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속의 대화

내가 누군지 모른대서야~~~

혜주 慧柱 2020. 11. 22. 07:59

마산... 일출

 

나로부터 모든 게 시작되었으니

 

나는 누구입니까? 이름이 홍길동이라 해서 내가 홍길동입니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겁니까? 이를 모르고 를 고집한다면. . .  또 고집하는 그 놈은 무엇입니까?

아마도 여러분 중에는 나는 나지 뭐긴 뭐야?’ 하실 분도 계실 것이고, ‘나는 부모의 정혈精血을 받아서 태어났으며 죽으면 그뿐이라고 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우린 이 숙제를 풀지 않고서는 생명이 뭔지, 삶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뿐더러 일체 만물만생이 세상에 출현했다가 사라지는 이치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나는 나지 뭐긴 뭐야?’ 하신다면 되묻고 싶습니다.

는 육신의 나입니까? 마음의 나입니까? 몸뚱이만 나라고 할 수도 없고, 또 마음만을 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닐까요?

설령 심신을 합쳐 진 것이 라면, 이렇게 버젓이 살아서 보고, 듣고, 움직이고 생각하게 하는 이 생명의 에너지는 뭐라고 해야 할까요?

 

죽으면 그뿐이라 한다면 어떻게 있던 것이 없어질 수 있겠습니까? 물론 육신은 흩어져 흙, , , 바람의 길로 돌아가겠지만 그러면 마음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마음까지도 없어진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마음이 없고 마음 내는 것도 없다면 목석木石일 것이고, 몸뚱이가 없다면 삶이 무효일 것이며, 정신의 근본이 없다면 그것 또한 무효일 것입니다. 그러니 제일 시급한 문제는 이 세상의 깊은 데 얕은 데, 넓은 데 좁은 데를 다 아는 게 아니라 나부터 알아야 된다는 얘깁니다.

 

나로부터 모든 것이 벌어졌습니다. 내가 있고서야 우주도 있습니다. 내가 없다면 상대는 무엇이고 우주는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나부터 알아야 합니다.

 

나를 알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 , 우주 삼라만상을 다 압니다. 내가 대천세계이고 대천세계가 나니까 그때는 새삼스레 안다고 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나를 나로 보고 대상을 대상으로 보면 알 수 없습니다. 내가 있기에 상대가 있습니다. 내가 없다면 상대가 있을 이 없고 우주도 세상도 없습니다. 물론 괴로움이다, 슬픔이다, 고통이다 하는 경계도 없습니다.

 

자기가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까 상대가 있는 것이고, 세상도 천차만별로 모양을 갖추고 벌어져 있는 것입니다. 만약 자기가 없다면 상대는 다 뭐고, 세상의 온갖 모습은 다 무엇이겠습니까? 몽땅 무효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그렇기에 자기가 중심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부터 알아야 상대도 알고 세상도 알게 됩니다.

 

이 세상에 내가 탄생을 안 했다면 뭐가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탄생을 했기 때문에 있는 겁니다. 상대가 있고 어려움이 있고 자랑스러운 게 있고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최초의 문제는 나 하나의 탄생으로 인해서 생긴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나'라는 근본을 알면 우주를 아는 게 됩니다. 내가 변하면 우주가 변한 것입니다. 나 이외에 어떤 다른 변화라고 그것은 변화가 아닙니다. 나 이외에 어떤 중심이라도 그것은 진짜 중심이 아닙니다. 나는 모든 것의 열쇠입니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근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고 느끼게 하는 근본 말입니다. 또 일체 만물만생을 움직이게 하는 근본은 뭐라 생각하십니까?

 

예를 들어 좋은 기계를 새로 만들었다고 합시다. 그 기계를 누가 가장 잘 작동시킬 수 있겠습니까? 만든 사람이 가장 잘할 것입니다. 그렇듯이 우리를 형성시킨 근본이 있다면 그 근본이 우리를 가장 잘 알고 가장 잘 이끌어 갈 것입니다. 그 점을 믿는다면 나의 근본은 제쳐 두고서 자신이 진정으로 누구인지도 모르는 그 가 나를 가장 잘 안다고 주장하겠습니까?

 

집 지어 들어가 사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자동차 사서 운전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집이 나를 살리고 자동차가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아니지요. 그러니 이 육신 껍데기, 또는 라는 형상을 나로 보지 말고 우선 진짜 주인을 발견하라는 것입니다.

 

내 살림살이 내가 알지 남이 더 잘 아는 게 아닙니다. 내가 아프면 아픈 대로 궁하면 궁한 대로 내가 잘 압니다. 외롭고 슬프고 즐겁고 기쁘고 더럽고 깨끗하고 크고 작고를 내가 다 압니다. 다양하게 변모하면서 돌아가는 살림살이, 씀씀이를 내 마음이 잘 압니다. 그리고 그때는 벌써 나의 근본이 알고 우주 전체가 다 압니다. 그렇기에 각자 나부터 알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 집 전화부터 먼저 개통시켜라.’ 라고 하는 것입니다.

 

3층 집을 짓는데 1층은 짓지 않고 2, 3층부터 지으려고 한다면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면서 세상일을 알아야 하겠노라 한다면 그 또한 어불성설입니다. 내가 나를 모르고서는 내 몸속의 생명들도 다스릴 수 없고 세상일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나의 현재, 과거, 미래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게 너무도 많습니다. 그런데 언제 남을 탓하고 환경 탓하며 바깥일에 시비를 가리자고 할 겁니까? 우선 나부터 알아야 남도 알게 되겠지요, 그러니 나부터 돌아보라.’ 고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내가 나의 주인이다.’ 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진짜 나의 하수인, 심부름꾼입니다. 진짜 주인은 우리 몸속의 온갖 생명의 의식들을 다스릴 수 있는, 다스리면서 운행케 할 수 있는 근본 자리입니다. 그걸 뿌리라고 할 수도 있고 선장이라고 할 수도 있고 참나라고 해도 됩니다. 주인공主人公이라고 불러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