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생멸의 원인과 조건
復次生滅因緣者 所謂衆生依心 意 意識轉故 此義云何 以依阿黎耶識 說有無明 不覺而起 能見 能現 能取境界 起念相續 故說爲意
마음이 생멸하는 원인은 중생이 저장식을 바탕으로 마나식과 의식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풀어서 설명하면 저장식이라는 깊은 무의식의 심층에 무명의 바람이 불어서 주객을 분별하는 인식의 주체와 객체가 발생한다. 인식의 주체는 인식 객체를 대상으로 삼고 분별하여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을 내어 집착하게 된다. 그리고는 집착하는 대상에 대해서 갖가지 명칭과 의미를 부여하는 작용을 통해서 관념, 개념, 신념을 생겨나게 한 다음 심상을 창조하고 관념과 심상을 계속적으로 유지하고 발전시킨다. 그와 같이 관념을 만들고 심상을 창조하는 인식작용을 의意, 즉 마나식이라고 한다.이른바 속세의 중생이 나고 죽는 원인과 조건은 중생의 마음 즉, 저장식(세세생생을 통해서 누적된 경험, 기억, 습관, 감정 등으로 저장된 앎)에 근거해서 세세생생토록 저장된 앎에 의해서 무명이 있게 되었다는 의미로서, 저장된 앎이 바로 나고 죽는 원인이고 저장된 앎 속에 있는 무명이 바로 나고 죽는 조건이 된다는 말이다. 무명이 있음으로 해서 깨닫지 못한 상태가 발생하여 인식의 주체가 나타나고 그로 인해서 인식의 객체가 발생하게 된다. 또한 인식의 주체가 허상인 인식대상을 실상으로 착각하고 집착해서 취함으로써 그로 인한 분별망상을 일으켜서 끊임없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러므로 나고 죽는 윤회를 거듭하는 원인은 자의식 때문이다. 따라서 중생이 나고 죽는 것을 거듭하는 것은 무의식적인 자의식이 이어지고 연속되는 과정이다.
1,마나식의 작용-관념과 심상의 창조
此意復有五種名 云何爲五 一者名爲業識 謂無明力不覺心動故 二者名爲轉識 依於動心能見相故 三者名爲現識 所謂能現一切境界 猶如明鏡現於色像 現識亦爾 隨其五塵對至卽現 無有前後 以一切時任運而起 常在前故 四者名爲智識 謂分別染淨法故 五者名爲相續識 以念相應不斷故 住持過去無量世等善惡之業令不失故 復能成熟現在末來苦樂等報無差違故 能令現在已經之事 忽然而念 末來之事 不覺妄慮 是故三界虛僞 唯心所作 離心則無六塵境界 此義云何 以一切法 皆從心起 妄念而生 一切分別 卽分別自心 心不見心 無相可得 當智世間一切境界 皆依衆生無明妄心而得住持 是故一切法 如鏡中像 無體可得 唯心虛妄 以心生則種種法生 心滅則種種法滅故
마니식에는 다섯 종류의 명칭이 있다.
첫째, 업식業識이다. 무명의 힘에 의해서 깨닫지 못한 마음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둘째, 전식轉識이다. 깨닫지 못한 마음이 움직여서 인식하는 주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셋째, 현식現識이다. 인식하는 주체에 의해서 인식되는 대상이 드러난다. 인식대상이 드러나는 모습은 마치 맑은 거울이 다양한 모양과 색깔을 비추는 것과 같다. 인식대상인 심상은 형태, 소리, 향기, 맛, 촉감과 함께 시간적인 순서 없이 다양하게 드러난다. 왜냐하면 삼상은 생각과 관념으로 드러나는 허상이기 때문이다.마나식의 인식대상은 실제 마음 바깥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물체가 아니라 마음속에 존재하는 생각과 관념의 이미지인 허상이다. 다시 말해서 물체의 소리나 형태, 맛, 향기는 눈으로 보여지고 귀로 들리고 코로 냄새 맡고 감각으로 접촉되는 게 걸리는 순서는 시간과 공간적 거리에 따라서 제각기 다르다. 그러나 관념과 생각으로만 존재하는 신, 부처 등의 허상은 소리, 맛, 향기, 형태, 촉감이 한순간에 동시에 감지된다는 것이다.
넷째, 지식智識이다. 인식대상을 더럽고 깨끗한 것으로 분별하기 때문이다.이때의 분별은 깨달음의 지혜로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아만 · 아애 · 아견 · 아치와 탐진치를 바탕으로 하는 분별적 지혜다.
다섯째, 상속식相續識이다. 분별된 인식대상과 그 대상에 부여된 관념, 개념 등이 서로 작용하면서 생각과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기 때문이다.분별된 대상에 명칭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하는 관념과 개념을 형성하는 작용 자체는 무의식적 과정이기보다 오히려 의식적 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마나식보다는 제6의식에 해당한다. 그러나 관념과 개념을 만들어내는 동기는 아견, 아애, 아치, 아만과 탐진치에 근거를 둔 무의식적 에너지릐 힘이기 때문에 마나식의 작용에 포함시킨다.
그와 같이 관념과 개념이 이어오면서 아득한 과거부터 지어온 선악의 업을 간직하여 잃어버리지 않게 하고 또 현재와 미래의 고통과 즐거움의 과보를 성숙시켜 서로 인과에 어긋남이 없도록 한다. 그리고 이미 지나간 일을 문득 떠올려서 생각하고 새삼스럽게 싫어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일으켜서 미래의 일에까지 잘못된 생각과 영향을 무의식적으로 미친다.
그리하여 삼계는 거짓된 허상이요, 오직 마음이 지은 것이다.기억, 경험에 근거해서 5감의 대상을 생각하고 계산하고 다시 감정 느낌을 갖고 반응. 어리석은 마음을 벗어나면 다섯 가지 감각과 의식의 대상도 없어진다. 무슨 뜻인가 하면 일체의 현상이 모두 마음을 따라서 생겨난 것이고 그릇된 관념이 만들어낸 것이다. 인식대상이 실제로 좋고 싫은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이 좋고 싫다고 분별하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은 마음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은 인식대상이 될 수 없다. 세간의 모든 인식대상은 다 중생의 무명과 어리석은 생각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심상은 거울 가운데 비추어진 형상과 같아서 실체가 없고 오직 마음이 만들어 낸 허상임을 알아야 한다. 마음이 생기면 갖가지 차별적인 인식대상이 생기고 마음이 없어지면 갖가지의 차별적인 인식대상도 없어진다.
【설명】
여기서는 관념과 심상이 만들어지는 사고 작용을 설명하고 있다. 우선 무지에서 출발하는 마음은 모든 관계를 주객의 이원론적 관점에서 파악한다. 그런 마음 자아를 주체의 자리에 놓고 나머지를 대상으로 보고 좋고 싫고 선하고 악하고 더럽고 깨끗하고 성스럽고 천하고 등으로 분별한다. 그런 다음 각각 분별된 것에 서로 다른 이름과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생각하고 떠올리고 기억하고 연구하고 설명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에 따른 이미지와 형상을 상상하고 그려서 관념과 개념의 덩어리, 즉 심상을 창조한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서 창조된 심상은 인간의 계속적인 인지작용으로 생각과 생각을 통해서 이어진다.
2, 의식의 작용
復次言意識者 卽此相續識 依諸凡夫取著轉深 計我我所 種種妄執 隨事攀緣 分別六塵 名爲意識 亦名分離識 又復說明分別事識 此識依見愛煩惱增長義故
의식은 마나식에서의 상속식의 작용이다. 즉 생각과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생각에 대한 집착이 깊어지면 ‘나’와 ‘나의 것’을 계산하고 판단해서 각종의 그릇된 집착을 만든다. 그리고는 그와 같이 계산하고 판단해서 집착하는 생각에 따라서 형태, 소리, 냄새, 맛, 촉감, 뜻을 분별하기 때문에 의식이라고 이름붙인 것이다. 또한 눈, 귀, 코, 혀, 몸의 5가지 감각기관과 의식을 인식의 주체로 삼고 형태, 소리, 냄새, 맛, 촉감, 뜻을 인식의 대상으로 분리해서 취하기 때문에 마나식과는 구별해서 분리식分離識이라고도 한다. 또 사물과 현상을 분별하기 때문에 분별사식分別事識이라고도 한다. 분별사식은 이치를 분명하게 알지 못해서 일어나는 인지적 번뇌자아가 영원하고 독립적이고 절대적 존재하는 그릇된 견해로 말미암아 그런 자아에 집착하고 교만하고 어리석어서 깨달음을 방해하는 장애다.와 대상에 집착함으로써 일어나는 정서적 번뇌주로 탐진치 삼독에 의해서 깨달음에 장애를 일으킨다.에 의해서 증폭된다.
【설명】
저장식과 마나식은 무의식적인 작용인데 반해서 의식은 의식수준에서 작용한다. 또 마나식이 저장식을 바탕으로 한 관념의 작용이고 그 결과로 심상을 만드는 반면 의식은 주로 마나식의 영향으로 정서적 · 감각적 작용이 발생하고 그 결과로 표상이 생성된다. 다시 말해서 마나식에서 인식의 대상은 관념과 심상이고 의식에서의 인식대상은 정서와 표상이다. 심상은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오직 인식하는 사람의 마음속에서만 존재하는 완전한 허상이다. 반면에 표상은 실제로 객관으로 존재하는 사물들의 이미지다. 그러므로 표상은 객관적으로 마음 바깥에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들을 지각하는 다섯 가지 감각작용에 마나식이 영향을 미침으로써 실제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실제 사물을 왜곡시킨 이미지다.
예를 들면 표상은 순결한 백합이나 화려한 장미, 또는 외로운 보름달 등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을 지각하는데 정서적 · 인지적 심리상태가 영향을 미쳐서 어떤 주관적 이미지를 갖게 한다. 한편 신과 같은 심상은 실제 사물이 아니고 순전히 관념과 개념으로만 정의되고 설명되는 이미지라는 것이다. 따라서 장미가 화려하다는 것의 진위를 억지로 주장하거나 부정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장미는 실제로 누구나 확인하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서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이 최고이고 유일하다는 것의 진위는 억지로 주장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신은 믿는 사람의 마음속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 장미를 로즈하고 하거나 아름답지 않고 천하다고 하면, 이름이 다르고 뜻이 다르다고 해서 장미가 아닌 다른 존재를 가리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을 공空이라고 하거나 법신, 알라라고 하면 동일한 존재를 가리킴에도 불구하고 이름이 다르고 뜻이 다르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별개의 존재라고 우기는 것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신은 장미처럼 실제로 존재하는 존재론적 존재가 아니라 인식으로 존재하는 인식론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3, 저장식의 작용
依無明熏習所起識者 非凡夫能知 亦非二乘智慧所覺 謂依菩薩從初正 信發心觀察 若證法身 復少分知 乃至菩薩究竟地 不能盡知 唯佛窮了 何以故 是心從本已來 自性淸淨而有無明 爲無明所染 有其染心 雖有染心 而常恒不變 是故此義唯佛能知
저장식은 무명이 스며들고 배어서 발생한 인식작용이다. 그런데 저장식은 범부가 알아차릴 수 있는 인식작용이 아니다. 또한 아라한의 경지나 연기의 이치를 깨달은 연각승의 지혜로 깨달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저장식은 보살이 수행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52단계1~10단계: 처음으로 발심한 보살이 닦아야 할 열 가지 믿음, 십신(十信). 11~20: 열 가지 믿음을 닦고 관찰한 다음에 진리에 안주하는 열 가지 수행, 십주(十住). 21~30단계: 보살이 수행하는 열 가지 이타행, 십행위(十行位). 31~40단계: 보살이 닦은 공덕을 널리 중생에게 돌리는 열 가지 회향, 십회향(十回向). 41~50단계: 앞에서 닦은 결과로 보살이 얻게 되는 열 가지 지위, 십지(十地). 가운데 1단계부터 시작해서 41단계41단계: 참다운 중도의 지혜로 불성을 깨닫고 인식주체가 사라져서 자리이타로 희열에 가득 찬 상태. 이 단계에 있는 보살은 생주이멸의 사상(四相) 가운데서 주상만을 깨달았다. 생주이멸의 사상은 일체의 정신적 · 물질적 현상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4가지 특징, 생겨나고 머물고 부서지고 소멸되는 현상을 말한다.에 이르러야만 조금이나마 알게 된다.왜냐하면 40단계까지는 단지 그릇된 지각과 추리에 의한 인식으로 관찰할 뿐이다. 그리고 보살로서는 최고의 수행 경지인 50단계에 이른다 하더라도 저장식을 완전하게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50단계: 수행해서 깨닫고자 하는 집착마저 사라지고 끝없는 공덕과 자비행을 행함. 그들은 모두 그들이 깨달은 분야만큼만 알 뿐, 오직 부처님만이 완전하게 알 수 있다. 어째서인가? 마음 자체는 본래부터 깨끗하고 맑은데 무명에 물든 것이라서 비록 오염된 마음이 있어도 본래 마음자체는 항상 변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마음의 본성은 오직 부처님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설명】
저장식은 중생이 세세생생 윤회하면서 쌓아온 가장 깊은 무의식의 심층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므로 저장식에서 일어나는 인식작용은 너무나 미세한 무의식적 과정이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는 과거생, 현재생, 미래생을 모두 알고 공간적으로는 우주와 완전하게 일치하고 동일성에 도달한 부처님의 경지가 아니면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처음부터 깨끗했던 본래 마음과 최초의 무명이 발생한 상태를 알고, 또 그 무명으로 인해서 본래 마음이 오염되고 주객의 이원적 사고, 정서, 감각의 작용으로 전개되는 과정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4, 마음의 본질
所謂心性常無念故 名爲不變
마음 자체는 언제나 그릇된 생각, 관념, 사고가 없기 때문에 변화하는 성질이 없다.
【설명】
우리는 흔히 마음이 변하고 변덕스러워서 어제 마음이 다르고 오늘 마음이 다르기 때문에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마음의 본바탕은 원래 불변이다. 다만 마음 안에 그릇된 생각이나 관념을 잔뜩 담고 있기 때문에 그 생각과 관념에 의해서 감정이 이랬다저랬다 변덕을 부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마음 안에 담긴 생각과 감정이 변하는 것이지 마음 자체가 변하는 것이 아니다. 또 감정과 생각이 바뀌고 변할 때마다 감각과 지각도 따라서 바뀌기 때문에 잘못 보고 잘못 듣고 하는 착각도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 수행을 다른 말로 마음을 비운다든지 마음을 깨끗하게 한다든지 가라앉힌다는 표현을 한다. 그건 바로 마음 안에 들어 있는 그릇된 생각과 관념을 비운다는 말이고 그릇된 생각의 때, 관념의 때를 벗겨낸다는 것이다. 또 생각과 관념으로 발생하는 감정과 정서를 가라앉힌다는 의미다. 그리고 집착을 버린다는 말이 바로 마음 안에 담고 있는 생각과 관념에 대한 집착을 버린다는 뜻이다.
음식을 먹고 배설하지 않고 몸속에 쌓아두면 변비에 걸리고 병을 얻듯이, 날마다 듣고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기억해서 마음에 담아 둔 것들을 그때그때 비워내지 않고 쌓아두면 관념의 덩어리, 감정, 생각의 덩어리가 숙변처럼 굳어져서 온갖 마음의 병과 고통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마음수행은 바로 우리가 세세생생 쌓아온 감각, 정서, 생각, 관념, 심상, 표상 등 기억의 종자, 덩어리, 숙변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숙변이 제거되어 병이 사라지고 몸이 가벼워지듯이 생각의 숙변이 제거되면 마음의 병이 사라지고 가벼워지고 맑아지는 것이다.
5, 무명의 정의
以不達一法界故 心不相應 忽然念起 名爲無明
중생은 온 우주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마음이 우주와 일치하지 못한다. 그 틈에 주객으로 분리하는 그릇된 생각과 관념이 홀연히 일어나게 된다. 이것을 무명이라고 한다.
【설명】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무지의 뿌리는 우주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서 모든 정신적 · 물질적 존재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대적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지한 사람일수록 상대성보다는 절대성을 강조하고 평등성보다는 차별성과 우월성을 강조하게 되어 있다.
Ⅱ 마음의 오염과 정화
染心者有六種 云何爲六
오염된 마음의 종류에는 6종류가 있다.
1, 집착에 의한 오염 집상응염(執想應染)이라 한다. 고락에 머물러서 집착을 일으키고 명칭과 이름에 따라서 집착을 일으키는 오염이다.(집취상과 계명자상에 해당)
一者執相應染 依二乘解脫 及信相應地遠離故
집착에 의한 마음의 오염은 아라한 · 연각과 52단계의 보살수행에서 40단계까지 닦아서 믿음의 뿌리가 튼튼하게 내려서 흔들이지 않는 사람에 의해서 없어진다.
【설명】
본래 마음 자체는 깨끗하고 맑다고 했다. 그러한 마음이 우주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모든 정신적 · 물질적 존재들은 절대적 존재가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대적 존재라는 진리를 모르는 무지로 인해서 오염된다고 했다.
마음이 그와 같은 무지로 인해서 상대적이고 변화하는 물질적 · 정신적 현상을 절대적이고 불변하는 것처럼 집착하는 생각과 관념에 의해서 오염된 것을 말한다. 그래서 좋아하고 싫어하는 생각과 관념을 일으키고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집착한다.
2, 끊이지 않는 오염부단상응염(不斷相應染)이라 부른다. 고락과 명칭 이름에 따라 일어난 집착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오염(상속상에 해당)이다.
二者不斷相應染 依信相應地修學方便 漸漸能捨 得淨心地究竟離故
오염의 연속성은 40단계까지 점차적으로 버려져서, 52단계의 보살수행에서 41단계 환희지에서 버려진다.변계소집, 의타기성, 원성실성의 3성을 관하는 유식관과 이름, 의미, 본질적 속성, 차별(명의자성차별)을 관하는 사심사관을 닦고 환희지에 이르러 삼무성을 증득하여 법집 분별이 현행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정심지에 이르러 여의게 된다. 삼무성은 다음과 같다. 1. 상무자성-허공의 꽃, 토끼의 뿔, 신, 알라, 부처 등과 같은 심상은 생각과 마음으로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그 모양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2. 생무자성-과거의 업종자와 현재의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 이루어졌으므로 스스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못한다. 3. 승의무자성-최고의 진리에는 인식의 주체와 대상을 분별할 만한 특징이 없다.『현대심리학으로 풀어본 유식 30송』(불광출판사, 서광 저) P101~125, 참고.
【설명】
일단 마음에 좋아하고 싫어하는 생각과 관념이 생겨나고 또 이름과 의미를 부여하면서 관념의 이미지인 심상을 만들어내면,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마음의 오염은 상속된다. 왜냐하면 관념과 생각은 계속해서 설명하고 기억하는 작용을 통해서 소멸되지 않고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을 바로 염념상속念念相續이라고 한다.
3, 분별에 의한 오염분별지상응염(分別智相應染)이라 한다. 인식대상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으로 분별하는 오염작용(智相에 해당)
三者分別智相應染 依具戒地漸離 乃至無相方便地究竟離故
대승보살이 받아 지녀야 할 세 가지 계율악을 방지하기 위해서 정해놓은 모든 계율과 선을 행하는 계율과 선을 행하면서 중생에게 이익을 베푸는 계율 모두를 빠짐없이 갖출 42단계를 의지해서 47 전 단계에서46단계까지는 미세한 대상 분별은 여전히 남아 있다. 점차 벗어나다가 47단계 이상에서 완전히 벗어난다.왜냐하면 47단계 이하에서는 아공과 법공을 아는 두 가지 지혜가 일어날 때는 오염이 나타나서 작용하지 못하다가 삼매관에서 벗어나 사물에 반응하여 제멋대로 마음을 부릴 때엔 나타나 작용하기 때문에 점차 벗어난다고 말했다. 한편 47단계가 지나면 오랜 시간 삼매에 들기 때문에 마나식이 장시간 현행하지 못하며, 그러므로 삼매관에서 나와 대상에 반응하면서도 분별함이 없는 형상의 속박에서 벗어난 무상방편지에 이르러서 마침내 멀리 여의기 때문이다.
【설명】
무지로 인한 그릇된 관념과 생각은 다시 좋고 싫고 더럽고 깨끗하고 성스럽고 천하고 등 끊임없이 분별하고 차별해서 인식하고 기억하는 작용이다. 여기서 분별하고 차별하는 것이 마음의 오염된 작용이라고 하는 이유는 단순한 모양이나 성질의 차이로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모양의 차이에 그릇된 가치와 의미를 인위적으로 부여해서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생이 안다고 하는 것은 현상의 본질이나 진짜 실상을 아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붙여진 이름과 의미, 가치를 기억한다는 의미다.
4, 인식대상의 오염현색불상응염(現色不相應染)이라 한다. 삼세 가운데 현상(現相)에 해당하고 마나식의 다섯 가지 작용 가운데 세 번째인 현식에 해당한다. 이는 맑은 거울이 모양과 색깔을 드러내 비추듯이 앞에서 5가지 감각을 따라서 분별된(의식) 인식대상이 드러나는 오염(7식의 무의식으로 드러남)
四者現色不相應染 依色自在地能離故
중생계와 중생이 거주하는 자연환경, 그리고 이 두 세계를 교화하는 부처의 세계로부터 자유를 얻고 물질적 형태로부터 자유로운 색色자재의 48단계에서 오염은 사라진다.
【설명】
우주가 하나임을 알지 못하는 중생의 무지는 모든 정신적 · 물질적 현상들이 하나로 연결된 동일체임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중생은 ‘나’를 인식주관으로 삼고 ‘나’ 이외의 모든 현상을 인식대상으로 삼아서 ‘나’와 별개의 것으로 잘못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타인들은 자기와 독립되고 분리된 존재라고 잘못 생각한다. 그 결과 ‘나’만을 이익되게 하고 더 잘 살기 위해서 ‘나’가 아니라고 여기는 타인들과 환경을 함부로 해침으로써 종국에는 ‘나’를 해치고 고통에 빠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5, 인식주관의 오염능견심불상응염(能見心不相應染)이라 한다. 마나식의 다섯 가지 작용 가운데 두 번째 전식에 해당한다. 앞에서 분별되어진 인식대상에 따라서 마음이 움직이면서 그 대상을 보는 인식주관이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五者能見心不相應染 依心自在地能離故
인식주관이 발생하는 마음의 오염은 주관이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자유자재한 심心자재의 단계인 49단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49단계에서 불법을 표현한 문장, 의미, 말을 막힘없이 이해하고 바른 이치에 따라서 가르칠 수 있는 지혜를 얻어서 인식의 주관이 일어나지 못하게 된다.
【설명】
‘나’라고 하는 인식주체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생각 자체가 그릇된 오염이다. 모두가 하나이고 한마음이기 때문에 인식주관 자체가 무지의 산물이고 오염이라는 것이다.
현대물리학은 과거의 물리학이 연구자는 제외하고 연구 대상만을 연구하는 방법론적 오류를 범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연구자인 인식주체와 연구 대상인 인식대상을 별개의 독립된 존재로 취급했기 때문에 정확한 연구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는 말이다. 그들은 또 연구자인 인식주체와 연구 대상인 인식대상을 고정시켜 놓고 연구했다. 그러나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은 끊임없이 찰나적으로 생주이멸을 반복하기 때문에 현상에 대한 그들의 연구는 언제나 가설에 불과할 뿐, 진실한 실체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6, 저장식의 오염근본업불상응염(根本業不相應染)이라 한다. 마나식의 다섯 가지 작용 가운데 첫 번째인 업식에 해당한다.
六者根本業不相應染 依菩薩盡地 得入如來能離故
보살로서의 수행을 완성한 50단계에서 저장식의 오염이 점점 사라져 51단계의 평등성지와 52단계의 묘관찰지를 얻고 부처님의 지위에 들어가면 완전하게 없어진다. 따라서 인식의 주관과 객관이 완전히 사라지고 우주와 하나가 된다.
【설명】
저장식은 세세생생 쌓아온 경험과 습관을 저장하고 있는 기억의 창고다. 저장식이 오염된 것은 바로 저장된 기억들이 모두 주객의 인식작용을 통해서 경험되고 기억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현상의 본질, 실체, 실상, 진여인 순금이 아니라 분별, 관념, 개념, 심상, 편견들이 무수한 이물질이 섞인 금광석을 저장하고 있다는 말이다.
7, 오염의 정화
不了一法界義者 從信相應地觀察學斷 入淨心地隨分得離 乃至如來地能究竟離故
모두가 하나의 우주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지 못한다면 먼저 믿음의 뿌리를 얻는 수행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40단계까지 계속해서 관찰하고 배우면서 중도에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나면 41단계의 맑은 마음으로 들어가게 되고 단계적으로 무명의 오염을 제거한다. 종국에는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게 되고 마침내 무명의 뿌리를 완전하게 제거할 수 있다.
【설명】
모두가 하나고 한마음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무지가 마음이 오염되는 근본 원인이다. 그렇게 때문에 오염된 마음이라는 것은 결국 ‘나’와 ‘너’를 분별해서 ‘나’를 주체로 삼고 ‘너’를 대상으로 삼아서 집착하고 차별하는 것 자체가 더럽고 오염된 마음이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무지를 극복하고 깨닫기 위해서는 일단 모두가 하나이고 한마음이라는 사실을 먼저 믿는 것에서 출발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40단계까지 닦아서 믿음의 뿌리가 단단해지면 ‘나’와 ‘너’가 서로 다르고 별개의 존재라고 그릇된 관념의 집착을 버리게 된다. 그 결과 주객의 이원적 생각에 대한 집착의 오염이 제거되면서 41단계의 맑은 마음으로 들어가게 된다. 점차 더 깊은 마음의 무의식에 잠재된 주객의 이원적 관념을 깨뜨림으로써 더 깊은 무명의 뿌리가 제거되어 마침내 완전히 제거되면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Ⅲ 상응, 불상응, 오염의 의미
1, 상응이란
言相應義者 謂心念法異 依染淨差別 而知相緣相同故
앞의 오염된 마음의 종류에서 집착하는 오염과 집착이 연속되는 오염과 분별해서 아는 오염집상응염, 부단사응염, 분별지상응염을 가리킨다.을 상응相應이라고 말한 것은 이 세 가지 오염된 마음에는 이미 집차하고 상속하고 분별하는 주체와 집착되고, 상속하고 분별되는 대상이 분리되어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인식주체는 대상을 더럽고 깨끗한 것으로 분별하고 아견, 아만, 아애 등으로 분별된 대상을 차별한다. 즉, 주객이 1대 1로 대응하고 상호의존적으로 반응한다.
【설명】
쉽게 말해서 중생이 ‘나’와 ‘너’를 독립된 존재로 분리한 다음에 ‘나’에 대한 견해와 프라이드, 집착된 사랑을 근거로 모든 대상을 더럽고 깨끗하고 좋고 싫고 등으로 차별한다는 것이다. 자기 생각과 일치하면 좋아하고 다르면 싫어하고, 프라이드가 건들리면 분노하고 공격하고 프라이드를 만족시켜주면 좋아하고, 자기중심적 사랑과 견해로 좋다, 싫다, 더럽다, 깨끗하다, 성스럽다, 천하다 등 끊임없이 차별하고 분별하고 마음에 간직하고 집착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상태에 비추어서 보게 된다.
이를테면 자기가 슬프면 달도 슬프게 보이고, 자기가 외롭고 허전하면 구름도 외롭고 허전한 것으로 보이고, 자기가 행복하고 기쁘면 달과 구름도 행복하게 보인다. 그런 투사작용을 더 발전시켜서 아예 깨끗하고 소박한 백합의 이미지, 화려하고 정열적인 장미의 이미지와 온갖 꽃말들을 만들어 내고 수많은 관념과 개념들을 만들어서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래서 똑같은 신을 믿으면서도 마음이 평화롭고 지혜로운 사람은 신의 이름으로 이웃을 위해서 말없이 봉사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반면에, 내면에 어리석음과 분노가 가득한 사람은 신의 이름으로 이웃을 공격하고 파괴한다.
2, 불상응이란
不相應義者 謂卽心不覺 常無別異 不同知相緣相故
한편 인식대상의 오염, 저장식의 오염을 불상응이라고 하는 의미현색불상응염, 능견심불상응염, 근본업불상응염을 가리킨다.는 이 세 가지 오염된 마음에는 아직 인식과 주체와 인식대상이 상대적인 의존관계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즉 이 단계에서의 오염은 깨닫지 못한 무지에 의해 오염된 마음이다. 따라서 주객이 일치하지 않는다.
【설명】
저장식은 완전한 무의식의 상태에 있을 뿐만 아니라 또 주객으로 분리하는 이원적 인지작용 구조가 잠재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상태다. 즉 아직 작동되지 않고 있는 디스켓이나 CD에 들어있는 프로그램에 비유될 수 있다. 그러므로 주객의 이원화의 오염이 잠재적 상태에 있다. 인식주체의 오염은 저장식의 프로그램이 작동되면서 마나식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여 생겨난 자의식이다. 그러면 그 자의식을 바탕으로 다시 인식대상이 선택되고 변별되는 과정이 일어난다. 이 세 가지 작용오염은 아직 완전한 주객의 이원화가 완성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인식의 주체와 객체 사이에 정확하게 1대 1의 대응을 보이지 않고 따라서 상호의존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3, 오염된 마음이란
又染心義者 名爲煩惱礙 能障眞如根本智故 無明義者 名爲智礙 能障世間自然業智故 此義云何 以依染心 能見能現 妄取境界 違平等性故 以一切法常靜 無有起相 無明不覺 妄與法違 故不能得隨順世間一切 境界種種知故
염심은 오염된 마음을 의미한다. 오염된 마음은 감정과 정서적 장애를 뜻한다. 왜냐하면 온 우주가 하나라는 진리를 깨닫는 지혜를 막기 때문이다. 무명이라는 의미는 인지 장애로서 세간의 있는 그대로의 순리를 아는 지혜, 즉 절대적 · 독립적 존재가 아니라 상호의존적 존재라는 사실을 아는 지혜를 막기 때문이다. 이는 주객을 분리하는 오염된 마음으로 보고 드러내고 집착해서 평등성을 어기기 때문이다. 또 우주 일체는 주객이 없기 때문에 차별이 없는데 어리석어서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모두가 하나임을 알지 못하고 주객의 이원적 사고가 진실을 그릇되고 왜곡하여 현상계에서 일어나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적 흐름과 순리를 따르는 지혜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설명】
우리는 날마다 접하는 대상이나 정보를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그릇된 관념과 생각에 비추어서 좋고 싫음, 더럽고 깨끗함, 귀하고 천함 등 이원적 구조로 받아들인다. 그리고는 분노하고 미워하고 공격하고 사랑하는 감정과 행위를 드러낸다. 그런데 실상은 대상 자체가 더럽고 깨끗하고, 좋고 싫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오염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음이 오염되었다는 말은 주객 분리의 이원적 사고에 젖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반대로 마음이 맑고 깨끗하다는 것은 ‘나’와 ‘너’를 차별하지 않고 절대평등하고 동등하게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 마음이 고요하다는 것은 마음이 절대평등하고 동등하기 때문에 자기관념과 가치, 신념에 비추어서 상대를 평가하는 좋고 싫은 감정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Ⅳ 오염된 마음의 생멸작용
1, 의식적 생멸작용
復次分別生滅相者有二種 云何爲二 一者麤 與心相應故
오염된 마음의 생멸작용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의식적 작용이다. 주객이 1대 1로 대응하고 상호의존적으로 반응한다. 이는 인식의 주체가 인식의 대상을 분별하고 계산하고 집착해서 이름을 붙이는 마음작용이다. 이 단계에서는 대상의 모양과 형태가 생멸한다.
【설명】
자아가 가지고 있는 관념, 신념, 가치, 개염에 따라서 동일한 대상이 싫고 좋고, 더럽고 깨끗한 것으로 바뀐다. 그래서 신을 믿지 않다가 믿으면 신의 존재가 없다가 생겨나고, 신을 믿다가 믿지 않으면 있다가 없어진다. 똑같은 사람이 사랑할 때는 예쁘다가 사랑하지 않으면 미워진다. 마음이 편안할 때는 하늘의 뭉게구름이 평화롭게 보이다가 마음이 외로우면 외롭게 보인다. 다시 말해서 인식주체의 생각과 관념, 신념에 따라서 존재하지 않던 인식대상이 생겨나기도 하고 존재하던 인식대상이 소멸되기도 한다.
2, 무의식적 생멸작용
二子細 與心不相應故 又麤中之麤 凡夫境界 麤中之細 及細中之麤 菩薩境界 細中之細 是佛境界
둘째는 무의식적 작용이다. 주객이 상호의존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즉 인식의 주체와 인식대상이 1대 1로 대응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생멸하는 모양과 형태가 없다. 생멸작용이 무의식적 흐름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연속적인 생멸이라고 말한다. 6가지 오염된 마음 가운데, 고락에 머물러서 명칭과 이름에 따라서 집착을 일으키는 집착의 오염과 일어난 집착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는 연속의 오염은 범부 수준에서 아는 경지다. 그런데 인식대상을 아만, 아애, 아치, 아견에 근거해서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으로 분별해서 아는 오염은 마나식의 작용이라 범부가 알지 못한다.
5가지 감각을 따라서 의식에 의해 분별되어 드러나는 인식대상의 오염과 그 인식대상을 받아들이는 인식주관의 오염은 보살 수준에서 알 수 있는 경지다. 저장식의 오염은 오직 부처님의 경지에서만 알 수 있다.
【설명】
중생은 차갑고 뜨겁고, 달고 쓰고, 예쁘고 못생기고 등 감각기관의 오염 작용과 좋고 싫고, 행복하고 슬프고 등 정서수준에서의 오염 작용인 의식적 작용은 알아차릴 수가 있다. 그러나 자아에 대한 그릇된 견해, 프라이드, 집착, 어리석음을 바탕으로 일어나는 관념, 개념, 신념 등에 의해서 만들어진 심상인 신, 알라, 부처 등을 좋아하고 싫어하고 차별하는 무의식적 작용의 오염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적어도 마음 수행을 하고 어느 정도 깊이의 정신적 수준에 도달한 사람만이 자각이 가능하다. 아득한 과거부터 쌓아온 습관, 기억, 경험이 마음의 깊은 심층에 영향을 미치고, 또 절대 고요하고 맑은 마음에 무지의 바람을 일으켜서 온갖 그릇되고 차별하는 사고, 관념, 신념을 일으키는 최초의 무지, 즉 오염의 근원은 부처님의 경지에서만 깨달을 수 있다.
그러니까 개인의 정신 수준은 얼마나 자기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느냐에 달려 있다. 깨달음의 정도 역시 자기 마음의 깊이를 보는 정도에 달려 있다. 자기가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을 자각하는 정도는 중생의 정신 수준의 차이다.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게 된 근본 뿌리를 알고 자각하는 정도에 따라서 보살과 부처의 경지가 정해진다. 부처는 밑바닥까지 철저히 알고 보살은 중간뿌리까지 아는 경지라 할 수 있다.
3. 마음이 생멸하는 이유
此二種生滅 依於無明熏習而有 所謂依因依緣 依因者 不覺義故 依緣者 妄作境界義故 若因滅 則緣滅 因滅故 不相應心滅 緣滅故 相應心滅 問曰 若心滅者 云何相續 若相續者 云何說究竟滅 答曰 所言滅者 唯心相滅 非心體滅 如風依水而有動相 若水滅者則風相斷絶 無所依止 以水不滅 風相相續 唯風滅故 動相隨滅 非是水滅 無明亦爾 依心體而動 若心體滅 則衆生斷絶 無所依止 以體不滅 心得相續 唯癡滅故 心相隨滅 非心智滅
오염된 마음의 의식적 · 무의식적 생멸작용은 무명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소위 인연因緣에 의한 것이다. 원인에 해당하는 인因은 깨닫지 못함, 즉 무지를 가리킨다. 조건에 해당하는 연緣은 인식대상을 왜곡하고 심상과 같은 허상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원인이 없어지면 조건도 없어진다. 그러므로 원인인 무명이 소멸되면 무명으로 인해서 발생되는 저장식의 오염과 인식주체의 오염과 인식대상의 오염이 멸하게 된다. 또 조건에 해당하는 심상이 소멸되면 인식대상을 분별해서 집착하는 마음도 자연히 소멸된다.
그런데 만약에 깨달음을 이루어서 마음이 소멸해 버린다면 마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연속되지 않는데 어떻게 기억 작용이 가능한가? 만일 깨달음 후에도 마음이 소멸하지 않고 이어진다면 어떻게 마음이 영구히 소멸해 버린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마음이 소멸된다는 것은 그릇된 생각이 만들어낸 마음의 이미지인 허상, 즉 심상이 사라지는 것이지 마음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바람은 호수의 물을 근거로 움직이는 모양인 물결을 만들기 때문에, 만약 호수의 물이 없어지면 바람도 물결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물이 있기 때문에 물결에 의해서 바람의 모양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호수의 물이 없어져야 물결이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사라지면 움직이는 모양인 물결도 자연히 소멸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마찬가지로 무명도 마음의 본체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만약 마음 자체가 소멸하면 중생의 존재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마음 자체가 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은 계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오직 무명만이 소멸되기 때문에 무명에 의해서 일어난 그릇된 생각과 관념들이 소멸되고, 또 그릇된 생각과 관념이 만들어 낸 허상이 따라서 소멸하는 것이다. 마음 자체의 지혜 작용은 멸하지 않는다.
【설명】
위에서 무지를 제거하면 무지로 인해서 발생한 그릇된 관념, 신념도 소멸되기 때문에 관념과 신념이 만들어낸 허상, 즉 토끼 뿔이나 거북이 털과 같이 이름으로만 존재하는 심상들도 자동적으로 소멸된다. 그렇게 되면 이름뿐인 관념과 신념에 집착해서 서로 미워하고 경계하고 싸우는 행위도 자동적으로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가끔 깨달음을 혼동해서 깨달은 사람은 감정도 생각도 기억도 없는 것으로 잘못 생각한다. 왜냐하면 깨달음은 그릇된 생각과 관념, 신념, 편견 등으로 가득 찬 마음의 쓰레기를 제거해 버린 것인데 마음 자체가 없어진 것으로 잘못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마음의 오염을 제거하는 것이 깨달음이지 마음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때문에 깨달은 마음의 상태를 텅 빈 허공에 비유해서 어떤 것이 마음 안에 들어와도 밀어내거나 부딪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 깨달은 마음은 크고 맑은 거울로서 어떤 것이든 거부하지 않고 왜곡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를 비추어준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번에는 어떤 사람들은 마음을 공空에 비유한 것을 가리켜서 마음이 아무것도 없는 빈 것이라고 잘못 생각한다. 그러나 마음이 공空해졌다는 것은 마음의 형태적 측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허공처럼 걸림이 없이 무한히 받아들이고 또 있는 그대로를 수용한다는 마음의 작용적 측면을 비유한 것이다.
왜냐하면 깨달은 마음은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편견이 없으므로, 싫다고 거부하고 밀어내거나 좋다고 잡아당기고 붙잡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착하고 혐오하는 데서 비롯되는 고통도 없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고통의 근본 원인이 깨닫지 못한 무명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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