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있는 자 와서 보라!
이제 그분, 부처님의 가르침을 찬찬히 살펴봅니다. 처음에는 조금 생소한 느낌이 들었지만 차츰 내 가슴은 놀라움으로 가득 찹니다. 어렵고 심오한 이야기가 많아서 놀라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도 쉽고 합리적으로 차근차근 말씀해주시는 것에 놀랍니다. 또 다만 있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게 인도하신다는 점을 발견하고는 당황스럽기까지 합니다.
“이건 뻔한 사실인데, 나는 왜 이것을 애써 못 본척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나를 믿어라!”라고 하시지 않고, “눈 있는 자들은 와서 보라!”고 하신 그분은, 우리가 욕망과 집착 때문에 가리고 있던 자신과 세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도록 인도해주십니다. 알고 보니 너무나 당연한 사실인데 왜 이제야 알게 됐는지, 오히려 그것이 신기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내 눈에 씌워진 콩깍지를 하나씩 벗겨주시는 그분의 위대함을 거듭 찬탄하게 됩니다.
결코 과정해서 표현한 것이 아닙니다. 그 가르침의 근본이라고 하는 ‘덧없음[無常]’과 ‘나라는 것이 없음[無我]’을 한번 보십시오. ‘덧없음’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모든 것은 변 한다’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압니다. ‘덧없음’에 대한 탄식은 유행가 가사에도 수없이 나옵니다. 물론 이분이 가르치신 ‘덧없음’에는 그와는 다른 좀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세계가 덧없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그 바탕에 어떤 덧없는 것이 아닌, 영원불변한 무엇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겉모습은 변하지만 그 속에 변하지 않는 무엇이 있을 것이라는 거죠. 이분은 그것마저도 부정합니다. 아니 부정하기보다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한 것을 본 적이 있느냐? 아니면 추리를 통해 증명할 수 있느냐?”
그럴 수 없다면 그렇게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것에 의지해서 세상을 보고 인생을 설계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고, 괴로움을 낳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무언가 변하지 않는 것이 세상을 지배하고, 또 나를 지배한다고 억지로 믿으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보라는 것입니다.
‘나라는 것이 없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나’라는 곳을 보았습니까? 내 몸도 보이고 내 집도 보이고, 내 마음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속에 그런 것들의 주인이면서 변하지 않는 나를 본 적 있습니까? 아니면 추리를 통해 분명히 있다고 증명하는 데 성공한 사람 있습니까? 수많은 철학자들이 그러한 ‘나라는 것’이 있음을 증명해 보려 했지만 성공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무언가 어려서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 ‘나라는 것’이 있다고 믿으며, 그것을 중심으로 ㅂ모든 것을 끌어다 붙입니다. 내 집, 내 새끼, 내 돈, 내 아내, 내 남편,~~~~. 그리고 나 아닌 것과 단단히 벽을 쌓고 차단합니다. 내가 단단한 만큼 단단한 벽으로 가로막힌 남이 생기는 것이지요.
그리고 계속 내 족에다 무엇을 끌어다 놓고 그것을 내 것으로 삼으려 합니다. 마치 누에가 고치를 짓고 그 속에 들어 앉아 있는 것처럼, 나를 중심으로 하나의 단단한 둥지를 만듭니다. 그런데 정작 그 주인인 내가 있는지 없는지가 불확실하다가 이처럼 허망한 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처음에는 ‘나라는 것’이 없다고 하신 부처님 말씀을 듣고 바로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이해는 되었는데 무언가 믿고 있던 소중한 것을 잃은 듯한 허전함에 쉽사리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고 할까요. ‘아니, 내가 없다면 어찌 라는 거야? 내가 있기에 행복도 찾으려는 건데~~~’ 하는 생각이지요. 그런 허전함은 찬찬히 그분의 말씀을 새기면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우선 그분은 울고, 웃고, 말하고, 행동하는 내가 없다고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속에 나도 잘 모르면서 있다고 믿는, 변하지 않고 다른 것과 관계없이 영원히 존재하는 ‘나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신 것입니다.
그 점을 분명하게 알고 나서는 나를 잃었다는 허전함은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나도 모르는 나에 매달려 소홀히 하고 잃었던 수많은 나를 찾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모습으로 활동하는 모든 나를 다 소중한 나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내 가족이나 친구들이 모두 나인 것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나를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나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전혀 나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여겨 마구 비판하던 사회 문제 속에서도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또 내 속에는 남들이 많이도 들어와 있지요. 누구를 만나러 갈 때면 그 만날 사람이 이미 내 속에 들어와서 말을 걸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 수많은 세상과 관계를 맺는 모습으로 나는 있고, 그 하나하나가 나일뿐 입니다. 그것들 모두 소중한 나이고, 잘 가꾸고 보살펴야 할 나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난 후부터는 친구들에게도 “내 마음 너는 몰라!”하는 소리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왜 모르겠습니까? 내 마음이 나도 모르고 남도 모르게 동떨어져 있겠습니까? 내 눈빛에, 내 말투에, 내 몸짓에 환하게 드러나 있겠지요. 그런 것들 모두를 내가 아니라고 내돌리고, 무언가 속에 마음으로만 있는 나를 핑계대면서 나를 변명하지 않기로 했지요.
이렇게 남 속에서 나를 보고, 내 속에서 남을 보며, 생생하게 살아서 활동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니 오히려 나는 훨씬 더 커지고 넓어졌습니다. 나의 삶은, 깊은 내면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나를 부여잡고 살아온 때보다 훨씬 활기차고 당당합니다.
'제방문인참문어록과 부처님말씀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5, 모든 것은 서로 의존해 있다. (0) | 2006.12.25 |
---|---|
4, 괴로움, 그 원인이여! (0) | 2006.12.25 |
2, 부처님, 멋있는 그 분 (0) | 2006.12.25 |
1, 나는 행복하고 싶습니다. (0) | 2006.12.25 |
믿음과 원력 (0) | 2006.1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