六 祖 法 寶 壇 經
門人 法海 集
後學 宅成 譯
同學 智首 校
第二 般若品(제이 반야품)
次日에 韋使君이 請益한대 師陞座하사 告大衆曰 總淨心하고 念摩訶般若波羅密多하라 復云 善知識아 菩提般若之智는 本自有之언마는 只緣心迷하야 不能自悟하나니 須假大善知識의 示導見性이니라
當知하라 愚人智人의 佛性이 本無差別이언마는 只緣迷悟不同일새 所以로 有遇有智니 吾今爲說摩訶般若波羅密法하야 使汝等으로 各得智慧케호리니 志心諦聽하라 吾爲汝說하리라 善知識아 世人이 終日口念般若호대 不識自性般若가 猶如說食不飽니 口但說空하면 萬劫에도 不得見性하야 終無有益이니라
다음날 위사군이 다시 청하므로 대사께서 자리에 오르셔서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모두 다 마음을 깨끗이 하고 마하반야바라밀다를 생각하여라.”하시며 다시 말씀하셨다.
“선지식아! 보리반야의 지혜는 본래 스스로 있는 것인데, 다만 마음이 미혹하기 때문에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것이니 모름지기 큰 선지식의 가르침과 인도를 받아서 자성을 보게 되느니라.
마땅히 알아라. 어리석은 사람이나 지혜 있는 사람이나 불성은 본래 차별이 없는데 다만 미혹함과 깨달음이 같지 않느니라. 이 때문에 어리석음이 있고 지혜로움이 있는 것이니라. 내가 이제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설하여 너희로 하여금 각각 지혜를 얻게 하리니 지극한 마음으로 자세히 들어라. 내가 너희를 위해 설하리라.
선지식아! 세상 사람들이 온종일 입으로는 반야를 말하지만 자성의 반야를 알지 못하니 마치 밥 먹는 것을 이야기로만 하면 배는 부르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입으로만 공을 말한다면 만겁이 지나더라도 견성할 수 없으니 결국은 아무 이익도 없느니라.
善知識아 摩訶般若波羅密은 是梵語어든 此言에 大智慧到彼岸이라 此須心行이요 不在口念이니 口念心不行하면 如幻如化하며 如露如電이오 口念心行하면 卽心口相應하여 本性이 是佛이니 離性武別佛이니라 何名摩訶오 摩訶는 是大니 心量이 廣大하야 猶如虛空하야 無有邊畔하며 亦無方圓大小하며 亦非靑黃赤白이며 亦無上下長短하며 亦無瞋無喜하며 無是無非하며 無善無惡하며 無有頭尾라
諸佛刹土가 盡同虛空이니 世人의 妙性이 本空하야 無有一法可得이니 自性眞空도 亦復如是하이라
善知識아 莫聞吾說空하고 便卽着空이니 第一莫着空이어다 若空心靜坐하면 卽着無記空이니라
선지식아! <마하반야바라밀>은 범어인데 여기 말로는 큰 지혜이고 피안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이는 모름지기 마음으로 행할 것이지 입으로 외우는데 있지 않느니라. 입으로 외우고 마음으로 행하지 아니하면 환(幻)과 같고 화(化)같으며 이슬 같고 번개 같으니라. 입으로 외우고 마음으로 행하면 곧 마음과 입이 서러 응할 것이다.
본성이 곧 부처이므로 성품을 떠나서 따로 부처가 없느니라. 어떤 것을 <마하>라 하는가 하면 마하는 곧 크다는 뜻이다. 마음의 양은 크고 넓어서 마치 허공과 같으며, 끝이나 가가 없으며 둥글거나 크거나 작지 않으며, 또 푸르거나 누렇거나 붉거나 희지도 않으며, 위와 아래와 길거나 짧은 것이 없으며, 또한 성낼 것도 기쁠 것도 없으며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없으며,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없으며 머리나 꼬리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모든 부처님의 국토는 다 허공과 같으니라. 세상 사람들의 묘한 성품은 본래 공(空)하여서 한 가지로 얻을 게 없으니 자성의 진공(眞空)도 역시 이와 같으니라.
선지식아! 내가 설한 <공>을 듣고 공에 집착해서는 안 되니 제일 먼저 공에 걸리지 말아야 한다.
만일 마음을 비우고 고요히 앉아 있기만 하면 곧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지느니라.
善知識아 世界虛空이 能含萬物色像이라
日月星宿와 山河大地와 泉源谿澗과 草木叢林과 惡人善人과 惡法善法과 天堂地獄과 一切大海와 須彌諸山이 總在空中하니 世人性空도 亦復如是하니라
善知識아 自性이 能含萬法이 是大라 萬法이 在諸人性中하니 若見一切人의 惡之與善하여도 盡皆不取不捨하며 亦不染着하야 心如虛空을 名之爲大라 故로 曰摩訶니라
善知識아 迷人이 口說하고 智者은 心行이니라
又有迷人이 空心靜坐하야 百無所思하야 自稱爲大하나니 此一輩人은 不可與語하야 爲邪見故니라
善知識아 心量은 廣大하야 遍周法界하야 用卽了了分明하야 應用에 便知一切하야 一切卽一이며 一卽一切라 去來自由하야 心體無滯가 卽是般若니라
善知識아 一切般若智가 皆從自性而生이오 不從外入이니 莫錯用意를 名爲眞性自用이라 一眞에 一切眞이니 心量大事하고 不行小道하야 口莫終日說空하고 心中에 不修此行이니 恰似凡人이 自稱國王이나 終不可得이라 非吾弟子니라
선지식아! 세계의 허공이 삼라만상을 다 가질 수 있어서 해와 달과 별과 산과 강과 대지와 샘과 개울과 풀과 나무와 숲과 악인과 선인과 악법과 좋은 법과 천당과 지옥과 일체의 큰 바다와 수미산을 비롯한 모든 산들이 모두 다 허공중에 있다. 세상 사람들의 성품이 〈공〉한 것도 역시 이와 같으니라.
선지식아! 자성은 능히 만법을 머금을 수 있으므로 큰 것이다. 만법이 모든 사람의 성품 가운데 있으니 만일 모든 사람들의 악과 선을 보더라도 모두 다 취하지 않고 버리지도 않으며 또 물들거나 잡착하지도 아니하여 마음이 허공과 같음을 이름하여 크다고 한다. 그러므로 〈마하〉라 하느니라.
선지식아! 미혹한 사람은 입으로만 말하고 지혜 있는 사람은 마음으로 행하느니라. 또 어떤 미혹한 사람은 마음을 비우고 고요히 앉아서 백가지 생각을 없앤 것으로 스스로를 크다고 말하지만 이런 사람들과는 함께 말할 것이 못된다. 왜냐하면 삿된 소견이 있기 때문이다.
善知識아 何名般若오 般若者 唐言 智慧也니 一切處所와 一切時中에 念念不愚하야 常行智慧 卽是般若行이니 一念이 愚하면 卽般若絶이오 一念이 智하면 卽般若生이어늘 世人이 愚迷하야 不見般若일새 口說般若호대 心中常愚하야 常自言 我修般若라하야 念念說空호대 不識眞空하나니 般若는 無形相이라 智慧心이 卽是니 若作如是解하면 卽名般若智니라
何名波羅蜜고 此是西國語어든 唐言에 到彼岸이니 解義하면 離生滅이라 著境生滅起하야 如水有波浪이 卽名爲此岸이요 離境無生滅하야 如水常通流가 卽名爲彼岸이니 故號波羅蜜이니라
善知識아 迷人은 口念이라 當念之時에 有妄有非어니와 念念若行하면 是名眞性이니 悟此法者 是般若法이오 修此行者는 是般若行이라 不修하면 卽凡이요 一念修行하면 自身等佛이니라
善知識아 凡夫卽佛이요 煩惱가 卽菩提 前念이 迷하면 卽凡夫요 後念이 悟하면 卽佛이며 前念이 着境하면 卽煩惱요 後念이 離境하면 卽菩提니라
善知識아 摩訶般若波羅蜜이 最尊最上崔第一이니 無住無往하며 亦無來하야 三世諸佛이 皆從中出이라 當用大智慧하야 打破五蘊煩惱塵勞니 如此修行하면 定成佛道하야 變三毒爲戒定慧니라
선지식아! 무엇을 <반야>라 하느냐? 반야는 당나라 말로 지혜이며 어느 곳 어느 때라도 생각 생각이 어리석지 아니하여 항상 지혜롭게 행하는 것이 곧 반야행이다.
한 생각이 어리석으면 곧 반야가 끊어지고 한 생각이 지혜로우면 곧 반야가 생겨나는 것이니라.
세상 사람들이 어리석고 미혹하여 반야를 보지 못하므로 입으로만 반야를 말하고 마음속은 언제나 어리석어 항상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반야를 닦는다.」하며 생각 생각에 공을 말하지만 진공(眞空)을 알지 못하느니라. 반야는 형상이 없으며 지혜로운 마음이 곧 이것이다. 만일 이와 같이 이해를 하면 이것이 곧 반야의 지혜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바라밀〉이라고 이름 하느냐? 이것은 서국의 말인데 당나라 말로 하면 저 언덕에 이른다는 말이고 생멸을 떠난다는 뜻이니라.
경계에 집착하면 생멸이 일어나나니 물에 물결이 있는 것과 같은 이것이 곧 이 언덕이고, 경계를 여의면 생멸이 없어지므로 물이 항상 흐르는 것과 같아 곧 저 언덕이라 하나니, 그러므로 바라밀이라 한다.
선지식아! 미혹한 사람은 입으로 외우는지라 외울 때는 망령됨이 있고 그릇됨이 있지만 생각 생각에 만일 실천을 하면 이것이 참된 성품이니라. 이 법을 깨닫는 것이 곧 반야법이요, 이 행을 닦는 것이 곧 반야행이니라. 닦지 않으면 범부요 일념으로 수행하면 자신들이 부처님이니라.
선지식아! 범부가 곧 부처님이며 번뇌가 곧 보리니 앞생각이 미혹하면 곧 범부요, 뒷생각을 깨달으면 곧 부처님이다. 앞생각이 경계에 집착하면 곧 번뇌고 뒷생각이 경계를 여의면 곧 보리니라.
선지식아! 마하 반야바라밀이 가장 높고 가장 위이며 가정 으뜸이다. 머무름도 없고 지나가는 것도 없으며 또 오는 것도 없어서 삼세제불(三世諸佛)이 다 여기에서 나오느니라. 마땅히 큰 지혜를 써서 오온의 번뇌와 망상을 타파하여라. 이와 같이 수행하면 반드시 불도를 이루며 삼독이 변하여 계 · 정 · 혜가 되리라.
善知識아 我此法門은 從一般若하야 生八萬四千智慧니 何以故오 爲世人이 有八萬四千塵勞일새니 若無塵勞하면 智慧常現하야 不離自性이니 悟此法者는 卽是無念無億無着하야 不起誑妄하고 用自眞如性하야 以智慧觀照하야 於一切法에 不取不捨니 卽是見性成佛道니라
善知識아 若欲入甚法界와 及般若三昧者인댄 須修般若行하야 指誦金剛般若經하면 卽得見性이니 當知此功德이 無量無邊이라 經中에 分明讚歎하야 莫能具說이로다
此法門은 是最上乘이니 爲大智人說이며 爲上根人說이라 小根小智人이 聞하면 心生不信이니 何以故오 譬如大龍이 下雨於閻浮提하면 城邑聚落이 悉皆漂流하야 如漂棗葉이어니와 若雨大海하면 不增不減이라 若大乘人과 若最上乘人이 聞說金剛經하면 心開悟解라 故知本性에 自由般若之智니 自用智慧하야 常觀照故로 不假文字니라
譬如雨水가 不從天有라 元是龍能興致하야 令一切衆生과 一切草木으로 有情無情이 悉皆蒙潤하고 百川衆流가 却入大海에 合爲一體인달하야 衆生本性의 般若之智도 亦復如是하니라
선지식아! 나의 이 법문은 하나의 반야에서 팔만 사천의 지혜를 내는데 무슨 까닭인가 하면, 세상 사람들에게 팔만 사천의 번뇌가 있기 때문이니라.
만일 번뇌가 없으면 지혜가 항상 나타나서 자성을 여의지 않을 것이다.
이 법을 깨닫는 자는 곧 생각도 없고 기억도 없고 집착함도 없어서 미친 망령을 일으키지 아니하며 자기의 진여성(참되고 참된 성품)을 씀으로 지혜로써 미루어 보아 일체 법을 취하지고 않고 버리지도 않을 것이다. 이것이 견성하여 불도를 이루는 것이다.
선지식아! 만일 깊은 법계와 반야 삼매에 들고자하면 모름지기 반야행을 닦고 금강반야경을 지니고 외워야 되느니라. 그러면 견성할 것이다. 마땅히 알라. 이 공덕이 한량없고 끝없다는 것을 경 가운데에서 분명히 찬탄하였는데 말로써는 다할 수 없느니라. 이 법문이 곧 최상승이고 큰 지혜가 있는 사람을 위하여 설한 것이며 근기가 높은 사람을 위하여 설한 것이라 근기가 낮고 지혜가 얕은 사람이 들으면 믿지 않는 마음이 생기리라.
왜냐하면 비유하건대, 큰 용이 염부제에 비를 내리면 도시와 마을이 다 떠내려가는 것이 대추 나뭇잎이 떠내려가는 것과 같지만 만일 큰 바다에 비를 내리면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 것과 같으니라.
만일 대승인고 최상승인이 금강경을 들으면 마음이 열리거 깨닫느니라. 그러므로 본성에는 원래 반야의 지혜가 있으며 스스로 지혜를 써서 항상 관조하므로 문자를 빌리지 않는 것임을 아느니라.
비유하건대 비와 물이 하늘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원래 용이 일으켜서 일체 중생과 일체 초목과 유정과 무정들을 모두 다 윤택하게 하고, 백 가지의 강으로 흐르다가 마침내는 큰 바다에 들어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과 같이 중생의 본성인 반야의 지혜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善知識아 小根之人이 聞此頓敎하면 猶如草木의 根性小者가 若被大雨하면 悉皆自倒하야 不能增長인달하야 小根之人도 亦復如是하야 元有般若之智가 與大智人으로 更無差別이언마는 因何聞法에 不自開悟오 緣邪見障重하고 煩惱根深이니 猶如大雲이 覆蓋於日에 不得風吹하면 日光이 不現이니라
般若之智도 亦無大小언마는 爲一切衆生이 自心에 迷悟가 不同하야 迷心外見하야 修行覓佛하고 未悟自性일새 卽是小根이니 若開悟頓敎하야 不執外修하고 但於自心에 常起正見하야 煩惱塵勞가 常不能染하면 卽是見性이니라
善知識아 內外不住하고 去來自由하야 能除執心하야 通達無碍니 能修此行하면 與般若經으로 本無差別이니라
善知識아 一切修多羅와 及諸文字인 大小二乘의 十二部經이 皆因人置라 因智慧性하야 方能建立이니 若無世人이면 一切萬法이 本自不有라 故知萬法이 本自人興이며 一切經書가 因人說有니 緣其人中에 有愚有智하야 愚爲小人하고 智爲大人이라 愚者는 問於智人하고 智者는 與愚人說法하나니 愚人이 忽然悟解心開하면 卽與智人으로 無別이니라
善知識아 不悟하면 卽佛 是衆生이요 一念悟時에 衆生 是佛이라 故知萬法이 盡在自心이니 何不從自心中하야 頓見眞如本性고 菩薩戒經에 云我本元自性이 淸淨이니 若識自心見性하면 皆成佛道라하며 淨名經에 云卽時豁然하면 還得本心이라하시니라
선지식아! 근기가 낮은 사람이 이 돈교를 들으면 마치 뿌리가 약한 작은 초목이 큰 비를 만나서 뿌리가 뽑히고 뒤집혀져서 자랄 수 없게 되는 것과 같으니라. 근기가 낮은 사람도 역시 원래 반야의 지혜가 있으며 지혜가 큰 사람과 차별은 없으나 어찌하여 법을 듣고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가하면 삿된 소견으로 업장이 무겁고 번뇌의 뿌리가 깊기 때문인데 마치 큰 구름이 해를 가릴 때 바람이 불지 않으면 햇빛이 나타나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반야의 지혜는 크거나 작다는 차별이 없는데 일체의 중생이 자신의 마음에 미혹함과 깨달음이 같지 않기 때문임으로 마음이 미혹하여 밖으로만 보고 닦아 부처를 찾으려 할 뿐 자성을 깨닫지 못하니 이것은 곧 근기가 낮기 때문이고, 만일 돈교를 깨달아서 밖으로 닦는 것을 고집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에 정견을 일으켜 번뇌와 세속 일에 대한 괴로움에 항상 물들지 않으면 이것이 곧 견성이니라.
선지식아! 안과 밖에 머물지 말고, 가고 옴이 자유로워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면 일체에 통달하여 걸림이 없으며, 능히 이 행을 닦으면 반야경과 더불어 본래 차별이 없느니라.
선지식아! 일체의 수다라와 문자로 되어있는 대 · 소, 이승의 십이부경이 모두 다 사람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이며, 지혜의 성품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세워진 것이니 만일 세상 사람이 없다면 일체 만법도 본래 없는 것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알아라. 만법은 본래 사람으로부터 일어난 것이며 일체의 경서는 사람이 설하므로 있는 것이니, 사람을 인연하는 가운데 어리석음이 있고 지혜가 있어서 어리석음을 소인이라 하고 지혜로움을 대인이라 하느니라. 또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에게 묻고 지혜로운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에게 법을 설하지만, 어리석은 사람도 홀연히 깨달아서 마음이 열리면 곧 지혜 있는 사람과 다름이 없느니라.
선지식아! 깨닫지 못하면 부처님이 곧 중생이요, 한 생각 깨달으면 중생이 곧 부처님이니라. 그러므로 알라 만법이 다 자신의 마음에 있는 것인데 어찌하여 자신의 마음 가운데로부터 몰록 진여의 본성을 보지 못하는가? 보살계경에 말씀하시기를 「나의 본원 자성은 원래 청정하니 만일 자기의 마음을 알아서 자기의 성품을 보면 모두 다 불도를 이룬다.」하였으며 정명경에서는 「즉시에 확 트이면 도리어 본심을 얻는다.」하였느니라.
善知識아 我於忍和尙處에 一聞하고 言下便悟하야 頓見眞如本性일새 是以로 將此敎法流行하야 令學道者 頓悟菩提하야 各自觀心하야 自見本性케하노니 若自不悟인댄 須覓大善知識解最上乘法者 直示正路니 是善知識은 有大因緣이라
所謂化導하야 令得見性이니 一切禪法이 因善知識하야 能發起故라 三世諸佛의 十二部經이 在人性中하야 本自具有언마는 不能自悟일새 須求善知識의 指示하야사 方見이어니와 若自悟者不假外求니라 若一向執謂호대 須要他善知識하야 望得解脫者는 無有是處니
何以故오 自心內에 有知識自悟니 若起邪迷하야 妄念轉倒하면 外善知識이 雖有敎授나 救不可得이어니와 若起正眞般若觀照하면 一刹那間에 妄念이 俱滅이니 若識自性一悟하면 卽至佛地하리라
善知識아 智慧觀照하면 內外明徹하야 識自本心이니 若識本心하면 卽本解脫이오 若得解脫하면 卽是般若三昧며 卽是無念이니라
何名無念고 若見一切法하야도 心不染著이 是爲無念이니 用卽遍一切處호대 亦不著一切處하고 但淨本心하야 使六識으로 出六門호대 於六塵中에 無染無雜하야 來去自由하야 通用無滯가 卽是般若三昧며 自在解脫이니 名無念行이어니와 若百物을 不思하야 當令念絶인댄 卽是法縛이라 卽名邊見이니
善知識아 悟無念法者는 萬法盡通하며 悟無念法者는 見諸佛境界하며 悟無念法者는 至佛地位니라
선지식아! 내가 홍인화상이 계신 곳에서 한번 듣고 말씀 아래에 문득 깨달아서 몰록 진여의 본성을 보았기에 이 교법을 널리 펴서 도를 배우는 이들로 하여금 단번에 보리를 깨달아서 각자 스스로 마음을 살피고 스스로 본성을 보게 하려 하는데 만일 스스로 깨닫지 못하거든 모름지기 최상승법을 이해하는 큰 선지식을 찾아서 바른 길의 가르침을 구하여라.
이 선지식이 큰 인연이 있어서 이른바 교화하고 인도해서 견성을 얻게 하는데 일체 선법이 선지식으로 인하여 일어나기 때문이니라. 삼세제불의 십이부경이 사람의 성품 가운데에 있으며 본래 스스로 갖춰 있건마는 스스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모름지기 선지식의 가르침을 구하여야 바야흐로 보게 되느니라.
만일 스스로 깨닫는 자는 밖으로 구함을 빌리지 않느니라. 만일 한쪽만 고집하며 모름지기 다른 선지식을 의지하여 해탈을 얻는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자기의 마음 안에 선지식이 있어서 스스로 깨닫는 것인데 만일 삿된 미혹을 일으켜서 망령된 생각으로 평상심을 잃으면 밖의 선지식이 비록 가르쳐주더라도 구원되지 못하리라. 만일 바르고 참된 반야를 일으켜 관조하면 한 찰나사이에 헛된 생각이 모두 다 없어질 것이며 만일 자성을 알아서 한번 깨달으면 곧 부처님의 자리에 이르느니라.
선지식아! 지혜로 관조하면 안과 밖이 분명하게 통하여 자기의 본심을 알게 된다. 만일 본심을 알면 본래 해탈이요, 만일 해탈을 얻으면 이것이 곧 반야 삼매이며 무념(無念)이니라. 무엇을 무념이라 하는가하면 일체 법을 보더라도 마음이 물들거나 집착하지 않는 것을 무념이라 하느니라. 작용하여 일체 처에 두루 하되 일체 처에 집착하지 않고 다만 본심을 깨끗이 하여 육식으로 하여금 육근이 나오더라도 육진 가운데 물들지 않고 섞이지 않아 오고 감이 자유롭고 통용에 막힘이 없는 이것이 곧 반야 삼매며 자재해탈이고 무념행이라 이름하느니라. 만일 백가지를 생각하지 아니하여 생각으로 끊으려하면 이것은 법에 얽히는 것이라서 변견(극단으로 치우쳐 집착하는 견해)이라 하느니라.
선지식아! 무념법을 깨닫는 자는 만법이 다 통하며, 무념법을 깨닫는 자는 모든 부처님의 경계를 보며, 무념법을 깨닫는 자는 부처님의 지위에 이르느니라.
善知識아 後代에 得吾法者가 將此頓敎法門하야 於同見同行에 發願受持호대 如事佛故로 終身而不退者는 定入聖位하리라 然이나 須傳授從上已來로 黙傳分付하야 不得匿其正法이니 若不同見同行이오 在別法中인댄 不得傳付니라 損彼前人하야 究竟無益이니 恐愚人이 不解하고 謗此法門하야 百劫千生斷佛種性일까하노라
善知識아 吾有一無相頌호니 各須誦取하야 在家出家에 但依此修어다 若不自修하고 惟記吾言하면 亦無有益이니라 聽吾頌하라 曰
說通及心通이여 唯傳見性法하야 法卽無頓漸이언마는 只此見性門을 說卽雖萬般이나 煩惱暗宅中에 邪來에 煩惱至요 邪正을 俱不用하면 菩提本自性에 淨心이 在妄中하니 世人이 若修道인댄 常自見己過하면 色類가 自有道하야 離道別覓道하면 波波度一生하야 欲得見眞道인댄 自若無道心이면 若眞修道人인댄 若見他人非하면 他非我不非인댄 但自却非心하고 憎愛不關心하면 欲擬化他人인댄 勿令彼有疑하면 佛法이 在世間하야 離世覓菩提하면 正見이 名出世요 邪正을 盡打却하면 此頌이 是頓敎며 迷聞하면 經累劫이오 | 如日處虛空하니 出世破邪宗이로다 迷悟가 有遲疾이니 愚人이 不可悉이로다 合理에 還歸一이니 常須生慧日이어다 正來에 煩惱除니 淸淨至無餘하리라 起心卽是妄이라 但正하면 無三障이로다 一切가 盡不妨이니 與道卽相當하리라 色類各不相妨惱니 終身不見道하리라 到頭에 還自懊하나니 行正이 卽是道니라 闇行不見道하나니 不見世間過니라 自非가 却是左니 我非가 自有過니라 打除煩惱破하야 長伸兩脚臥하리라 自須有方便이니 卽是自性現하리라 不離世間覺이니 恰如求兎角이니라 邪見이 是世間이니 菩提性宛然하리라 亦名大法船이니 悟則刹那間이니라 |
師가 復曰今於大梵寺에 說此頓敎호니 普願法界衆生이 言下에 見性成佛이로다
時에 韋使君이 與官僚道俗으로 聞師所說하고 無不省悟하야 一時에 作禮하고 皆歎善哉라 何期嶺南에 有佛出世리오하니라
선지식아! 후대에 나의 법을 얻는 자가 이 돈교 법문을 가지고 견해가 같아서 같은 행을 하는 사람에게 받아 지니도록 원을 세워 부처님 섬기는 것 같이 하며 몸이 다하도록 물러나지 않으면 반드시 성인의 지위에 들리라.
그러나 위로부터 묵묵히 전해 내려오는 분부를 다시 전해 주어서 그 정법을 숨기지 말아야 하겠지만 견해가 같지 않고 행이 같지 않는 다른 법에 있는 자에게는 당부하며 전하지 마라라. 그 앞에 있는 사람을 해치어 결국은 이익이 없을 것이며, 어리석은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고 이 법문을 비방하여 백겁 천생에 부처님 될 성품을 끊을까 두렵지 때문이니라.
선지식아! 내게 무상송이 하나 있으니 각자 외워 지녀라. 재가인이거나 출가인이거나 이것을 의지하여 닦아라, 만일 스스로 닦지 않고 나의 말만 기억하면 이익이 없을 것이니라.”
나의 게송을 들어라.
말로 통하고 마음이 통함이여 태양이 허공에 있는 것과 같으니
오직 견성하는 법만 전하여 세상에 나서 삿된 가르침을 쳐부수도다.
법은 곧 돈과 점이 없건마는 미(迷)와 오(悟)에는 더디고 빠름이 있네.
다만 이 견성하는 문을 어리석은 사람이 알지 못하네.
말로 설하면 비록 만가지이지만 이치에 합하면 도리어 하나로 돌아감이니
번뇌로 어두운 집 가운데에 항상 지혜의 햇빛을 낼지어다.
삿된 것이 오면 번뇌가 일어나고 바른 것이 오면 번뇌가 사라지리니
삿된 것과 바른 것을 다 쓰지 않으면 청정하여 남음이 없는데 이르리라.
보리의 근본 자성에 마음을 일으키면 곧 망령이라
깨끗한 마음이 망령 가운데에 있으니 바르면 세 가지 장애가 없으리라.
세상 사람이 만일 도를 닦으면 일체가 다 방해되지 않나니
항상 스스로 자기의 허물을 보면 도와 더불어 곧 서로 맞으리라.
모든 것은 스스로 도가 있어서 각각 서로 방해하여 괴롭히지 않으니
도를 여의고 따로 도를 찾으면 몸이 다 하여도 도를 보지 못하리라.
부질없이 일생을 지내서 눈앞에 닥쳐서야 뒤늦게 뉘우치나니
참된 도를 보고자 하느냐 바른 것을 행하는 것이 곧 도이니라.
스스로 만일 도의 마음이 없으면 어둡게 행하여 도를 보지 못하나니
만일 참으로 도 닦는 사람이라면 세간의 허물을 보지 마라라.
만일 남의 그릇됨을 보면 도리어 나의 그릇됨이 되느니라.
다른 이는 그르고 나는 그르지 않다하면 그르다하는 그것이 허물이니라.
다만 스스로 그르게 여기는 마음을 물리치고 번뇌를 쳐부수어 없애버리고
밉고 고운 데에 관계하지 않으면 길이 두 다리를 펴고 누우리라.
다른 사람을 교화하고자 하면 스스로 모름지기 방편을 쓰라
저로 하여금 의심을 없애면 곧 자성이 나타나리라.
불법이 세간에 있어서 세간의 망각을 여의지 않음이니
세간을 여의고 보리를 찾으면 마치 토끼 뿔을 구함과 같으니라.
정견이 이름이 출세요 사견이 곧 세간이니
사와 정을 다 쳐 물리치면 보리 자성이 완연하리라.
이 송이 바로 돈교며 또한 이름이 대법선(大法船)이니
미혹하여 들으면 누겁을 지내고 깨달으면 곧 찰나 사이니라.
대사가 다시 말씀하였다.
“이제 대범사에서 이 돈교를 설했으니 온 법계의 중생이 말 아래에 견성 성불하기를 원하노라.”
때에 위 사군과 관료와 도 닦는 이와 속인들이 다 함께 대사의 설법을 듣고 살펴 깨닫지 못한 이가 없었기에 함께 예를 올리고 찬탄하기를 “거룩하십니다. 어찌 영남에 부처님이 나오실 것을 짐작이나 했겠습니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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