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기술+참선곡, 행불어록

경허스님 참선곡 3

혜주 慧柱 2009. 8. 7. 17:47

◈진정으로 밥 먹는 놈이 누구냐?◈

 

닦는 길을 말하려면 허다히 많건마는 대강추려 적어보세. 앉고서고 보고듣고 착의끽반 대인접화 일체처 일체시에 소소영영 지각하는 이것이 무엇인고?

닦는 길을 말하려면 허다히 많건마는 대강 추려 적어보세.

공부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참회, 발원, 기도, 참선, 행불 등 이런 모든 것들이 모두 마음공부 방법라고 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우리가 체험학습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온 것이기 때문에 기도조차도, 참선조차도 또 생활 속에 수행조차도 모든 것이 다 마음공부로 귀결을 시킵니다. 그래서 기도라는 것은 일심공부요, 참선은 무심공부요, 행불, 생활 속의 수행은 발심공부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죠.

불보살님과 내 마음을 한마음으로 합이 시키는 공부가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어떤 가피를 받고 복을 받고 하는 것은 부수적인 효과이고, 한마디로 말하면 연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직접적인 효과는 인을 다스리는데 있는 것이요. 인은 바로 나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마음을 한마음으로 모아가는 공부. 그것이 기도인데,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려거 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건 어떠한 마음이라도 있음으로 하여금 일단은 고(苦)를 받는 것이지요. 그 한마음조차도 쉬는 공부, 그것이 무심공부고 바로 참선공부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있기 때문에 고통이 있는 것이지. 내가 없으면 고통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래 참선은 안심법문이라 하며, 옛 어른은 여러 가지 표현으로 할 수 있지만 “참선을 한마디로 일러라.” 이렇게 간단히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을 편안하지만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궁극적하는 가르침이죠.

우리의 안심에는 두 가지 있는데 의타적인 안심과 자발적인 안심입니다. 의타적인 안심은 밖으로 어떤 신이나 불보살님께 기대여서 얻는 안심, 마음 편안함은 모두 신이 알아서 해주실 테니까! 부처님이 다 알아서 가피주실 거니까! 이렇게 밖으로 정신적 존재든 또는 물질적 존재든 보험 들어놓았으니까! 돈 엄청나게 벌어났으니까! 이렇게 물질적 존재든, 정신적 존재든 밖의 존재에 의존해서 얻는 안심, 이것이 바로 의타적인 안심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고 일시적인 것이지요. 그리고 언제 상황이 변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눈치를 봐야 되며, 신께서 나를 이렇게 하면 예뻐해 주실까! 안 해주실까! 내지는 재물이라는 것도 언제든지 없어졌다 만들어졌다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래서 그런 밖에 어떤 정신적, 물질적 존재에 의존해서 얻는 안심은 그것은 궁극적인 안심이 못 됩니다. 그것은 일시적인 안심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궁극적 안심은 미래가 아닌 바로 지금 여기에서 터득할 수 있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참선의 멋이죠.

“제가 마음이 불안합니다.”

“그 불안한 마음을 내놓아 보아라.”

“아무리 찾아보아도 내어 놓을 마음이 없습니다.”

“내가 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느니라.” 이게 궁극적인 안심입니다.

스스로 불안한 마음은 본래 없는 것을 터득하는 것이 바로 안심 법문입니다.

“저의 죄를 소멸해 주십시오.”

“너의 죄를 내놓아 보아라.”

“죄를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습니다.”

“너의 죄는 소멸되었다” 이렇게 이것을 참선의 즉각적인 방법인 것이죠.

참선은 사실 방법이 없습니다. 참선을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렇듯 방법이 없는 것 이예요. 즉 참선에는 어떻게 닦아야 하느냐의 어떻게 가, 없는 것입니다. 사실 무 방법의 방법이라고 하는 것이죠.

방법에 무언가를 세운다면 그만큼 돌아가는 것입니다. 최고의 지름길, 즉 점과 점 사이의 최고의 최단거리는 직선이죠. 참선은 직선 같은 거예요. 바로 자기마음을 돌이켜 보면서 본래 생사라는 게 없구나. 본래 부처구나. 불안한 마음이라는 것은 없는 것이구나. 이렇게 즉각적으로 돌이켜 봐서 즉각적으로 편안함을 궁극적으로 얻는 것. 이것이 사실은 참선이야말로 방법이 없다 하며 옳은 방법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참선은 어떤 경전이라든가 수행방법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중히 여기지 않는 반면 선지식은 중히 여깁니다. 앞서서 본성자리를 터득하신 분이 바로 선지식입니다. 그래서 선지식의 가르침에 의존해서 대화, 문답으로 공부하며 이것이 바로 직설직답인 참선의 본래공부방법인 것입니다. 그러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이런 것들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방편으로 좌선이니 화두니 하며 세운 방법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좌선을 하더라도, 화두를 챙기더라도 분명히 알고 챙겨야 하지요. 그러나 방편 속에 진실이 있다고 하니 방편을 마냥 가볍게 여길 수만도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방편을 지금 경허스님께서 제시하고 계시는 겁니다. 앉고서고 보고 듣고 착의끽반 대인접어 일체처 일체시에 소소영영 지각하는 이것이 무엇인가? 하고 이렇게 방편으로써 방법을 드러내고 계신 것이죠.

마음을 공부하고 마음을 깨치는 방법은 일정한 방법이 없다고 말씀드렸죠. 일정한 방법이 없기 때문에 모든 방법이 다 가능한 겁니다. 언젠가 무문관 말씀을 드렸죠. 무문이라 하면 두 가지를 연상할 수가 있습니다. 사방이 꽉 막힌 폐쇄된 공간도 무문이고, 사방이 뻥 뚫린 열린 공간도 역시 무문입니다. 그래서 사방이 꽉 막힌 무문관을 연상할 것이냐 사방이 뻥 뚫린 무문관을 연상할 것이냐는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죠. 참선 방법은 실은 사방이 뻥 뚫린 무문관입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 참선의 기본정신입니다. 일정한 방법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방법으로든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며 부처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정한 형상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현상으로도 나툴 수 있다. 이게 바로 부처님의 모습이고, 그게 바로 공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제자 중 16아라한 가운데 여섯 번째 발타라 존자 같은 분은 목욕을 하다 깨달음을 얻으신 분이예요. 이 분은 하도 목욕을 좋아해서 하루에도 삼십 번씩 목욕을 하셨다고 그래요. 부처님께서 이것을 아시고 발타라 존자에게 물었죠.

“네가 하루에도 몇 십번씩 목욕을 한다며?”

“ 그렇습니다.”

“그럼, 네가 목욕을 할 때 어떻게 하느냐?”

“네, 세존이시여! 깨끗한 물로 저의 몸뚱이를 씻어냅니다.”

“그래, 그렇다면 앞으로는 목욕을 하면서 몸뚱이만 씻지 말고 맑은 물로 네 마음속의 번뇌도 씻어 낸다는 마음가짐으로 목욕을 하여라.” 이렇게 조언을 하셨어요.

그래서 그 뒤부터는 목욕을 할 때마다 “몸뚱이만 씻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마음의 때를 이 청정한 물로 씻어낸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하루에 삼십 번씩, 사십 번씩 목욕을 해 마침내 얼마 안 있어서 해탈한 겁니다. 이 분 이 바로 목욕존자, 발타라 존자이죠.

그런가 하면 16아라한 중에 열여섯 번째 주리반특가 존자는 빗자루 하나 가지고 매일 도량청소만 했어요. 도량청소를 하면 “내 마음의 때와 먼지를 쓸어낸다.” 이런 마음으로 청소를 수행으로 삼았기 때문에 나중에 이 분도 역시 해탈 하셨어요. 그래서 이렇게 부처님 제자들을 보더라고 목욕을 하다 깨우친 분, 청소를 하다 깨우친 분, 별의 별 분이 다 있습니다. 그래서 대도무문이라는 것은 일정한 방법을 세우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방법이 다 가능하다. 이게 참다운 공의 사상이라고 하는 겁니다.

여기서 내세운 “경허스님의 권장하는 방법이 무엇이냐?” 하면 앉고, 서고, 보고, 듣고, 착의끽반 착의라는 것은 옷을 입는다는 것이고 끽반은 밥을 먹는다, 대인 사람을 대해서 접어 접대하고 말하고 하는 것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일상사 행동거지를 말하는 것이죠. 이렇게 일상사 행동거지를 함에 있어서 모든 처소와 모든 시간에 있어서 소소하고도 영영하게 소소영영이라는 것은 또렷또렷하다는 뜻이죠. 또렷또렷하면서도 신령스럽게 알아 챙기는, 알아차리는 이것이 바로 어떤 것인가? 하고 챙기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떤 것인가? 원래 방법이라고 하는 것은 간단할수록 좋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방법 자체가 벌써 돌아가는 것, 중간에 다리를 세운 것이기 때문에 한 가지라도 더 생기게 되면 한 단계라도 더 돌아가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생활에서 항상 알아차리는 이것이 어떤 것인가 하고 한 가지만 꾸준히 챙겨 들어가는 것이 참선인 것입니다.

어떤 분이 저한테 이런 질문을 하셨어요. 제가 한참 밥을 먹고 있는데 제 앞에서 진지를 같이 드시던 분이 저보고 “밥 먹는 놈이 누구냐?” 하하하~~ 깜짝 놀랐어요. 저는 “밥 먹는 놈이 누구냐고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떠서 먹는 것 아닌 가” 아무 생각 없이 밥을 먹죠! 그러나 진정으로 밥 먹는 놈이 누구냐? 진정으로 밥 먹는 놈이 누구인지 한번 참구해 보시길 바랍니다.

소소영영 지각하는 나의 마음이 어떻게 생겼는가? 하고 마음 챙기도록 내려 주시는 지침서입니다. 경허선사께서 직접주시는 화두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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