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속의 대화

출가의 의의

혜주 慧柱 2014. 9. 21. 11:34

출가의 의의

 

권속들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고 세속의 것을 정리한 고타마는 새로운 시작을 위해 사문의 모습을 갖추고자 합니다.

먼저 지금까지의 잘못된 가치관을 소멸시킨다는 뜻에서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을 잘라 버립니다.

 

“이로써 저는 이제 출가의 뜻을 반석같이 했습니다.

제 손으로 수염과 머리털을 깎아 떨어뜨린 것이 그 증거입니다.

일체의 번뇌를 끊어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건지게 하소서.”

 

그리고 세속의 권위를 상징하던 태자의 옷을 사냥꾼에게 주고 사냥꾼이 입고 있던 옷을 받아 입었습니다.

당시 사문들은 특별한 격식 없이 단지 누더기를 입고 다녔습니다.

가장 가난하고 천한 사람들조차 입지 않았던 낡은 천 조각을 지워서 몸에 걸쳤을 뿐입니다.

고타마는 천민 사냥꾼의 옷을 입음으로써 가장 낮은 신분의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타마는 현실의 고통을 피해 세상을 버리고 떠난 것이 아니라

가장 고통 받는 천민의 모습으로 그들과 하나가 되기 위해 모든 기득권을 버린 것입니다.

고타마의 출가 장면을 보면 참다운 출가의 의의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첫째, 기존의 가치를 부정했습니다.

기존의 가치란,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욕망이 얼마나 많이 충족되는가에 따라 행복이 좌우된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재물이든 권력이든 명예든 혹을 쾌락이든 관계없이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태도는 결코 충족될 수 없는 욕망을 위해 탐욕과 투쟁과 어리석음의 노예가 됨으로써 올바른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없게 합니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타인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자신도 고통을 받게 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중생이 생각하는 이런 가치를 ‘전도된 가치’라고 합니다.

고타마의 출가는 이런 욕망을 충족시키는 삶이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궁극적인 행복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최대의 욕망 충족이 최대의 행복이라는 잘못된 가치에 입각한 삶 자체를 부정한 것입니다.

 

둘째, 고타마는 출가를 통해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 조건이란, 자신이 누리던 사회적 기득권을 모두 포기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타마가 비록 기존의 가치관에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그 잘못된 구조 덕분에 형성된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면

자신의 올바른 가치관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고타마는 왕자의 지위에 있으면서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실현하고자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회에서 말하는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삶을 살 수 있을지 몰라도

근본적으로 모든 인간이 행복을 누리는 삶을 실현할 수는 없었습니다.

 

출가는 이처럼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기득권을 모두 버리는 것입니다.

욕망의 가치로 형성된 그 어떤 고정화된 형식도 거부하는 것.

진실을 가리는 그 어떤 환상도 용납하지 않는 것.

탐 ․ 진 ‧ 치에 길들여진 색안경을 과감하게 벗어던지는 것. 그것이 바로 출가입니다.

세속에서 형성된 가족 관계, 학문적인 지식, 사회적 지위 등

모든 것을 버리고 백지 상태의 인간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진리의 길로 들어설 수 없습니다.

 

수행자의 출발점은 출가입니다.

출가는 사제의 길, 성직자의 길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구도자의 길입니다.

출가는 종속과 고통인 중생의 길에서 자유와 안락인 부처의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억압과 불평등의 세계를 조장하고 방조하던 삶에서 불국 정토 건설을 위한 삶으로 노선을 변경하는 전환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출가는 삶의 기반과 목적이 근본적인 전환됨으로써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보통 새로운 가치관을 받아들일 때, 바뀐 가치관에 따른 삶의 모습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첫째, 기존 가치관에 회의를 갖고 새로운 가치관을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실천이 따르지 않는 경우입니다.

이런 겨우 새로운 가치관은 ‘심정적 동조 혹은 논리적 정리에 의한 가치관’으로 하나의 이론에 불과합니다.

 

둘째, 새 가치관을 앞으로 자신이 살아가야 할 삶의 당위에 받아들이고 그렇게 살고자 노력하지만

아직까지 과거에 형성된 욕망 중심의 가치관으로 갈등하고 괴로워하는 상태입니다.

만약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왜 이렇게 힘들게 사느냐”고 묻는다면

아마 그는 “그렇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런 가치관은 ‘당위적 삶으로서의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욕망 중심적인 삶의 가치관을 극복해 갈등이 완전히 제거된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자신에게 직접 이익이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왜 남을 위해 그렇게 힘들게 사느냐”고 물어보면,

그 사람은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살면서부터 비로소 나를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 같은 삶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의 가치관이야말로 ‘삶이라는 현실에서 진정으로 행복을 주는 가치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 가치관의 변혁은 바로 이러한 상태가 완성되는 것을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남이야 고통스럽게 살든지 말든지

자신의 욕망에 따라 보다 많은 재물과 권력을 누리고 쾌락을 즐기는 것이 행복이라고 여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치에 따라 생각해 보면, 모든 사람이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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