六 祖 法 寶 壇 經
門人 法海 集
後學 宅成 譯
同學 智首 校
第九 宣詔品
(제구 선조품)
神龍元年上元日에 則天과 中宗이 詔云 朕이 請安秀二師하야 宮中에 供養하고 萬機之暇에 每究一乘이러니 二師가 抽讓云南方에 有能禪師하야 密受忍大師衣法하야 傳佛心印하시니 可請彼問하라할새
今遣內侍薛簡하야 馳詔迎請하노니 願師는 慈念하야 速赴上京하소서 師가 上表辭疾하시고 願終林麓하신대 薛簡이 曰京城禪德이 皆云欲得會道인댄 必須坐禪習定이니 若不因禪定코 而得解脫者가 未之有也라하니 未審師所說法은 如何니잇고
師가 曰道由心悟니 豈在坐也리오 經에 云若言如來가 若坐若臥라하면 是行邪道니 何故오 無所從來며 亦無所去라하시니 無生無滅이 是如來淸淨禪이오 諸法空寂이 是如來淸淨坐라 究竟無證이어니 豈況坐耶아
신룡 원년(705년) 정월 보름날에 칙전과 중종이 조서를 보내며 이르기를
“짐이 혜안국사와 신수 두 대사를 청하여 궁중에서 공양하며 만사를 보살피며 겨를에 언제나 일승을 연구하였더니 두 대사가 사양하며 말하기를
「남방의 혜능선사가 홍인대사의 가사와 법을 받아서 부처님의 심인을 전해 받았으니 그 분을 청하여 물으십시오.」 하기에 이에 내시인 설간을 보내어 조서를 전하며 청하오니 조사께서는 자비로 살피시어 속히 서울로 오시기 바랍니다.”하였으나 조사께서는 아프다는 글을 올려 사양하시며 산기슭 숲 속에서 여생을 마치기 원하였다. 설간이 말하기를
“경성의 선덕들이 모두 다 말하기를 「도를 알고자하면 반드시 좌선하여 정(定)을 익혀야 한다. 선정을 하지 않고 해탈을 얻는다는 것을 있을 수 없는 일이다.」하시던데 조사께서는 어떻게 설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하니 조사가 말씀하셨다.
“도는 마음으로 깨닫는 것인데 어찌 앉는데 있겠습니까. 경(금강경)에 이르시기를 「만일 여래가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한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사도를 행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디로부터 온 바가 없으며 또한 갈 바도 없다.」하셨습니다. 나는 것도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는 것이 여래의 청정 좌(坐)이며 구경에는 증득하는 것도 없는데 어찌 하물며 앉는데 있겠습니까?”
簡이 曰弟子가 回京하면 主上이 必問하시리니 願師는 慈悲로 指示心要하사 傳奏兩宮과 及京城學道者하야 譬如一燈이 然百千燈에 冥者 皆明하야 明明無盡케하소서 師가 云道無明暗인 明暗은 是代謝之義라 明明無盡도 亦是有盡이니 相待立名故라 淨名經에 云法無有比니 無相待故라하시니라
설간이 말하기를
“제자가 경성에 돌아가면 주상께서 반드시 물으실 것이니 원컨대 조사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마음의 요점을 가르쳐 주시면 두 궁전과 경성에서 배우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아룀으로서 비유하건대 한 개의 등이 백 천개의 등을 켜서 어두운 것을 모두 밝게 하듯이 밝고 밝음이 영원하도록 하겠습니다.”하니 조사가 말씀하셨다.
“도에는 밝고 어두움이 없습니다. 밝음이 어두움은 번갈아 바뀐다는 뜻입니다. 밝고 밝아 다 함이 없는 것도 역시 다함이 있는 것이니 상대로 이름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정명경에 말씀하시길 「법은 비교할 데가 없음이니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簡이 曰明喩智慧하고 暗喩煩惱니 修道之人이 倘不以智慧로 照破煩惱면 無始生死를 憑何出離리잇고 師가 曰煩惱가 卽是菩提라 無二無別이니 若以智慧로 照破煩惱者인댄 此是二乘의 見解라 羊麓等機니 上智大根은 悉不如是니라
설간이 “밝음은 지혜에 비유하고 어두움은 번뇌에 비유한 것이니 도를 닦는 사람이 만일 지혜로써 번뇌를 비추어 깨뜨리지 아니하면 비롯함이 없는 생사를 무엇을 빙자하여 벗어나겠습니까?”하니 조사가 말씀하셨다.
“번뇌가 곧 보리입니다. 둘이 아니고 다른 것이 아닙니다. 만일 지혜로써 번뇌를 비추어 깨뜨린다고 하면 이것은 이승의 견해이고 양과 사슴 등의 근기이지 높은 지혜의 대 근기는 다 이와 같지 않습니까?”
簡이 曰如何是大乘見解니잇고
설간이 “어떤 것이 대승의 견해입니까?”라고 어쭈니
師가 曰明與無明을 凡夫는 見二어니와 智者은 了達其性이 無二하나니 無二之性이 卽是實性이라 實性者는 處凡愚而不感하고 在賢聖而不增하며 住煩惱而不亂하고 居禪定而不寂이니 不斷不常하고 不來不去하며 不在中間과 及其內外하야 不生不滅하야 性相이 如如하야 常住不遷을 名之曰道니라
“밝은 것과 밝지 못한 것을 범부는 둘로 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그 성품이 둘이 아님을 요달합니다. 둘이 아닌 성품이 곧 실다움 성품입니다. 실다운 성품이라는 것은 어리석은 범부에게 있어도 줄어들지도 않고 현명한 성인에게 있어도 늘어나지 않으며 번뇌에 머물러도 어지럽지 않고 선정에 있어도 고요하지 않으며 끊어지지도 않고 항상 하지도 않으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며 중간과 그 안팎에도 있지 아니하며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아 성품과 형상이 여여하며 항상 그대로이고 변천하지 않는 것을 도라고 이름합니다.”하셨다.
簡이 曰師說不生不滅이 何異外道리잇고
설간이 “조사께서 말씀하시는 불생불멸은 외도와 어떻게 다릅니까?”라고 어쭈니
師가 曰外道所說不生不滅者는 將滅止生하고 以生顯滅이라 滅猶不滅이오 生說不生이어니와 我說不生不滅者는 本自無生이라 今亦不滅이니 所以로 不同外道니라 汝若欲知心要인대 但一切善惡을 都莫思量하면 自然得入靑淨心體하야 湛然常寂하야 妙用이 恒沙리라
“외도가 말하는 불생불멸은 멸을 가지고 생을 멈추고 생으로써 멸을 나타내는 것이라. 멸도 오히려 불멸과 같으며 나는 것도 나지 않는 것이라 말하지만 내가 말한 불생불멸이라는 것은 본래 스스로 생겨남이 없는 것이어서 이제 없어지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외도와는 같지 않습니다.
그대가 만일 핵심을 알고자 하면 일체의 선과 악을 전혀 생각하지 마십시오. 자연히 청정한 마음의 바탕에 들어설 것이며 맑고 항상 고요하여 그 묘용 작용이 항하의 모래 수 같을 것입니다.”라 하셨다.
簡이 蒙指敎하고 豁然大悟하야 禮辭歸闕하야 表奏師語한대
설간이 가르침을 받고 크고 시원하게 깨달아서 절하고 하직하여 대궐로 돌아와 조사의 말씀을 글로 올렸다.
其年九月三日에 有詔하야 獎諭師曰師辭老疾하야 爲朕修道하시니 國之福田이라 師若淨名의 托疾毘耶하야 闡揚大乘하야 傳諸佛心하야 談不二法이니이다 薛簡이 傳師의 指授如來知見할새 朕이 積善餘慶과 宿種善根으로 値師出世하야 頓悟上乘하니 感荷師恩하야 頂戴無已니이다하시고 幷奉磨衲袈裟와 及水晶鉢하며 勅韶州刺史하야 修飾寺宇하고 賜師舊居하사 爲國恩寺하다
그해 9월 3일에 조서가 있었는데 조사께 감사하며 이르기를
“조사께서 늙고 병들었다고 말씀하시며 짐을 위하여 도를 닦으시니 나라의 복전입니다. 조사께서는 정명(유마힐 거사)께서 병을 들어 비야리성에서 사양하고 대승을 명백하게 들어 나타내며 모든 부처님의 마음을 전하시고 둘이 아닌 법을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설간이 조사께서 가르쳐 주신 여래의 지견을 전하여 주니 짐은 적선을 쌓은 집에 경사가 있는 생활이 되었고 숙세에 심은 선근으로 조사의 출현하심을 만나서 높은 <승>을 몰록 깨달았으니 조사의 은혜에 감사하며 머리에 받들어 마지않습니다.”하며
마납 가사와 수정 발우를 드리고 소주자사에게 명하여 도량을 수리하여 장엄하게 하고 조사의 옛 거처에 국은사라는 이름을 내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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