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속의 대화

떠돌이

혜주 慧柱 2021. 1. 23. 21:25


晩意 

萬壑千蜂外 孤雲獨鳥還 此年居是寺 來歲向何山
風息松窓靜 香銷禪室閑 此生吾已斷 棲迹水雲間
_ 출전 『매월당시사유록』

떠돌이
_ 매월당 김시습

천봉만학 저 너머
외로운 구름새 홀로 돌아가네
금년은 이 절에서 머문다만
내년에는 어느 산으로 갈지……
바람은 자서 소나무 창문 고요하고
향불 꺼진 선실은 한가롭네
이생은 이미 내 몫이 아님이여
물 가는 곳 구름 따라 흘러가리라.

◆ 주
· 소(銷) : 꺼지다, 없어지다.
· 이단(已斷) : 이미 결단을 내리다. 즉, 떠도는 나그네로 살겠다고 이미 결심했다는 뜻이다.

◆ 해설
선자(禪子, 선수행자)의 길은 바늘 하나 꽂을 땅도 없는 가난이다.

바람이 부는 대로, 물결이 치는 개로 인연 따라 이곳저곳 떠돌면서 오직 자기를 찾는 것만이 선자가 가야 할 길이다.

바랑 하나 메고 지팡이 짚고 송락(松落)의 삿갓 쓰고 산에서 산으로 숨어 다니며 참선정진에만 몰두하는 것이 선자의 이상적인 생활이다.


어느 만큼 공부가 익으면 또한 인연 닿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잠을 깨워주는 것이 선자의 사명이다.

향기도 없는 꽃이 구태여 바람 앞에 서서 자기의 무향(無香)을 남에게 풍기는 짓을 선가(禪家)는 금하고 있다.

오직 자기 자신을 깊이깊이 닦아갈 것.

그리하여 그 향기가 누리에 저절로 퍼져 울리게 할 것.

그러나 마지막에는 그 향기의 흔적마저 지워버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