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空의 사상思想
공空의 의의意義
(1), 어원적 의미
1), 공空은 산스크리트어로 「쑤냐타Sūnyatā」이다.
쑤냐타는 “없는, 공허한”의 뜻인 어간 “쑤냐Sūnya”와 여기에 성질을 나타내는 분사형 어미 “타taā”가 결합된 것이다.
그래서 쑤냐타는 공空이라 번역되고 있다.
어원대로 번역하면 “공성空性”이라고 해야 하지만 보통 우리는 “공空”이라는 한 글자로 사용되고 있다.
쑤냐는 원래 “부풀다.”의 뜻인 어간 “svi”에서 나왔기 때문에 “쑤냐”는 “부풀어 오른 것과 관계된 것”을 뜻한다고 생각된다.
“부풀어 오른 머리는 비어있는 머리”라는 속담처럼 밖으로 부풀어 올랐거나 팽창된 무엇은 보통 안에는 비어 있거나 공허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쑤냐타는 밖으로는 진짜이고 실제적인 것처럼 나타나는 현상세계의 사물일지라도 사실상 내부는 보잘 것 없으며 비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것들은 실제real가 아니며, 단지 실제인 것처럼 나타날 뿐이다.
2), 쑤냐Sūnya는 산스크리트어로 “영零이나 제로”를 의미한다.
쑤냐가 정확히 “영零”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쑤나타空는 틀림없이 “영零”의 철학을 암시하는 것이며, 공의 불교적 가르침에 대한 이와 같은 이해는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영, 그 자체는 아무것도 포함하고 있지 않는다 해도 절대적으로 비어 있거나 허무주의적인 공허함이라고 말할 수 없다.
수학적 개념이나 기호처럼 “영零”은 아주 많은 기능과 유용성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 당신에게 “영零”이란 무無, nothing인가요? 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적절한 대답을 하기 에 아주 곤란을 느낄 것이다.
영零은 아무것도 아닌 것nothing인 동시에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가능성the possibility of everything이다.
그것은 분명히 무언가 허무주의적인 공허함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나타남manifestations에 있어 필수불가결하고 역동적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쑤나타空는 완전한 무無의 의미가 아니라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음성적이며, 양성적인 측면도 함께 갖는다는 것이다.
(2), 철학적 의미
공空, Sūnyatā은 철학적으로는 어떤 종류이든지 자아自我나 자성自性을 갖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든 사물은 지속적인 실체實體나 자성自性, svabhāva이 없기 때문이다.
원래 공空이라는 사상은 근본불교시대에 정립된 것이 아니라, 연기緣起를 설명하면서 후에 저절로 정립된 것이다.
즉 일체제법은 연이생법緣已生法인데, 연기하는 이유가 일체제법에 자성自性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성이 없음無自性을 공空이라 한 것이다.
(3), 구별되어야 할 개념
1) 없음無, absence의 공空
없음의 공空은 어떤 것에 무엇인가가 결여된 것을 말하는데,
예를 들어 우리는 무심결에 ‘그 집이 비었군.’이라고 말할 때,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이 시간에 그 집에 살고 있는 것은 아무도 없다.’이다.
또 ‘이 책꽂이는 비었다.’라고 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지금 이 책꽂이에는 책이 한 권도 없다.’ 또는 ‘내가 원하는 책은 여기에 없다.’라는 것이다.
이 두 경우 집이든 책꽂이든 그 자체가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집과 책꽂이 속에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다는 의미이다.
이런 류類의 공을 없음의 공空, emptiness of absence이라고 하며, 또 외공이라고도 한다. 공은 자아自我나 자성自性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의미이다.
즉 ‘지속적인 실체가 아니다.’라는 뜻이기 때문에 없음의 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2) 없어짐斷, annihilation의 공空
없어짐의 공空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예를 들면 ‘이 땅이 비어 있다.’고 할 때,
과거에는 이 땅에 집이 있었는데, 지금은 집들이 철거되어 더 이상 집들이 없다는 것이다. 즉 집들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류類의 공空은 지난 시기 동안은 무언가 있었다가 그런 모습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즉, 존재存在로부터 비존재非存在로의 진행을 암시하고, 무언가 존재하던 것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는 개념이다.
이 없어짐의 공의 전형적인 예例가 생명체의 죽음이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말하는 공空이란 없어짐의 공空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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