된 생각을 하기에)
삼계대사라는 것은 부처님은 욕계, 색계, 무색계, 삼계의 큰 스승님이신 것이죠. 그래서 부처님은 인간만의 스승이 아니라 천인사, 천상, 신들의 스승이기도 하고, 축생들에 스승이기도 하고 심지어 지옥중생까지도 제도하시는 대자대비하신 스승님이라고 하는 것이죠.
마음 깨쳐 성불하여 생사윤회 영단하고 불생불멸 저 국토에
생사윤회는 영구히 끊을 수가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죠. 세상에 태어난 것은 체험학습을 하기 위해 몸 받아서 온 것입니다. 몸뚱이가 있어야 실감이 난다고 하는 것이죠.
어학을 공부한다고 할 때 책만 보는 것보다 리스닝하는 것이 낫고, 또 외국인과 직접 대화하는 것이 훨씬 실감이 나고,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배우고자 하는 언어를 쓰는 나라에 직접 가서 몸으로 부딪쳐가면서 사는 것 이것이 가장 실감이 나겠죠.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몸 받아 세상에 온 것은 공부는 가장 실감나게 하며 뜻은 체험학습을 하기 위해서 온 겁니다.
그래서 공부는 숙제가 덜 끝나면 계속 죽었다, 태어났다, 하면서 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다 숙제가 다 끝나게 되면 더 이상 올 필요가 없죠. 숙제가 다 끝난 이가 누구냐 하면 바로 아라한이죠. 아라한은 숙제를 다 마친 사람無爲,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사람, 공부를 다 마친 사람이며, 해탈한 분이라고도 하는 것이죠. 그러나 자기 숙제는 다 마쳤는데도 불구하고 남들의 숙제를 도와주기 위해서 온 이, 즉 숙제도우미가 계시는데, 그분들이 바로 보살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불보살님들의 도움을 받아서 체험학습을 하는 겁니다.
상락아정
깨달음의 세계는 항상하고, 즐겁고, 불성인 내가있고, 청정하므로 상락아정이라 하여 열반의 네 가지 덕성으로 의미합니다. 열반의 세계는 상락아정이여서 이 길은 무위도를 닦아서 이루어지는 거죠. 무위이라는 것은 함이 없다. 이런 뜻이죠. 더 이상 공부할 게 없다. 이런 공부를 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공부에는 두 가지 공부가 있어요.
무위도를(무위법과 유위법) 사람마다 다할 줄로 팔만장교 유전하니,
유위법은 쌓아가는 공부, 무위법은 덜어가는 공부입니다. 세간의 공부는 유위공부죠. 자꾸 쌓아가는 거죠. 지식을 쌓고, 명예를 쌓고, 재산을 쌓고 무언가 하여튼 자기 것으로 자꾸자꾸 쌓아가는 분별심을 쌓아가는 공부입니다.
그러나 참선은 무위법의 공부라고 하는 겁니다. 무위공부는 놓아가는 공부, 쉬어가는 공부입니다. 분별심을 쉬어가고 몸뚱이 착을 놓아가고 애착을 쉬어가고. 이런 공부야 말로 진정한 공부 그것이 바로 참선공부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사람마다 참선공부를 할 수 있게 팔만대장경이 남겨져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팔만대장경이 모두 다 우리로 하여금 이런 무위법을 공부할 수 있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죠.
사람 되어 못 닦으면 다시공부 어려우니 나도 어서 닦아보세.
우리 사람의 몸은 삼선도에 속합니다. 육도윤회 가운데 천상, 수라 또 인간해서 삼선도에 속해요. 삼악도 지옥, 아귀, 축생을 제외한 천상, 인간, 수라 가 육도윤회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 몸 받기 어렵고 또한 불법 만나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다. 이렇게 삼난을 이야기 하죠. 우리가 이미 사람 몸 받았고, 또 불법 만났고, 불법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라고 하는 참선곡을 지금 이 자리에서 함께 공부하고 있으니, 우리야 말로 최상의 복이 터졌다. 공부만 하면 된다. 바로 이러한 소식입니다. 참선은 과연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됩니까? 참선은 어렵습니다. 이런 말씀들을 하시며 수행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죠. 그러나 참선이라는 것은 결코 어려운 것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그래서 막연한 것도 아닙니다. 이 경허스님의 참선곡에는 참선의 A부터 Z까지 모든 것이 다 갈무리하고 있습니다. 참선곡을 중심으로 해서 함께 공부하며 풀이해 나가다보면 저절로 참선의 이치와 원리 방법에 대해서 터득하게 됩니다.
◈제행무상과 마음공부 방법◈
지난 시간에 맨 첫 부분 홀연히 생각하니 도시몽중이로다 부터
다시공부 어려우니 나도 어서 닦아보세 하는 부분까지 했습니다.
우리가 제행무상의 이치를 잘 알고 공부의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죠. 사실 제행무상이라는 것은 불교의 가장 근본적인 가르침입니다. 모든 존재는 변한다. 이런 뜻이죠. 이 모든 존재는 변화한다 이 말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허무주의, 모든 존재는 고정된 실체가 없으므로 변화한다. 그러하니 허무하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고, 다음으로 무상하기 때문에 항상 변화하므로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허무와 무상을 잘 구별하여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만약 나의 모습, 나의 정체가 무상한 것이 아니라 고정되어 있다면 이야 말로 허무주의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내가 이미 결정되어져 있다고 하면 난 어떻게 살든 나와는 상관없는 거예요. 공부를 하든 말든 무엇을 하든 다 필요가 없는 것 아니겠어요? 이미 나의 모습이 결정되어 있는데 말입니다. 나의 모습이, 나의 자아가 변하지 않고 결정되어진 대로 흘러가는 것이지요. 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힘 빠지는 일입니까?
간혹 불교의 제행무상의 이치를 허무주의로 받아들이는 분이 계시는데 그것은 그릇된 이해입니다. 제행무상의 올바른 이해는 고정된 내가 없기에 지금 여기에서 나의 행위가 나라는 것. 나는 내가 만들어 나간다는 것. 이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역동적인 가르침입니다. 이렇게 생각해야 올바른 해석인 것이죠. 그러니 다시 말해 나의 모습이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항상 변화할 수 있어서,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나의 행위가 나를 결정짓는다는 것입니다.
제행무상의 가르침을 소극적으로 해석하면 허무주의에 빠질 수 있지만,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오히려 자기창조설이여서, 불교에서 가르치는 제행무상은 자기창조설입니다. 나는 내가 창조합니다. 지금 이 모습도 나의 작품일 뿐!
그래서 제행무상의 이치에 입각해서 우리는 공부 한번 제대로 해 보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몸뚱이가 있어야 실감나고, 먹는 것도, 노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실감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몸뚱이를 받아서 세상에 온 것은 체험학습을 하기위해 왔는데, 불구하고 이 몸뚱이 받고 나서는 몸뚱이에 대한 애착에(몸뚱이 착) 빠져 공부하러 온 것을 잠시 깜박 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참선곡을 들으면서 홀연히 다시 리마인딩(reminding)되는 것 입니다. 아차! 내가 공부하러 왔는데 이게 무슨 짓인가 하며 돌이켜서 생각하여 공부를 하는 것이지요.
40대 중반정도 되는, 어떤 분이 국사암에 찾아 오셔서, 자기는 어렸을 때 다짐하기로는 어른이 되어 사업을 잘 해 성취하여 돈 잘 벌고 좋은 집과 좋은 차, 모든 것 다 이루면 마음도 충만할 줄 알았는데, 막상 생각했던 것 모두를 성공했어도 역시 뭔가의 가슴 한 구석이 여전히 허전하다는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단순히 잘 먹고 잘 살면 좋을 것 같지만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은 잘 먹고 잘 산다고 해서 만족하고 충만할 수 없다는 것이죠. 이는 체험학습 하기 위해서 왔기 때문에 체험학습을 안 하면 항상 허전한 것입니다. 그래서 닦으려고 하지만 닦는 방법과 또 닦는 것도 마음을 닦아야 하는데 그 마음을 어떻게 닦아야 하는 가 등 여러 방법에 대해서 지금부터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생활의 기술+참선곡, 행불어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허스님 참선곡 4 (0) | 2009.08.07 |
---|---|
경허스님 참선곡 3 (0) | 2009.08.07 |
참선곡(參禪曲) 1 (0) | 2009.08.07 |
경허스님 참선곡 전문 (0) | 2009.08.07 |
12, 배움은 축적하는 것이 아니다 (0) | 2008.07.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