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스크리트본 금강경 한글번역
존경스럽고 신성한 지혜의 완성을 향해 예배드리나이다.
1.
제가 들은 바에 의하면, 어느 때 스승이 천 이백 오십 명이나 되는 많은 수행승들[많은 구도자, 훌륭한 사람들]과 더불어 슈라바스티 시의 제타 숲, 고독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는 장자의 뜰에 머물고 계셨다.
스승은 아침녘에 하의를 입으시고, 발우와 상의를 손에 쥐고, 슈바라스티 대시가를 탁발을 위해 걸으셨다. 스승은 슈바라스티 대시가를 걸식을 위해 걸으셔서 식사를 끝마치셨다. 식사가 끝나자 탁발로부터 돌아와 발우와 상의를 정리하고, 두 발을 씻고, 준비된 자리에 두 다리를 가부좌하고, 몸을 곧바로 하여 정신을 집중하고 앉으셨다. 그때에 많은 수행승들이 스승이 계신 곳으로 가까이 왔다. 가까이 와서 스승의 두 발에 머리를 대고 스승의 주위를 오른쪽으로 부터 세 번 돌고 그 옆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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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바로 그때에 수보리(須菩提) 장로(長老)도 같이 그 곁에 와서 앉았다. 그런데 장로 수보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상의(上衣)를 한쪽 어깨에 걸치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스승이 계신 방향을 향하여 합장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스승이시여, 훌륭하십니다. 행복한 분이시여, 참으로 훌륭한 일입니다. 여래 ․ 존경받을만한 분 ․ 올바로 깨달으신 분에 의해서 구도자 ․ 훌륭한 사람들이 ‘최상의 은혜’로 감싸여 있다는 것은, 스승이시여, 훌륭한 일입니다. 여래 ․ 존경받으실 분 ․ 올바로 깨달으신 분에 의해서 구도자 ․ 훌륭한 사람들이 ‘최상의 위촉’을 받는다는 것은 [훌륭한 일입니다]. 그런데 스승이시여, 구도자의 길[道]로 향하는 훌륭한 젊은이, 훌륭한 딸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마음을 지키면 좋겠나이까?”
이와 같이 물었을 때, 스승은 수보리 장로를 향하여 이렇게 대답하셨다. “실로 실로 수보리여, 그대가 말하는 대로이다. 여래는 구도자 ․ 훌륭한 사람들을 최상의 은혜로 감싸고 있다. 여래는 구도자 ․ 훌륭한 사람들에게 최상의 위촉을 주고 있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듣는 게 좋다. 잘 생각하는 것이 좋다. 구도자의 길로 향하는 자는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마음을 지킬 것인가 하는 것을 나는 그대에게 얘기해 들려주리라.”
수보리 장로는 스승을 향해 대답하였다. “그렇게 해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스승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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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스승은 이와 같이 이야기를 꺼냈다. “수보리여, 이제 구도자의 길로 향하는 자는 다음과 같은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수보리여, 대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알에서 생기는 것[卵生], 모태에서 생기는 것[胎生], 습기에서 생기는 것[濕生], 남으로부터 태어나지 않고 스스로 태어나는 것[化生], 형태 있는 것, 형태 없는 것, 표상(表象)작용이 있는 것, 표상작용이 없는 것, 표상작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것, 그밖에 산 것의 부류로서 생각될 수 있는 한에 있어서 생각된 모든 살아 있는 것들, 그 모든 것들을 나는 ‘고뇌가 없는 영원한 평안’이라는 경지로 인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무수한 살아있는 것들은 영원한 평안으로 이끈다 하여도, 실은 누구 하나라도 영원한 평안에 인도되어 들어온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만약에 구도자가 ‘살아있는 것들이란 생각’을 일으킨다고 하면, 이미 그는 구도자라고는 말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누구든지 ‘자아(自我)라고 하는 생각’을 일으키거나 ‘살아있는 것이라는 생각’이나 개체(個體)라고 하는 생각‘이나 ’개인이라고 하는 생각‘ 등을 일으키는 사람은 이미 구도자라고는 불릴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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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런데 수보리여. 구도자는 물건에 집착(執着)해 보시(布施)를 해서는 안 된다. 무엇엔가 집착하면서 보시해서는 안 된다. 형태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소리나, 냄새나, 맛이나. 느낌이나, 생각의 대상에 집착해서 보시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이 수보리여, 구도자 ․ 훌륭한 사람들은 발자취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에 집착하지 않게끔 보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만약에 구도자가 집착함이 없이 보시하는 공덕(功德)이 거듭 쌓여서, 쉽게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가 되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동방(東方)의 허공의 양을 쉽게 측량해 볼 수 있을 까?”
수보리는 대답했다. “스승이시여, 측량할 수 없습니다.”
스승은 물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남(南)도, 서(西)도, 북(北)도, 아래[下]도, 위[上]도, 이와 같이 시방(十方)의 허공의 양도 쉽게 측량할 수 있을까?”
수보리가 대답했다. “스승이시여, 측량할 수 없습니다.”
스승은 말했다. “수보리여, 이와 마찬가지이다. 만약에 구도자가 집착됨이 없이 보시하면, 그 공덕의 쌓임은 쉽게 헤아릴 수 없다.
실로 수보리여, 구도자의 길을 향하는 자는 이와 같이 발자취를 남기고자 하는 생각을 남기지 않고 행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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