六祖壇經

六祖大師法寶壇經 略序

혜주 慧柱 2017. 11. 26. 08:03

六 祖 壇 經

 

六祖大師法寶壇經 略序

門人 法海 撰

 

大師 惠能이라

盧氏 行搯 李氏 誕師於唐貞觀十二年戊戌二月八日子時하다.

毫光 騰空하고 異香 滿室이러니 黎明 有二異僧 造謁하고 謂師之父曰夜來生兒 專爲安名호대 可上惠下能也니라

 

대사의 이름은 혜능이다.

아버지는 노씨로서 휘는 행도이고 어머니는 이씨이다.

대사는 당나라 정관 12년 무술년 28일 자시에 태어나셨는데,

그때에 백호의 광명이 허공에 떠오르고 기이한 향기가 방에 가득하였다.

새벽녘에 범상치 않은 두 스님이 찾아와서 대사의 아버지에게 말하기를

밤에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어떻게 짓는가하면 위에 자는 혜로, 아래 자는 능으로 하십시오.”하였다.

 

 

父曰何名惠能이니고 曰惠者 以法으로 惠施衆生이요

能者 能作佛事니라 言畢而出하야 不知所之니라

師不飮乳는하고 遇夜 神人 灌以甘露하니라 旣長하야 二十有四 聞經悟道하고 往黃梅하야 求印可한대 五祖 器之하사 付衣法하야 令嗣祖位하시니 龍朔元年辛酉歲也러라

 

아버지가 어찌하여 혜능이라 합니까?”라고 물으니

스님이 말하기를

라는 것은 법으로써 중생에게 은혜를 베풀어주는 것이고, 이라 하는 것은 부처님의 일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하였으며 말을 마치고 나갔는데 간 곳을 알 수가 없었다.

대사가 젖을 먹지 않았는데 밤이 되면 신인이 와서 감로를 먹여 주었다.

자라나서 나이가 스물넷이 되었을 때 경 읽는 소리를 듣고 도를 깨달아 황매로 가서 인가를 구하였더니, 오조가 법기로 여기시어 가사와 법을 전하시며 조사의 자리를 잇게 하시니, 때는 용삭 원년 신유년(당 고종 12)이었다.

 

 

南歸隱遯 一十六年 至儀鳳元年丙子正月八日하야 會印宗法師러시니 悟契師旨하야 是月十五日 普會四衆하야 爲師薙髮하고 二月八日 集諸名德하야 授具足戒하시니 西京智光律師 爲授戒師하고 蔬州慧靜律師 爲羯磨하고 荊州通應律師 爲敎授하고 中天耆多羅律師 爲說戒하고 西國密多三藏 爲證戒하다

 

남으로 되돌아가 은둔하신 지 16년이 되는 의봉 원년 병자년 정월 8일에 인종법사와 만났는데 인종이 대사의 종지를 깨달아 모든 면에서 뜻이 서로 잘 맞으므로 이 달 15일에 사부대중을 많이 모아서 대사의 머리를 깎고 28일에 덕이 높은 고승들을 모시고 구족계를 주시었다.

서경의 지광율사는 수계사가 되고, 소주의 혜정율사는 갈마사가 되고, 형주의 통응율사는 교수사가 되고, 중천축의 기다라율사는 설계사가 되고, 서국의 밀다삼장은 중계사가 되었다.

 

 

其戒壇 乃宋朝求那跋陀羅三藏 創建立碑曰後當有肉身菩薩 於此受戒라하며 又梁天監元年 智藥三藏 自西竺國으로 航海而來하야 將彼土菩提樹一株하야 植此壇畔하고 亦預誌曰後一百七十年 有肉身菩薩 於此樹下 開演上乘하야 度無量衆하리니 眞傳佛心印之法主也라하시더니 至是하야 祝髮受戒하고 及與四衆으로 開示單傳之法旨하시니 一如昔讖이러라

 

그 계단은 송나라 때의 구나발다라 삼장이 처음 세우실 때 비를 세우며 이르시길 후일에 육신보살이 여기에서 계를 받을 것이다.하였으며,

또 양나라 천감 원년(서기 502)에 지약삼장이 서축국(서인도)으로부터 바다를 건너와서 그 땅에서 가져온 보리수 한 그루를 이 단가에 심으시며 미리 예언하기를 170년 뒤에 육신보살이 이 나무 아래에서 가장 훌륭한 법을 열고 연설하여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할 것인데 참으로 부처님의 심인을 전하는 법의 주인이시다.하시더니

대사가 이곳에 이르러서 비로소 머리를 깎고 계를 받으며 또 사부대중과 더불어 단전(깨달음은 언어나 문자로 전할 수 없으며 마음으로 밖에 전할 수 없다는 뜻)의 법지를 열어 보이시니 한결같이 예전에 예언하신 바와 꼭 같았다.

 

 

次年春 辭衆하고 歸寶林하시니 印宗 與緇白으로 送者 千餘人이라 直至曺溪하신대 荊州通應律師 與學者數百人으로 依師而住하니라

至曺溪寶林하사 覩堂宇湫隘하야 不足容衆하시고 欲廣之하사 遂謁里人陳亞仙曰

老僧 欲就檀越하야 求坐具하노니 得不 曰和尙坐具 幾許闊니잇고 祖出坐具하야 示之하신대 唯然이어늘 祖以坐具 一展하야 盡罩曺溪四境하시니 四天王 現身하야 坐鎭四方이라 今寺境 有天王嶺하니 因玆而名하니라

 

다음해 봄에 대사가 대중을 하직하고 보림사로 돌아가시니 인종화상이 재가자 및 출가자 천 여명과 함께 전송하였다.

바로 조계산으로 가셨는데 그때 형주의 통응율사가 학인 수 백명과 함께 대사를 의지하며 머물렀다.

대사가 조계산의 보림사에 이르러 보니, 당우가 너무 좁아서 대중을 수용하기엔 부족함을 보시고 넓히시려고, 마음사람인 진아선을 찾아서 말씀하시길

노승이 시주에게 좌구 깔 땅을 구하고자 하는데 얻을 수 있겠습니까?”하시니, 진아선이 말하기를 화상의 좌구가 얼마나 넓습니까?”하므로, 조사가 좌구(앉거나 누울 때 까는 방석)를 보이시자, 진아선이 허락하므로 조사가 좌구를 한번 펴니 조계의 사방경계를 다 덮었는데 사천왕이 몸을 나타내어 사방에 앉아 눌렀다.

지금 사찰 경내에 있는 천왕령은 이때의 일로 붙여진 이름이다.

 

 

曰知和尙 法力 廣大 但吾高祖 墳墓 竝在此地하니 他日造塔 幸望存留하고 餘願盡捨하야 永爲寶坊하야지이다

연이나 차지는 내생룡백상래맥이라 지가평천이언정 불가평지니이다

사후영건에 일의기언하시니라 사유경내하야 산수승처에 첩게지하시고 수성난야일십삼소하시니 금왈화과원이라하야 예적사문하니라

 

진아선이 말하기를 화상의 법력이 크고 넓으신 것을 알겠습니다마는 저의 고조의 묘가 이 땅에 있으니 후일 탑을 지으시더라도 그대로 남겨 두실 것을 바라며 나머지는 모두 드리니 영원히 절터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땅은 생룡(살아있는 용)과 백상(흰 코끼리)이 뻗어 내린 맥이므로 높고 낮은 대로 지을지언정 땅을 깎아 평평하게 하여 짓지는 마십시오.”하였기에 뒤에 절을 지을 때 한결같이 그 말대로 하였다.

대사가 경내를 다니시다가 산수가 뛰어난 곳에 번번이 머물러 쉬시다가 13개의 난야(도량)를 이루셨는데 오늘날 화과원이라는 이름으로 절 문에 써놓은 곳이다.

 

 

玆寶林道場 亦先是西國智藥三藏 自南海 經曺溪口할새 掬水而飮하고 香美異之하야 謂其徒曰 此水 與西天之水 無別하니 溪源上 必有勝地하야 堪爲蘭若라하고 隨流至源上하야 四顧하니 山水 回環하고 峯巒 奇秀어늘 歎曰宛如西天寶林山也로다

 

이 보림도량은 역시 이보다 앞서 서국(인도)의 지약삼장이 남해로부터 와서조계의 어귀를 지날 때에 물을 한 모금 움켜 마시고 향기로운 맛을 이상히 여기어 그 제자에게 일러 말씀하시길 이 물이 서천의 물과 다르지 않으니 시냇물 저 위에는 반드시 뛰어난 땅이 있을 것이고 도량을 세울 만할 것이니라.하시며 흐르는 물을 따라가 그 위에 올라가서 사방을 둘러보니 산과 물이 감아 돌고 산봉우리가 매우 빼어났으므로 감탄을 하며 말씀하시길 완연히 서천의 보림산과 같구나.하시며

 

 

乃謂曺候村居民曰可於此山 建一梵刹이니 一百七十年後 當有無上法寶 於此演化하야 得道者 如林하리니 宜號寶林이라하야시늘

韶州牧侯敬中 以其言으로 具表聞奏한대 可其請하야 賜寶林爲額하고 遂成梵宮하야 落成於梁天監三年하다

 

조후촌의 사람들에게 이 산에 절을 하나 지으십시오. 170년 뒤에 마땅히 위없는 법을 이곳에서 연설하고 교화하여 도를 얻는 자가 수풀과 같을 것이니 응당 보림이라 이름하십시오.하셨다.

그때의 소주 목사인 후경중이 그 말씀을 표로 갖추어 왕에게 상주하니 임금이 그 청을 옳게 여겨서 보림이라는 현판을 하사하시어 절을 지었는데, 양나라 천감 삼년(서기 503)에 낙성을 하였다.

 

 

寺殿前 有潭一所하야 常出沒其間하야 觸橈林木이러니 一日 現形甚巨하야 波浪 洶湧하고 雲舞 陰翳하야 徒衆 皆懼어늘 叱之曰爾只能現大身이오 不能現小身이로다

若爲神龍인대 當能變化하야 以小現大하고 以大現小也니라

 

절의 전각 앞에 못이 하나 있었는데 용이 항상 그 속에서 출몰하여 숲과 나무를 흔들어 놓고 하였는데, 어느 날은 아주 큰 형상으로 나타났기에 물결이 솟아 오르고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덮이어 대중들이 모두 두려워하므로 대사가 꾸짖으며,

네가 큰 몸으로만 나타날 수 있지 작은 몸으로는 나타날 수 없는 모양이구나. 만약 신령스러운 용이라면 마땅히 변화하여 작은 몸을 크게 나타내고 큰 몸을 작게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니라.”하시니

 

 

其龍 忽沒이러니 俄頃 復現小身하야 躍出潭面이어늘 師展鉢試之曰 爾且不敢入老僧鉢盂裏 龍乃游揚至前이어늘 師以鉢 舀之하신대 不能動이어늘 持鉢上堂하사 與龍說法하시니

遂蛻骨而去 其骨長 可七寸이오 首尾角足 皆具하야 留傳寺門하니라 以土石으로 堙其潭하시니 今殿前左側 有鐵塔鎭處 是也

 

그 용이 갑자기 사라졌다가 조금 있으니 다시 작은 몸으로 나타나 못 위에 뛰어 나오므로 대사가 발우를 펴 보이시면서

네가 감히 노승의 발우 속에는 들지 못할 것이다.”하시니

용이 나르다시피 헤엄쳐 앞에 이르므로 대사가 발우에 담으시니 용이 움직이지를 못하였다.

대사가 발우를 법당에 가지고 가서 용을 위하여 설법을 하시니 용이 마침내 뼈를 벗고 사라졌다.

그 뼈의 길이가 칠촌이나 되고 머리와 뿔과 꼬리와 발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는 것이 절에 전해져 오고 있다.

대사가 후에 흙과 돌로 그 못을 메우셨는데 지금의 전각 앞 좌측에 철탑이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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