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속의 대화

도 닦기와 복 닦기

혜주 慧柱 2018. 6. 6. 08:41

월호 스님이 전하는 행복론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정작 행복해 지려면 어떻게 하느냐하는 물음에는 대답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기 월호 스님이 행복하게 사는 길을 제시하시니 우리~~, 같이 그 말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함께 알아봅시다.

행복해지려면 우선 복 닦기와 도 닦기를 해야 한답니다.

이를 거치지 않으면서 행복하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군요.

자 이제부터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일시적인 행복은 느낄 수는 있습니다.

가령 의지할 만한 멘토mentor가 좋은 얘기를 전한다거나, 좋은 책을 보거나,

좋은 음악을 듣거나 할 때, 마음이 편안해지며 그 순간 행복해 지는데,

이는 오래 가지는 못하고 곧 잊어버리는 것이어서 일회용 밴드식 처방이라 근원적인 처방은 아니라는 것이죠.

이는 우리 모두가 다 공감하고 느끼며 알고 있고 있는 것 아닌가요?

 

법구경에는 행복으로 가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첫 번째가 천상으로 가는 길이고, 두 번째가 해탈로 가는 길이다.”라고 했습니다.

행복하게 살다가 죽어서 천상 세계에 가려면 복을 닦아야 하고, 해탈하려면 도를 닦아야 합니다.

이 길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고 유일한 길입니다.

이 외는 일시적인 행복감을 느끼게 할 뿐입니다.

술을 마시면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을 수도 있지만, 깨고 나면 아이고 머리야.’할 것이고,

또 나쁜 물질을 취했을 때는 세상이 다 아름답게 보일지라도 깨고 나면 더 허탈해져서 다시 찾게 되고

그러는 사이에 결국은 몸과 재물은 피폐해져서 패가망신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근원적 처방은 도 닦기와 복 닦기밖에 없다는 것이죠.

방법론으로는 도 닦기는 관찰이고, 복 닦기는 보시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뜻은 모든 중생들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모든 중생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길을 떠나라,

나도 그러하리라.”하고 전도 선언을 하셨으니, 우리들은 그냥 행복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도 우리를 대신하여 행복하게 해 주시질 못합니다.

부처님도 하느님도 신들도 우리를 대신해서 행복해 줄 수 없다는 것이죠.

해서 전도 선언은 하셨지만 우리의 행복은 우리가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부처님은 다만 행복해지는 길을 가르쳐 주셨을 뿐이라는 것을 잊지를 말아야합니다.

 

천상에 가고 싶으면 복을 닦고, 복을 닦으려면 보시하면 됩니다.

보시하는 것이 복 닦는 가장 근본적인 행위이지요.(가진 만큼 베풀고 아는 만큼 전하자.)

그 다음 해탈하려면 도를 닦으라고 합니다.

산중 스님이나 하는 것이지 우리가 무슨 도를~~.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미루며 또 굉장히 어렵게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관찰만 하면 도 닦는 것입니다. 관찰하는 것이 마음 닦는 것이니까요.

금강경金剛經에서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

화엄경華嚴經에서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바로 관, 이 마음 닦는 것이지요.

 

해서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라고 생각한 그에게 별명을 붙입니다. 별명은 아무거나 좋습니다.

자신이 선호하는 것이면 뭐든지 되겠지요. 예를 들어 대장이라든지 짱구라든지, 등등.

화가 나면, 짱구가 화를 내려고 하는구나. 짱구가 운동을 하려고 하는구나.

이런 식으로 자기라 하는 그를 객관화해서 관찰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별명대신 육근의 무더기라는 말을 붙이는 것도 좋습니다.

육근六根이란 눈, , , , , , 여섯 가지 근본적인 기관을 말합니다.

우리가 라고 생각하는 그는 눈, , , , , 뜻이 모여서 형성된 것이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화가 나거나 욕심이 생기면 육근의 무더기가 화를 내는구나.

욕심을 부리는 것도 육근의 무더기이지 내가 욕심을 부리는 것이 아니다.’하고 관찰하는 것입니다. 훨씬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어떤 분은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이 강했습니다.

아버지가 너무 엄해서 어렸을 때부터 위축되어 있었는데, 결혼하고 나서도 계속 두려움에 떠는 마음이 남아 있었습니다.

트라우마는 그냥 놔둔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잠복해 있다가 때가 되면 나타납니다.

그리고 죽을 때 가지고 갑니다. 그러니까 살아 있을 때 이것을 치유해야 합니다.

어떤 드라마에서 , 떨고 있니?’ 그러잖아요. 이러면 절대 극복할 수 없습니다. 육근의 무더기가 떨고 있니?”이래야 합니다.

라고 하지 말고 별명을 붙여서 아무개가 떨고 있구나, 육근의 무더기가 떨고 있구나.’하고 연습해야 합니다.

럼 아버지에 대해 떨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육근의 무더기가 떨고 있는 것이 되고,

나는 육근의 무더기가 떨고 있는 것을 관찰하는 입장이 되는 것이죠. 이래야 트라우마는 치유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려 입장이 바뀌어 객관화하니까 다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관화되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다룰 수 없습니다.


트라우마를 없애고 근원 치유를 하려면 삼세의 인과를 알아야 하는데,

삼세의 인과는, 즉 객관화하는 지혜는 바로 관찰이라는 수행을 통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업! 삼세인과에 의해서 어차피 이 땅에 온 이상,

기왕이면 나의 삶을 행복하게 살다 즐거이 가려면 복 닦기와 도 닦기를 해야 하는 것이죠.

이것이 행복한 불교의 키워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