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그때 수보리 장로는 스승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물었다. “스승이시여, 구도자의 길[道]로 나아간 자는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마음을 지키면 좋겠습니까?”
스승은 대답하였다. “수보리여, 이제 구도자의 길로 나아간 자는 다음과 같은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나는 살아 있는 그 모든 것을 더러움 없는 영원한 평안이라는 경지로 이끌어 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이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영원한 평안에 이끌어 들인다 하더라도 실은 어느 한 사람도 영원한 평안에로 이끌려진 사람은 없다.’라는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수보리여, 만약 구도자가 ‘생존하는 것들’이란 생각을 일으키면 그는 이미 구도자라고도 불릴 수 없는 까닭이다. 개체라는 생각이나 나아가 개인이라는 생각 등을 일으키는 자도 구도자라고는 불릴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구도자의 길로 향한 사람’이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가 디팡카라 여래 밑에서 이 위없이 올바른 깨달음을 현실로 깨달았다고 하는 그런 일이 있을까?”
이와 같이 질문을 받았을 때, 수보리 장로는 스승을 향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스승이시여, 제가 스승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한에 있어서는 여래께서 존경할 만 한 분 ․ 올바른 깨달으신 분인 디팡카라 여래 밑에서 이 위없이 올바른 깨달음을 현실로 깨달았다고 하는 그런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말하자 스승은 수보리 장로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여래께서 존경할 만 한 분 ․ 올바로 깨달은 분인 디팡카라 여래 밑에서 이 위없이 올바른 깨달음을 현실로 깨달았다는 그러한 일은 도무지 없는 것이다. 수보리여, 만약에 여래께서 현실로 깨달은 법이 무엇인가 있다고 하면, 디팡카라 여래가 나의 일을 가지고 ‘젊은이여, 당신은 미래세에 샤캬무니(Śakyamūni)란 이름의 여래 ․ 존경받을 만한 사람 ․ 올바로 깨달은 사람이 되리라.’하는 예언을 하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수보리여, 지금 여래 ․ 존경받을 만한 분 ․ 올바로 깨달으신 분이 이 위없이 올바른 깨달음을 현실로 깨달았다 하는 것은 도모지 없으므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디팡카라 여래에 의해 ‘젊은이여, 당신은 미래세에 샤캬무니라는 이름의 여래 ․ 존경받을 만한 사람 ․ 올바로 깨달은 사람이 되리라.’하고 예언하심을 받은 것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수보리여, ‘여래’라고 하는 것은 진여(眞如)의 이명(異名)이다. [수보리여, 여래라고 하는 것은 생(生)하는 일이 없는 존재의 본질의 이명(異名)이다. 수보리여, 여래라고 하는 이는 존재의 단절(斷絶)의 이명(異名)인 것이다. 수보리여, 여래라는 이것은 구극적(究極的)으로 불생(不生)이라는 것의 이명(異名)인 것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수보리여, 생(生)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 최고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만약에 누구든지 ‘여래 ․ 존경받을 만한 사람 ․ 올바로 깨달은 사람이 이 위없는 깨달음을 현실로 깨달으셨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잘못 말한 것이 된다. 수보리여, 그는 진실이 아닌 것에 집착하여 나를 비방하고 있는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여래가 이 위없이 올바른 깨달음을 현실로 얻었다는 것은 도무지 없기 때문이다. 또 수보리여, 여래가 현실로 깨달아 보이신 법에는 진실도 없고 허망(虛妄)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래는 ‘모든 법은 깨달은 사람의 법이다’라고 설하는 것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수보리여, ‘모든 법이란 실로 법이 아니다’라고 여래에 의해 설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로 ‘모든 법’은 깨달은 사람의 법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예컨대 수보리여, 몸이 단정하고 몸이 큰 사람이 있다고 하는 것과 같다.”
수보리 장로는 말하였다. “스승이시여, 여래께서 ‘몸이 단정하고 몸이 큰 사람’이라고 설한 그 사람은, 스승이시여, 실은 체(體)가 없는 사람이라고 여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몸이 단정하고 몸이 크다’고 말해지는 것입니다.”
스승은 말하였다. “수보리여, 그대로이다. 만약에 어떤 구도자가 ‘나는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영원한 평안에로 이끌리라’라고 말했다면, 그 사람은 구도자라고 말할 수 없다. 무슨 까닭일까? 수보리여, 도대체 그 구도자라고 불리는 그 무엇이 있을까?”
수보리는 대답하였다. “스승이시여, 그렇지 않사옵니다. 그 구도자라고 불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스승은 말하였다. “수보리여, ‘살아 있는 것’은 실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여래는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살아 있는 것’이라고 말해진다. 그러므로 여래는, ‘모든 것에는 자아라는 것이 없다. 모든 것에는 살아 있는 것이라는 것도 없다. 개체라는 것도 없다. 개인이라는 것도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수보리여, 만약에 어떤 구도자가 ‘나는 국토의 건설을 이루고 말리라’라고 말했다고 하면 이 사람도 또한 마찬가지로 ‘구도자가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왜냐하면 수보리여, 여래가 ‘국토의 장엄’, ‘국토의 장엄이라고 하는 것은 장엄이 아니다’라고 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국토의 장엄’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수보리여, 만약에 구도자가 ‘사물에는 자아가 없다. 사물에는 자아가 없다’ 이렇게 믿고 이해한다고 하면 여래 ․ 존경받을 만한 분 ․ 올바로 깨달은 분은 그 사람을 구도자 ․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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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스승은 물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에게는 육안(肉眼)이 있을까?”
수보리는 대답하였다. “스승이시여, 그렇습니다. 여래에게는 육안이 있습니다.”
스승은 물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에게는 천안(天眼)이 있을까?”
수보리는 대답하였다. “스승이시여, 그렇습니다. 여래에게는 천안이 있습니다.”
스승은 물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에게는 지혜의 안(眼)이 있을까?”
수보리는 대답하였다. “스승이시여, 그렇습니다. 여래에게는 지혜의 안이 있습니다.”
스승은 물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에게는 법의 안(肉眼)이 있을까?”
수보리는 대답하였다. “스승이시여, 그렇습니다. 여래에게는 법의 안이 있습니다.”
스승은 물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에게는 깨달은 사람의 눈[佛眼]이 있을까?”
수보리는 대답하였다. “스승이시여, 그렇습니다. 여래에게는 깨달은 사람의 눈이 있습니다.”
스승은 물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갠지스 대하(大河)에 있는 그 모든 모래, 그 모래를 여래는 설하셨을까?”
수보리는 대답하였다. “스승이시여, 그렇습니다. 행복하신 분이시여, 그러하옵니다. 여래는 그 모래를 말씀하셨습니다.”
스승은 물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갠지스 대하에 있는 모든 모래만큼 갠지스 강이 있고, 그리고 그 강 속에 있는 모래알만큼의 세계가 있다고 한다면, 그 세계는 많은 것일까?”
수보리는 대답하였다. “스승이시여, 그렇습니다. 행복한 분이시여, 그러하옵니다. 그러한 세계는 많을 것입니다.”
스승은 말하였다. “수보리여, 이러한 세계에 있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가지가지 마음의 흐름을 나는 알고 있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마음의 흐름’, ‘마음의 흐름이란 흐름이 아니다’라고 여래께서는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마음의 흐름’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수보리여, 과거의 마음은 붙잡을 수가 없고, 미래의 마음은 붙잡을 수가 없고, 현재의 마음은 붙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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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훌륭한 젊은이, 훌륭한 딸들이 이 한없이 넓은 우주를 일곱 가지의 보배로 가득 채워 여래 ․ 존경받을 만한 분 ․ 올바로 깨달으신 분에게 보시한다고 하면, 그 훌륭한 젊은이, 훌륭한 딸들은 그 일을 통해서 많은 복덕을 쌓은 것이 될까?”
수보리는 대답하였다. “스승이시여, 많고 많습니다. 행복한 분이시여, 많고 많습니다.”
스승은 말하였다. “수보리여, 그러하니라. 그러하니라. 훌륭한 젊은이나 훌륭한 딸들이 그 일을 통해서 많은 공덕을 쌓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공덕을 쌓는다, 공덕을 쌓는다.’하는 것은 쌓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공덕을 쌓는다.’라고 말해지는 것이다. 수보리여, 만약에 공덕을 쌓는 일이 있다고 하면, 여래는 ‘공덕을 쌓는다.’, ‘공덕을 쌓는다.’라고는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