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과 신심명, 그리고 일기일회

금강경 14

혜주 慧柱 2007. 3. 16. 21:35
 

14,

그때에 수보리 장로는 법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다. 그는 눈물을 닦고 나서 스승을 향하여 말하였다. “스승이시여, 훌륭하옵니다. 행복한 분이시여, 아주 훌륭하십니다. ‘이 위없는 도(道)를 향하는 사람들’을 위해 ‘가장 훌륭한 도를 향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법문을 여래께서 설해 주셨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입니다.] 그리고 스승이시여, 그것에 의해서 저에게는 지혜가 생겼습니다. 스승이시여, 저는 이와 같은 법문을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스승이시여, 이 경이 설하는 것을 듣고, 진실이라고 하는 생각을 일으키는 구도자는 이 위없는 훌륭한 성질을 갖춘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스승이시여, 진실이라는 생각은 진실이 아니라고 하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래는 ‘진실이라고 하는 생각, 진실이라고 하는 생각’이라고 설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스승이시여, 이 법문이 설해졌을 때에 제가 그것을 받아들여 이해한다고 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옵니다. 그러나 스승이시여, 이제부터 다음 세상인 제2의 오백 년대에 올바른 가르침이 망할 즈음에, 어떤 사람들이 이 법문을 들어 기억하고, 외우고, 연구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세히 설명할 것인데, 그 사람들은 가장 훌륭한 성질을 갖춘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스승이시여, 실로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자기’라고 하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고, 살아 있는 것들이라는 생각도, 개체라고 하는 생각도, 개인이라는 생각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생각한다는 일’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스승이시여, ‘자기’라고 하는 생각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며, 살아 있는 것들이라는 생각도, 개체라는 생각도, 개인이라는 생각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부처님이신 세존(世尊)들은 모든 생각을 멀리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말하였을 때, 스승은 수보리 장로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이 경이 설해질 때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공포에 떨어지지 않는 사람들은 위없이 훌륭한 성질을 갖춘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여래가 설한 이 최상의 완성은 실로 완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수보리여, 여래가 최상의 완성이라고 설한 그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깨달으신 분 ․ 세존(世尊)이 또한 설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상의 완성 자’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또 수보리여, 실로 여래에 있어서의 인내의 완성은 실로 완성이 아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수보리여, 일찍이 어떤 악왕(惡王)이 나의 몸과 수족(手足)에서 살을 도려낸 그때에도 나에게는 자기라는 생각도, 살아 있는 것이라는 생각도, 개체라는 생각도, 개인이라는 생각도 없었으며, 또한 생각한다는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수보리여, 만약 그때 나에게 ‘자기’라는 생각이 있었다고 하면 그때 또한 나에게는 ‘원망하는 생각’이 틀림없이 있었을 것이고, 만약에 살아 있는 것이라는 생각, 개체라는 생각, 개인이라는 생각이 있었다고 하면 그때에도 나에게는 원망하는 생각이 틀림없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나는 분명히 기억한다. 과거세(過去世)에 오백의 생애 동안 내가 ‘인내를 설하는 자’라는 이름의 선인(仙人)이었다는 것을. 그때에도 나에게는 자기라는 생각이 없었고, 살아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없었고, 개체라는 생각이 없었고, 개인이라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보리여, 구도자 ․ 훌륭한 사람들은 일체의 생각을 버리고, 이 위없는 올바른 깨달음에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된다. 형태에 집착한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소리나, 냄새나, 감촉이나, 마음의 대상에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켜서도 안 된다. 법(法)에 집착한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법 아닌 것에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어떠한 것에도 집착된 마음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그것은 왜냐하면 ‘집착하고 있다’는 것은 집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래는 ‘구도자는 집착하는 마음 없이 보시를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소리나, 냄새나, 감촉이나, 마음의 대상에 집착하지 않고 보시를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설했던 것이다.”

“그래서 또다시 수보리여, 실로 구도자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해서 보시를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이 ‘살아 있는 것’이란 생각은 생각이 아닌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여래가 모든 ‘살아 있는 것’이라고 설한 것들은 실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여래는 진실을 말하는 자이고, 진리를 말하는 자이며, 있는 그대로 말하는 자이며, 틀림없이 말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여래는 거짓을 말하는 자가 아니다.”

“그래서 또 수보리여, 실로 여래가 이제 깨달아 보여주시고, 생각하신 법 거기에는 진리도 없고, 허망(虛妄)도 없다. 수보리여, 이것은 비유를 들어 말하면, [설사 눈이 있다 하더라도] 어둠 속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아무것도 보지 못함과 같다. 여러 가지 일들 가운데 머무는 구도자들도 그와 같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는 여러 가지 것들 가운데 머무는 상태에서 보시(布施)를 베푸는 것이다.

수보리여, 이것을 또 비유를 들어 말한다면, 눈이 있는 사람이 밤이지나 태양이 떠올랐을 때 여러 가지 빛깔을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사물들 가운데 머물지 않는 구도자도 그와 같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사물들 가운데 머물지 않고 보시를 베푸는 것이다.”

“그리고 수보리여, 실로 훌륭한 젊은이들과 훌륭한 딸들이 이 법문을 들어 기억하고, 외우고,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세히 설명해 준다고 하자. 수보리여, 여래는 깨달은 사람의 지혜로 이러한 사람들을 알고 있다. 수보리여, 여래는 깨달은 사람의 눈으로 이러한 사람들을 보고 있다. 수보리여, 여래는 이와 같은 사람들을 깨닫고 있다. 수보리여 이러한 모든 사람들은 측량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복덕(福德)을 쌓아 자기의 것으로 틀림없이 자기의 것으로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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