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과 신심명, 그리고 일기일회

11), 이곳까지 몇 걸음에 왔는가

혜주 慧柱 2010. 5. 15. 11:40

이곳까지 몇 걸음에 왔는가

2007년 5월 31일 여름안거 결제

 

오늘 날씨가 좋습니다. 날씨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날이 잔뜩 흐리고 비바람이 불면 마음도 따라서 몹시 스산해지고 침체됩니다.

특히 정신이 허약한 사람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날이 화창하면 새들도 아침부터 무척 즐겁게 노래합니다.

자연의 일부인 사람 역시 화창한 날에는 마음이 맑고 투명해져서 한결 명랑해집니다.

흐린 날 사람을 만나면 별로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맑은 날 사람을 만나면 서로가 그 존재에 가려진 것이 없기 때문에 더욱 친밀해질 수 있습니다.

 

어제는 제가 과식을 했는지 갑자기 속이 답답하고 식은땀이 나서 오늘 여기에 나올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하루 저녁 굶었더니 괜찮아졌습니다.

과식들 하지 마십시오.

특히 저 같은 자취생은 남은 음식을 버리기 아까우니까, 무조건 다 먹어 치우는 바람에 소화가 안 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오늘은 여름안거 첫날입니다. 그래서 조주 스님의 일화를 음미해 보겠습니다.

불교 역사 가운데 이런 스님이 계셨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합니다.

많은 선지식들이 계시지만 특히 조주 스님 같은 분은 청정 승가의 본보기입니다.

말로써 가르쳤을 뿐 아니라 스스로 행동으로 실천해 보였습니다.

이분은 120해를 살았습니다.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말까지 장수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흔히 조주고불趙州古佛, 즉 옛 부처님이라 부르곤 합니다.

스님은 어려서 출가를 했습니다. 절에서는 견습 승려일 때를 사미라고 부르는데,

사미 때 남전南泉 스님을 친견하게 됩니다. 남전 스님은 당대의 이름 높은 큰스님이었습니다.

 

이때 남전 스님은 몸이 고단해서 주지실에 누워 있었습니다.

한 사미승이 들어와 인사하는 것을 보자 스님은 대뜸 “어디서 왔느냐?” 하고 묻습니다.

승가에서 어디서 왔느냐는 물음은 지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선문답입니다.

 

그러자 사미승은 “서상원에서 왔습니다.” 하고 답합니다. ‘서상원’은 절의 이름입니다. 상서로울 ‘서’, 모양 ‘상’입니다.

“그래? 그럼 서상을 보았느냐?” 남전 스님이 묻습니다.

서상원에서 왔다고 하니 과연 서상, 즉 상서로운 상을 보았느냐는 물음입니다.

이때 사미가 대답합니다.

“서상은 보지 못했지만 누워 계신 부처님은 보았습니다.”

 

이에 남전 스님이 벌떡 일어나 앉으며, ‘보통 물건이 아니구나.’ 하며 내심 기뻐합니다.

“넌 주인이 있는 사미냐, 주인이 없는 사미냐?”

남전 스님이 묻습니다. 유주사미有主沙彌인가 무주사미無主沙彌인가? 정해진 스승이 있는가, 아직 정해진 스승이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미가 대답합니다.

“주인이 있습니다.”

“그가 누구냐?”

사미는 그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스님을 향해 공손히 큰절을 올리고 나서 천연덕스럽게 말합니다.

“정월이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날이 매우 춥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언제나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미는 남전 스님을 자기 스승으로 여기고 예배드린 것입니다.

남전 스님도 그를 매우 기특하게 여겨서 특별히 보살피게 됩니다.

이와 같이 조주 스님은 어렸을 때부터 번쩍이는 선기禪機, 곧 선의 기틀을 지닌 분이었습니다.

수많은 생 동안 수행을 해 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승과 제자가 만나서 처음 주고받는 문답은 매우 중요합니다.

한 생애를 좌우합니다. 두 사람의 관계 속에서 한 생애를 주고받습니다.

 

한 청년이 금강산에 큰스님이 계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갑니다.

큰스님이 묻습니다.

“어디서 왔는가?”

 

청년이 답합니다.

“신계사神溪寺에서 왔습니다.”

 

큰스님이 다시 묻습니다.

“그럼 신계사에서 여기까지 몇 걸음에 왔는가?”

이 절에서 저 절까지 가면서 걸음을 세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몇 걸음에 왔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이때 이 청년이 벌떡 일어나 큰 방을 한 바퀴 돌고 나서 답합니다.

“이렇게 왔습니다.” 이 말을 듣고 큰스님 곁에 있던 한 스님이 ‘10년 정진한 수좌보다 낫군.’하고 칭찬합니다.

이것은 효봉曉峰 스님이 승려 되기 전에 스승인 석두石頭 스님을 찾아가서 처음으로 나눈 문답입니다.

여러분들은 이곳에 몇 걸음에 왔습니까?

 

원래 조주 스님의 이름은 ‘종심從諗’입니다. ‘조주’라는 땅에서 오래 계셨기 때문에 조주 스님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중국의 큰스님들인 임제, 덕산德山, 백장 등은 그분들이 살았던 지명, 지역의 이름입니다.

덕산에서 오래 살면 ‘덕산 스님’, 백장산에서 오래 살면 ‘백장 스님’……

이름과 법명이 따로 있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다 보니 이름이 된 것입니다.

 

어느 날 조주 스님이 스승에게 묻습니다.

“어떤 것이 도입니까?”

 

그러자 스승이 대답합니다.

“평상심平常心이 도다.”

‘도’는 특별한 다른 데 있는 것아 아니라 일상의 삶, 즉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 속에 있다는 뜻입니다.

 

조주 스님이 다시 묻습니다.

“평상심이 도라면 따로 수행할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스승이 말합니다.

“도를 마음 밖에서 찾으려고 하면 벌써 어긋난다.”

마음 안에 다 있기 때문에 도를 마음 밖에서 찾으면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조주 스님이 또 다시 묻습니다.

“하지만 도를 얻으려고 하면서 수도하지 않고 마음을 닦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것이 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스승이 답합니다.

“도는 알거나 모르는 데 있지 않다. 만약 무엇인가를 알았다는 생각을 쉬고 참된 도에 도달한다면 그것은 마치 텅 빈 허공과 같아서 아무런 자취도 없다.”

조주 스님은 이 한 마디에 크게 깨닫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 열여덟 살이었습니다. 참으로 비범한 법의 그릇입니다.

이후부터 조주 스님은 스승인 남전을 40년 동안 모십니다. 깨달음에 이르고 나서도 40년 동안 스승을 모신 것입니다.

이런 모습에서 120해를 산 그의 장수의 저력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스승 밑에서 10년, 아니 5년도 있지 않으려고 합니다.

승려증만 받으면 다 제 갈 길을 갑니다. 저는 요새 기회도 없고 생각도 없고 해서 상좌를 들이지 않습니다

 “상좌 하나에 지옥 하나.”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상좌 때문에 애먹은 사람들이 많았던 듯합니다. 물론 좋은 상좌도 있습니다.

 

불일암에 중 되겠다며 더러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저는 귀찮아서 “내가 시키는 대로 다 하겠는가?” 하고 묻습니다.

그러면 다들 하겠다고 대답합니다. “그럼 3년 동안 행자 노릇 할 수 있는가?” 하고 다시 묻습니다.

요즘은 그렇게 행자 노릇 오래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가 가장 중요한 기간입니다.

일단 중이 되고 나면 오만해집니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려고만 하지 정착하려는 간절한 생각이 없어집니다.

그저 3년만 채우는 것이 아니고 그 기간에 참고 견디면서 자기가 평생 받아 쓸 수 있는 수행의 기틀을 세워야 합니다.

처음 마음먹을 때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것이 씨앗이 되어서 마침내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것입니다.

 

조주 스님은 스승인 남전 스님이 돌아가시고 나이 예순이 되어서야 비로소 여기저기 운수 행각을 다닙니다.

물병 하나와 지팡이만 짚고서 운수납자雲水衲子가 되어 행각의 길에 나섭니다.

 

이때 조주 스님은 안으로 이런 다짐을 합니다.

“일곱 살 먹은 동자라도 나보다 나은 이에게서는 기꺼이 배우고,

백 살 된 노인일지라도 나에게 미치지 못한 이에게는 내가 가르침을 베풀리라

七歲童我 若勝我者 我卽問伊 百歲老翁 不及我者 我卽敎他.”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는 배우고 미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깨우침을 주겠다는 원을 세우고 행각을 떠난 것입니다.

그는 나이 여든에야 비로소 조주 동쪽에 있는 관음원觀音院이란 아주 조그마한 절의 주지를 하게 돕니다.

절은 작고 가난해서 겨우 끼니를 이어 갈 정도였습니다.

스님은 여위고 헐벗었지만 몸가짐을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았습니다. 철저한 무소유의 수행승이었습니다.

 

중국 역사상 큰 법난法難, 즉 불교가 박해를 받은 일이 네 번 있었습니다.

이를 삼무일종의 난이라고 하는데, 그중 당 무종 때의 박해가 가장 심했습니다.

당시 조주 스님은 깊은 산에 숨어서 나무 열매와 풀뿌리로 연명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수행자의 자세는 잃지 않습니다.

 

한번은 좌선할 때 앉은 선상禪床의 다리 하나가 부러집니다. 그래서 타다 남은 장작개비를 새끼로 묶어서 사용합니다.

누가 새로 만들어 드리겠다고 해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40년 동안 가난한 관음원의 주지로 있으면서도 신도의 집에 편지 한 장 띄우는 일이 없었습니다.

‘불사 하니까 오십시오. 무슨 행사 하니까 오십시오,’ 그런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수행자의 모습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배우고 얻어들을 때 우리 안에 수행자의 씨앗이 심어집니다.

 

그래서 그를 옛 부처님, 조주 고불이라고 일컫습니다.

같은 시대에 살았던 어떤 스님들은 제자들을 가르칠 때 걸핏하면 몽둥이로 때리고 고함을 치곤했는데,

조주 스님은 오로지 쉬운 말로써 가르침을 폅니다.

조주 어록에 보면 여러 가지 배울 점이 많은데, 스님의 인간미가 묻어나는 법문도 있습니다.

 

어떤 지방관리가 조주 스님에게 묻습니다.

“큰스님일지라도 지옥에 들어가는 일이 있습니까?”

아주 당돌한 질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지목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들어가는 것과 떨어지는 것은 다릅니다.

들어가는 것은 내 원에 의해서, 원력에 의해서이고, 떨어지는 것은 업력에 의해서입니다.

입지옥入地獄과 타지옥墮地獄은 그렇게 다릅니다. 떨어지는 것은 내 업의 힘에 의한 것입니다.

 

스님은 태연하게 대답합니다.

“내가 먼저 들어갈 거야.”

“아니, 어째서 큰스님께서 지옥 같은 데를 들어간다고 하시는 겁니까?”

 

조주 스님이 답합니다.

“들어가지 않는다면 내 어찌 그대를 만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무서운 법문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도 국민을 괴롭히거나 부패한 관리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사람들을 제도하기 위해 내가 먼저 가서 기다리겠다는 것입니다.

우스개 장난소리가 아니라 조주 스님의 원입니다. 원과 업은 이토록 다릅니다.

 

또 한번은 어떤 유생이 스님이 들고 있는 주장자를 보고 탐이 나서 묻습니다.

“부처는 중생의 원을 들어주신 다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미리 함정을 파는 것입니다.

“아, 그렇지.” 하고 조주 스님이 대꾸합니다.

“저는 노스님이 들고 계신 주장자를 갖고 싶습니다. 주시겠습니까?”

조주 스님은 말합니다.

“군자는 남이 좋아하는 것을 빼앗지 않는 법이라네.”

그러자 유생이 답합니다.

“저는 군자가 아닙니다.”

조주 스님이 답합니다.

“나도 부처가 아니라네.”

이분의 순간적인 기지 또한 지혜입니다. 함정에 말려들지 않고 그 사람 수준에 맞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이가 묻습니다.

“깨달은 사람은 어떻습니까?”

조주 스님이 답합니다.

“참으로 크게 수행한다.”

깨닫고 나서야 진짜 수행한다는 말입니다. 깨닫기 전의 수행은 온전한 수행이 아니고, 알고 나서 닦는 수행이야말로 진정한 수행입니다.

그러자 그가 다시 묻습니다.

“노스님께서도 수행을 하십니까?”

조주 스님의 답입니다.

“옷을 걸치거나 밥을 먹기도 하고 차를 마시기도 하지.”

“아, 그것은 평범한 일 아닙니까?”

“그럼 그대가 말해 보라. 내가 날마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평상심이 곧 도임을 그런 예로 보여 준 것입니다.

이렇듯 조주 스님은 그 시대의 다른 선사들과는 달리 몽둥이나 고함이 아닌, 오로지 알기 쉬운 말로써 가르침을 폈습니다.

이것이 조주 스님의 가풍입니다.

 

120세까지 살다가 세상을 하직할 때 스님은 제자들에게 당부합니다.

“내가 죽은 뒤에 화장하여 흩어 버릴 것이지 사리 같은 걸 줍지 말라.

선가의 제지라면 세속인과 같지 않아야 한다. 이 육신이란 헛것인데 거기에서 사리를 줍다니 당찮은 수작이다.”

요새 스님들 죽으면 사리가 나왔다면서 얼마나 요란을 떱니까? 스님은 이 말을 남기고 그 자리에서 앉은 채 입적합니다.

 

우리가 옛 선사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은 말장난을 하거나 지식을 쌓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후학으로서 먼저 갔던 분들의 자취를 배우고 익혀서 내 것으로 삼기 위함입니다. 기록이란 이토록 중요합니다.

말은 하고 나면 그때그때 사라지지만 기록은 시대와 지역을 넘어 오늘날까지 전해집니다.

<조주록>이라는 기록이 있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조주 스님이 어떤 분이며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가르쳤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기록이 없었다면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기록은 역사를 이룹니다.

 

이 기록을 배우는 것은 옛 거울에 오늘의 나 자신을 비춰 보기 위함입니다.

자기반성이 없고, 스스로 자기 자신을 되살피는 일이 없다면 아무리 경전을 많이 읽고 어록을 접하고 법문을 듣는다 해도 얻는 것이 없습니다.

그저 남의 이야기일 뿐, 나 자신에게는 아무 이익이 없습니다. 늘 자기 자신에게 비춰 봐야 합니다.

‘나의 지금의 삶은 어떠한가? 나는 그렇게 닮아 가고 있는가? 나 자신의 가풍은 무엇인가?’ 스스로 반성할 수 있어야 영적 성장이 가능합니다.

 

각자 오늘 결제일을 맞이해서 앞으로 90일 안거를 어떻게 지낼 것인지 결단해야 합니다.

앞으로 주어진 이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스스로 원을 세워야 합니다. 제가 기회 닿을 때마다 원 세우라는 말을 합니다.

그 원의 힘으로 수행을 해 나가야 합니다.

원을 세우면 어떤 어려운 일이 있더라고 그 원력의 힘으로 딛고 일어서게 됩니다. 원이 없으면 늘 흔들립니다.

부처나 조사들이 부처나 조사가 되고 나서 원을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 원의 힘으로써 부처와 조사가 된 것입니다.

원의 힘을 지니고 있으면 어떤 어려운 상황도 이겨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이 없으면 조그마한 일에도 좌절합니다.

 

제 개인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실상사를 드나들면서 저는 너무 많은 것을 얻어 갑니다. 올 때마다 차에 음식을 잔뜩 싣고 갑니다.

그때마다 마음이 영 개운치 않고 무겁습니다.

이전의 제 괴팍한 성질 같으면 안 가져간다고 물리칠 텐데, 주는 분의 성의와 정성을 생각해서 일단 다 받습니다.

그러나 개인이 쓸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루 세 끼 먹으면 충분하지 네 끼, 다섯 끼 먹습니까?

주는 대로 받아 가면 문제가 생깁니다. 제가 강원도에서 15년 가까이 살다 보니 아는 집이 서넛 생겼습니다.

주로 일꾼들인데, 이 사람들도 근처에 사는 것이 아니라 3, 40리 밖에 있습니다. 근방에 마을이 없습니다.

떡이든 과일이든 혼자 못 먹으니까 다음날 차에 싣고 그 사람들 집에 찾아갑니다.

 

대개 일꾼들은 낮에는 들에 나가서 일하고, 집에는 개만 달랑 있습니다.

사람은 제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는데 개는 제가 가면 무척 반가워합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좋아합니다.

개에게도 떡이나 이것저것 먹을 만한 것을 줍니다. 그런데 이것도 지겨울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생각을 달리 먹었습니다.

 

‘이제는 내 본래 가풍을 좀 드러내야겠다.’

이제부터는 무엇을 준다 해도 가차 없이 거부하고 가져가지 않을 것입니다. 저도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여기서 먹으면 됩니다.

그 대신 어떤 것도 가져가지 않겠습니다.

 

가져가면 일이 많습니다. 여기저기 나누는 것이 일입니다.

어떻게 저 혼자 감당하겠습니까? 비구계比丘戒에 보면 그 무엇이든, 옷이든 음식이든 묵혀 두지 말라는 조항이 있습니다.

쌓아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쌓아두기 때문에 지구가 병이 듭니다.

내가 하는 일이 지구환경에 득이 되는 일인지 해가 되는 일인지 그때그때 따져야 합니다.

 

혼자 하는 수행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여러 불자들 앞에서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저의 중노릇을 좀 도와 달라는 뜻에서입니다.

말로는 무소유를 떠들면서 얻어 가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속으로 아주 부끄럽고 부담스럽습니다.

늙은 중이 욕심 사납게 이것저것 챙겨 간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저 자신이 그러하든 남이 그러하든 그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그때마다 늘 속으로 ‘이것은 아닌데, 이것은 아닌데.’ 하고 자책을 했습니다. 앞으로는 예외가 없습니다.

 

누구나 자기 삶에 개성이 있어야 합니다. 일상의 삶은 무료합니다. 무엇인가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자기 삶을 보다 심화시키기 위해서 비본질적인 것과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거듭거듭 털고 일어사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진정한 내면이 활짝 꽃피어 날 수 있습니다. 사소한 인정에 얽매이지 말고 크게 생각하십시오.

 

좋은 여름안거 이루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