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과 신심명, 그리고 일기일회

31), 행복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

혜주 慧柱 2010. 5. 23. 07:36

행복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

2004년 8월 30일 여름안거 해제

 

90일 전 여름안거가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이 자리에서 제가 안거 기간에 지닐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더위에 땀과 함께 흘려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 화두가 무엇이었습니까? ‘친절’입니다. 지난 90일 동안 친절을 얼마나 열심히 챙겼는지 스스로 점검해 보십시오.

작은 친절과 따뜻한 몇 마디 말이, 우리가 의지해 살아가는 이 지구를 행복하게 합니다. 지구가 행복해야 그 안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행복해집니다. 개인은 전체의 한 부분입니다. 개개인이 모여 전체를 이룹니다.

오늘은 행복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엊그제 행복에 대한 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지난여름 읽은 여러 책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기에, 이 자리에서 같이 음미해보려고 합니다.

실제로는 불행하지 않은데도 불행하다 여기는 환자들을 날마다 대해야 하는 한 프랑스 정신과 의사가 쓴 책입니다. 많은 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만나며 그도 자신의 일에 만족을 느끼지 못합니다. 정신과 의사들은 매일매일 정신 상태가 부실한 사람들을 대하기 때문에 때로는 의사 자신도 헛소리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끔씩 동료들끼리 검사를 해준다고 들었습니다. 그것도 업입니다. 늘 그런 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그 기운이 전이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 어느 곳보다 풍요로우면서도 정신과 의사가 가장 많이 사는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도 저자의 분신인 정신과 의사입니다.

그는 이름난 의사였습니다. 날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진료실로 찾아왔습니다. 상담으로 넘치는 하루하루를 모내며 그는 자신 역시 행복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많은 돈을 벌었지만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병을 안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어떤 치료로도 진정한 행복에 이르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한계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진료실 간판을 내리고 세계 여행을 떠납니다. 무엇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불행하게 만드는가를 알기 위해 떠난 것입니다. 마치 <화엄경>의 선재동자善財童子가 선지식들을 찾아 구도의 길을 나섰던 것과 같습니다.

그는 중국, 아프리카, 미국 등지를 다니며 유명하고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 행복의 비결을 찾습니다. 한번은 중궁에서 이름난 노스님을 만나기 위해 산길을 걷게 됩니다. 복잡한 도시에 살며 환자들만 만나다가, 모처럼 거기에서 벗어나 산길을 걷고 있으니 문득 ‘아, 행복은 산길을 걷는 것이구나.’ 라는 생강이 떠오릅니다.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어쩌다가 절에 가거나 등산을 하게 되어 호젓한 산길을 걸으면 마음이 참으로 평화롭지 않습니까?

의사가 노스님을 만나 가르침을 청하자 노스님이 이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행복하지 못한 것은 그 행복을 목표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깊이 음미하십시오. 노스님은 덧붙여 이런 격려의 말을 해 줍니다.

“당신이 행복에 대한 배움을 얻기 위해 여행에 나선 것은 무척 잘한 일입니다. 여행을 다 마치면 다시 나를 만나러 이곳으로 오십시오.”

의사는 새로운 교훈을 얻을 때마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수첩에 메모를 합니다. 이렇게 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난 덕에 그의 수첩에는 행복의 비결이 하나씩 기록되어 갑니다. 그 가운데 몇 가지 행복의 비결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행복의 첫째 비결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 것입니다. 행복을 거창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각자 자기 몫의 삶이 있는데 남과 비교하니까 기가 죽고, 불행해지고, 시기심과 질투심이 생깁니다. 소형차면 어떻습니까? 갑자기 수입차를 타면 그 차가 시시해집니다. 그것은 자기 분수와 몫을 모르는 허욕입니다. 어떤 개인이라도 그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독립된 존재입니다.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 존재입니다.

둘째, 행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사람은 행복해 집니다. 누가 무슨 소리를 하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은 좋은 일입니다. 개체를 뛰어넘어 전체와 연결될 수 있으면 좋은 일입니다.

셋째, 행복은 집과 채소밭을 갖는 것입니다. 집이라는 것은 안정된 공간입니다. 전셋집을 전전하는 사람들은 내 집을 마련하기위해 피땀 흘려 일합니다. 채소밭을 갖고 흙을 가까이하며 살아 있는 생명을 가꾼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자신의 땅은 아니지만 공터에 채소를 가꾸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무척 좋은 일입니다. 경험한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자기가 뿌린 씨앗에서 싹이 트고, 떡잎이 나와 펼쳐지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뿌듯해집니다. 주부들도 아파트 베란다에 상추나 쑥갓 등의 채소를 얼마든지 길러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늘 보살펴야 하니까 부지런해지고, 자연에 대한 고마움과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신비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는 닳아져 가는 우리 마음을 소생시키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넷째, 행복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쓸모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한 개인의 삶은 다른 사람에게 유용해야 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 갇힌 짐승처럼 사는 그런 삶은 살아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관계 속에서 한몫을 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행복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달려 있습니다. 같은 장미꽃을 바라볼 때 어떤 이는 ‘왜 이렇게 아름다운 장미에 가시가 돋아 있나.’ 허고 불만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가시에 이렇게 아름다운 꽃이 달려 있네.’ 하며 고맙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여섯째,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나 자신만의 행복은 근원적으로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나눌 때 행복은 몇 배로 깊어지고 넓어집니다.

그가 수첩에 적어 놓은 행복의 비결은 이 밖에도 더 있지만, 장황한 것 같아서 하나만 더 소개하겠습니다. 이 사람이 한번은 아프리카에서 친구의 초대를 받았다가 노상에서 강도를 만나 차를 빼앗깁니다. 강도들은 의사 일행을 지하실에 가두고 어떻게 처리할까 옥신각신합니다. 그런데 강도의 우두머리가 의사의 몸을 수색하다 주머니에서 행복의 비결을 적은 쪽지를 보고 의사 일행을 풀어 줍니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행복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하나의 기적입니다. 우리는 늘 많은 시간 속에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느끼지 못합니다. 살아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놀라운 가능성입니다.

의사는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노스님을 찾아 갑니다. 어느 지역이라고는 마오지 않는데, 제가 보기에는 홍콩의 어느 산인 듯합니다. 노스님을 만나자 그는 수첩에 적어 놓은 행복의 비결을 보여 드립니다. 노스님은 그 수첩을 보고 나서, 매우 칭찬합니다.

“당신은 마음공부를 훌륭히 해냈습니다. 이 모든 내용들은 무척 훌륭합니다. 더 덧붙일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노스님은 의사를 데리고 말없이 산길을 걷습니다. 의사는 자신이 지금까지 겪어 온 어떤 것보다 새로운 배움을 그곳에서 얻게 됩니다. 우리는 침묵 속에 주어진 자연의 고요를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는 복잡한 분별에서 벗어나 세상의 아름다움을 아무 사심 없이 무심히 바라볼 시간을 갖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임을 느낍니다. 노스님은 그와 작별하며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깁니다.

“진정한 행복은 먼 훗날에 이룰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것입니다.”

행복은 은퇴하고 자식들 키워 다 결혼시킨 이후, 나이 들어 시골에 집이라도 한 채 마련한 다음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일 일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이는 우리 각자에게 다 해당되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찾아 항상 지나온 과거나 미래 쪽으로 달려갑니다. ‘왕년에 이렇게 잘 살았는데……’ 또는 ‘이다음에 어떻게 살 것인가?’ 등등 현재에서 벗어나 늘 지나가 버린 과거와 다가올 미래 쪽으로만 관심을 기울입니다. 과거를 묻지 마십시오. 이미 지나가버린 세월이란 뜻입니다. 그것은 전생의 일입니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곳은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입니다.

지금 이 순간의 현장을 회피하지 마십시오. 이 순간을 회피하면 자기 존재가 사라집니다. 늘 불확실한 미래 쪽으로 눈을 팔기 때문에, 현재의 자신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행복은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현재의 선택입니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하기로 선택한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은 행복하게 살 줄 알아야 합니다.

앞에서 말한 책의 제목은 <꾸빼 씨의 행복 여행>입니다.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프랑수아 를로르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실화 소설입니다. 제가 지난여름 읽은 몇 권의 책 중에서 여러분에게 소개할 만한 내용이기에 오늘 법문의 소재로 삼아 보았습니다.

순간순간 어떤 마음을 지니고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오늘 해제일의 새로운 화두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참으로 인간답게 산다면 지구의 종말도 늦출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온전하고 바르게 살지 못하니까 이런 불안한 시대를 겪는 것입니다. 한눈팔지 말고 똑바로 살아야 합니다. 두루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