已說解釋分 次說修行信心分 是中依未入正衆生 故說修行信心
何等信心 云何修行
여기서는 아직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확고하게 굳어지지 않아서 수행을 포기하고 뒤로 물러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네 가지 믿음과 다섯 가지 실천행을 소개한다. 그리하여 믿음을 닦고 실천 수행함으로써 깨달음을 향한 길에서 물러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다. 어떤 종류의 믿음과 수행이 있는가.
Ⅰ. 4가지 믿음
略說信心有四種 云何爲四
간단히 설명하면 믿음에는 네 종류가 있다.
1, 진여에 대한 믿음
一者信根本 所謂樂念眞如法故
첫째는 만물의 근본인 진여를 믿고 늘 즐겨 생각하는 것이다.보살수행의 1~10단계 과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10단계를 성취하고 믿음이 확고해진 11단계는 앞에서 곧은 마음으로 올바른 생각을 하는 단계. 즉 직심정념(直心正念)이라고 했지만 여기서는 아직 대승에 대한 올바른 신심을 일으키지 못했으므로 올바르게 생각한다는 말 대신에 즐겨 생각한다고 한 것이다.
【설명】
여기서는 일체 만물의 공통점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일체 만물이 절대 평등하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또 인간을 포함해서 만물의 본바탕은 선하고 깨끗하고 완전하다는 것을 믿고 사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가운데 일체 만물에 내재된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즉 일체 중생은 본질적으로 절대 평등한 성품을 가지고 있지만 상황과 조건에 따라서 드러나는 모양이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더러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특수성을 특수성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중생은 무조건 다 똑같다고 믿는다. 이를테면 특정분야에서 보여주는 능력은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그 차이에 맞게 보수가 달리 지급되는 것은 정당하다.
다만 능력의 차이를 인격의 차이나 본질적 차이로 인식해서 무시하거나 존중하지 않고 차별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인격은 누구나 동등한 절대평등의 보편성에 해당하는 것이고 능력이나 소질은 사람마다 타고나는 것이 다르고 환경과 조건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에 보편성에 해당한다.
여기에서 같은 종이라도 향을 싼 종이에서는 향냄새가 나고 생선을 싼 종이에서는 비린내가 나는 이치를 활용하는 것이다. 즉 진여를 늘 생각하고 사색하면 바로 진여의 향기가 스며들고 배어나오기 때문이다.
2, 부처님의 공덕에 대한 믿음
二者信佛有無量功德 常念親近供養恭敬 發起善根 願求一切智故
둘째는 부처님에게 한량없는 공덕이 있다고 믿고 항상 부처님을 가까이 하고 공양하고 공경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내면에 있는 선한 뿌리가 싹을 내어 자라게 하고 모든 우주현상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본질적 측면을 아는 보편적 지혜를 얻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설명】
처음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공덕을 믿고 공경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경하고 따르는 것은 우리 내면에 있는 선의 씨앗에 물을 주어 자라게 하고 불선의 씨앗은 말려서 자라지 못하도록 하는 작용을 한다.
그리하여 선의 씨앗이 점차 자라서 싹트게 되면 진리를 보는 안목도 함께 자란다. 따라서 모든 중생의 마음속에도 부처님과 같은 모습이 있음을 알게 되어 그들을 차별 없이 존중하고 공경하게 된다.
3,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
三者信法有大利益 常念修行諸波羅密故
셋째는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삶에 필요한 커다란 현실적 이익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건너가는 데 필요한 모든 수행방법을 실천할 것을 늘 생각한다.
【설명】
처음 단계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면 자신의 삶이 성장하고 변화하고 발전한다는 사실을 믿고 실제로 수행하고 생활 속에서 실천한다.
그리고 수행이 점차 깊어지면 부처님뿐만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만나는 모든 중생들과 일체의 현상들이 모두 자신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인연임을 믿고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수단으로 받아들인다.
4, 수행자에 대한 믿음
四者信僧能正修行自利利他 常樂親近諸菩薩衆 求學如實行故
넷째는 스님들은 자신과 타인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올바른 수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수행자들을 즐겁고 친절하게 가까이 대하면서 그 속에서 올바른 수행을 배우려고 노력한다.
【설명】
간혹 수행하는 스님들에게서 단점을 보고 수행도 시작하기 전에 신심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거기에는 두 가지 오류가 있다. 하나는 자기 눈에 장점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 눈에도 장점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오류는 일체 중생은 반드시 선의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 각자는 자기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단점보다는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장점을 찾고 구하면서 살아가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생명의 존재본질은 자라고 성장하는 데 있다. 또 일체 만물은 제각기 서로의 성장과 변화에 도움을 주면서 살아가게 되어 있다. 이 세상에 필요 없는 존재는 하나도 없다. 더욱이 수행하는 사람들은 마음공부에 유익한 더 많은 자양분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어떤 이유에서든 그들은 수행하고자 하는 마음을 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믿고 항상 장점을 발견하고 좋은 점을 찾아서 배워야 한다.
Ⅱ 다섯 가지 실천수행
修行有五門 能成此信
云何爲五 一者施門 二者戒門 三者忍門 四者進門 五者止觀門
믿음이 있어도 실제로 그 믿음을 실천하는 수행이 없으면 믿음이 제대로 성숙하게 자라지 못한다.
그래서 수행하는 것을 포기하고 쉽게 물러날 수가 있다. 따라서 다음에는 앞에서 제시된 4가지 믿음을 올바르게 성취할 수 있도록 보시 · 지계 · 인욕 · 정진 · 지관의 5가지 수행방법을 제시한다.
1, 보시
云何修行施門 若見一切來求索者 所有財物隨力施與 以自捨慳貪 令彼歡喜 若見危難恐怖危逼 隨己堪任 施與無畏 若有衆生來求法者 隨己能解 方便爲說 不應貪求名利恭敬 唯念自利利他 廻向菩提故
너그러움을 베푸는 보시는 다음과 같이 한다. 만약 중생들이 찾아와서 청하거나 구하는 것을 보면 가지고 있는 제물을 힘닿는 대로 베풀어줌으로써 스스로 집착하고 탐내는 마음을 버린다. 그리하여 중생을 기쁘게 한다.
만약 재앙이나 공포, 위태로움, 핍박을 받는 사람을 보면 각기 상황에 맞게 두려움이 없어지도록 해 준다. 만약 중생이 와서 가르침을 구하는 이가 있으면 이런 저런 방법과 수단으로 아는 만큼 설명해 주되 명예나 이익, 공경을 탐내서는 안 되며 오직 서로 깨달음으로 나아가려는 마음으로 한다.
2, 지계
云何修行戒門 所謂不殺不盜不淫 不兩舌不惡口不妄言不綺語 遠離貪嫉欺詐諂曲瞋恚邪見 若出家者 爲折伏煩惱故 亦應遠離慣鬧 常處寂靜 修習少欲知足頭陀等行 乃至小罪 心生怖畏 慙愧改悔 不得輕於如 來所制禁戒 當護譏嫌 不令衆生妄起過罪故
계율을 지키는 수행이다.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지 않고, 남의 물건을 탐내거나 훔치지 않고, 음행하지 않으며, 이중적으로 말하지 않고, 악한 말을 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교묘하게 꾸며서 말하지 않고, 탐욕, 질투, 속임, 아첨, 분노, 그릇된 견해를 멀리 버리는 것이다.
만약 출가한 자라면 번뇌를 꺾고 통제하기 위해서 시끄러운 곳을 떠나서 항상 고요한 장소에서 욕심을 적게 내고, 작은 것에도 만족할 줄 알며, 의식주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수행하며, 작은 죄라도 마음에 두려움을 내어 부끄러워하고 회개하여야 한다. 또 여래가 만든 계율을 가벼이 여기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의 원망과 혐오를 사지 않도록 함으로써 중생으로 하여금 출가자를 비난하는 그릇된 허물을 짓지 않도록 해야 한다.
3, 인욕
云何修行忍門 所謂應忍他人之惱 心不懷報 亦當忍於利衰毁譽稱譏苦樂等法故
남이 괴롭혀도 참고 보복할 생각을 내지 않고, 이익, 손해, 비난과 명예, 칭찬과 원망과 괴로움과 즐거움 등의 8가지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들을 참고 견디는 것이다.
4, 정진
云何修行進門 所謂於諸善事 心不懈退 立志堅强 遠離怯弱 當念過去 久遠已來 虛受一切身心大苦 無有利益 是故應勤修諸功德 自利利他 速離衆苦 復次若人雖修行信心 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 爲邪魔諸鬼之所惱亂 或爲世間事務種種牽纏 或爲病苦所惱 有如是等衆多障礙 是故應當勇猛精勤 畫夜六時 禮拜諸佛 誠心懺悔 勸請隨喜 廻向菩諸 當不休廢 得免諸障 善根增長故
앞으로 나아가는 수행은 모든 선한 일에 게으름을 내거나 주저함이 없어서 마음먹은 것이 굳세고 강하여 겁이 없고 약하지 않다. 먼 과거세부터 모든 몸과 마음의 큰 고통을 헛되이 받아서 아무런 이익이 없음을 생각한다.
따라서 응당 모든 자리이타의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서 속히 고통을 떠나고자 한다. 신심을 수행할 때는 전생에서부터 중죄와 악행을 저지른 장애가 많이 있기 때문에 마구니와 여러 귀신에게 괴롭힘을 받거나 어지럽힘을 당하여 혹은 세간의 일로 마음이 이리저리 끌려 다니고 얽매이기도 하고 아니면 병으로 인해서 괴로움을 당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많은 장애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노력하고 아침 저녁 6시에 모든 부처님께 예배함으로써 모든 장애를 제거하고 악행을 성심으로 참회한다. 또 부처님의 가르침을 비방하는 장애를 막기 위해서 지극한 정성으로 가르침을 청한다.
다른 사람의 뛰어남을 질투하는 장애를 제거하기 위해서 남의 좋은 일을 보고 함께 기뻐한다. 사바세계를 애착하고 집착하는 장애를 막기 위해서 깨달음을 향해 쉬지 않고 나아감으로써 모든 장애를 벗어나서 선의 뿌리를 키운다.
5, 지관
云何修行止觀門 所言止者 謂止一切境界相 隨順奢摩他觀義故 所言觀者 謂分別因緣生滅相 隨順毗鉢舍那觀義故 云何隨順 以此二義漸漸修習 不相舍離 雙現前故
지(止)라고 하는 것은 모든 인식대상에 대한 분별을 멈추고 마음이 한곳에 집중하여 삼매에 드는 것을 의미한다. 관(觀)이라고 하는 것은 인연생멸하는 현상의 모양을 관찰하고 분별하는 위빠사나를 의미한다.
지관은 이 두 가지를 단계적으로 닦고 익혀서 지와 관이 서로 분리되지 않고 함께 일어나도록 한다.육바라밀 가운데 선정과 반야를 정 · 혜의 두 문으로 나누어서 말하는데 여기서는 선정인 정을 지(止), 반야의 혜를 관(觀)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수행을 말할 때는 지관이라 하고 수행의 결과나 수행경지를 말할 때는 정혜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지와 관을 쌍으로 닦는 수행의 과정을 말한다. 그래서 하나로 묶었다. 삼매는 의미적으로 공(空)에 해당한다. 지
(止)를 따라서 관(觀)으로 들어간다는 말은 다음과 같다: 일심으로 생멸하는 인식대상의 모습에 대한 분별망념이 중지하고 나면 분별할 대상이 없는 것을 지(止)라고 한다. 이것은 모든 현상의 본질인 진여의 공성을 체득하여 모든 번뇌가 고요해진 것이다.
이렇게 번뇌가 고요해진 한마음에 나아가서 그곳에 안주하지 않고 다시 인연으로 생멸하는 모든 모습을 분별하는 것을 관(觀)이라고 한다. 지관이 쌍으로 함께 나타난다는 의미는 눈앞에 일체 현상들을 환하게 관조하여 비추게 된다. 이것을 가리켜서 생멸하는 번뇌망상이 멈춤으로써 일체 현상이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고 말한다.[卽止之觀]-중도관. 즉, 진여문에 의해 모든 현상에 대한 무분별지를 이루고 다시 생멸문에 의하여 모든 상을 분별하여 그 인연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다.
Ⅲ 지관수행
1, 멈춤(止)수행
若修止者 住於靜處 端坐正意 不依氣息 不依形色 不依於空 不依地水火風 乃至不依見聞覺知 一切諸想隨念皆除 亦遺除想 以一切法本來無相 念念不生 念念不滅 亦不得隨心外念境界 後以心除心 心若馳散卽當攝來住於正念 是正念者 當知唯心 無外境界 卽復此心亦無自相 念念不可得 若從坐起 去來進止 有所施作 於一切時 常念方便 隨順觀察 久習淳熟 其心得住 以心住故 漸漸猛利 隨順得入眞如三昧 深伏煩惱 信心增長 速成不退 唯除疑惑 不信 誹謗 重罪業障 我慢 懈怠 如是等人所不能入
復次依是三昧故 則知法界一相 謂一切諸佛法身 與衆生身平等無二 卽名一行三昧 當知眞如是三昧根本 若人修行 漸漸能生無量三昧
만약 움직이는 마음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 수행을 한다면 고요한 곳에 머물러고요한 장소, 깨끗한 행위, 악행에 대한 참회, 의복과 먹을 것. 선지식, 일체의 현실적인 일을 멈춤. 단정히 앉아서 의식을 바르게명예와 이익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리이타를 위해서 수행한다. 해야 한다. 호흡을 의지하지 말고,수식관을 피하고 안으로 머문다. 형태나 모양에 의지하지 말며,예를 들면 백골관 등. 허공을 의지하지 말고, 지수화풍을 의하지도 말며,이는 모두 인식대상을 의지해서 하는 것이다. 보고 들어서 아는 지식에도오감각식과 제 6의식의 대상인 색성향미촉법을 말한다. 의지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일어나는 모든 생각들을 차례로 제거하되, 제거한다는마음을 고르게 머무르는 등주(等住)다. 그 생각마저도 버려야 한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심상들은 본래부터 모양이 없기 때문에 생각생각이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소멸되는 것도 아니다. 또한 마음을 따라서 일어나는 인식대상을 생각하지 않도록 마음을 조절하고조순(調順). 나서는 다시 마음으로 마음을 제거하는 것이다.마음이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에 머무른다.
마음이 만약 흩어져 나가면 곧바로 흩어진 마음을 다시 거두어 들여서 바른 생각에정념(正念) 머물게 해야 한다.최고로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 바른 생각에 머문다는 것은 모든 심상은 오직 생각이 만들어 낸 것일 뿐, 실제로 마음 바깥에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심상은 실체가 없는 허상이므로 원래 형태가 없어서 생각으로는 결코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만일 가만히 앉아서 좌선하다가 일어나서 움직이고 오가면서 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상황에 따라서 일을 하되 마음을 관찰하는 일을 중지하지 말아야 한다. 한동안 익혀서 익숙하게 되면 마음이 편안하게 머물게 된다.더욱 정진하여 효과가 드러난다. 전주일취.
마음이 편안하게 안주하면 마음이 점점 예리해져서 진여삼매를자신의 마음 안에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불성을 주시하는 삼매. 따라서 들어가게 되어, 번뇌를 깊이 다스려서 믿음이 커지고 더 이상 깨달음의 길에서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의 경지를 얻게 된다.등지(等持)
이와 같은 진여삼매에 의하여 온 우주가 하나라는 사실을 알고 모든 부처의 법신이 중생의 몸과 평등하여 둘이 아님을 안다. 이것을 일행삼매(一行三昧)라고 한다. 진여는 삼매의 근본이므로 진여삼매를 열심히 수행하면 수많은 종류의 삼매로 점점 확산될 수 있다.선정을 닦을 때에 마음을 한 군데 머물러 산란치 않게 하는 아홉 가지 지행: 1, 일체의 외부 현상으로부터 마음을 거두고 단속하여 안에다 매어 둠으로써 마음이 밖으로 산란하지 않게 하는 것. 즉 내면에 머물게 하는 것. 2, 안으로 머물게 한 마음이 거칠게 움직이기 때문에 아직 일정하게 머무르게 하기 위해서 서로 연결하고 맑고 깨끗하게 하여 부드럽게 일정하게 머물도록 만든다. 3, 내면에 일정하게 머무는 마음을 놓쳐서 밖으로 산란해 진 마음을 다시 거두어 단속해서 안으로 편안하게 머물도록 한다. 4, 이와 같이 반복함으로써 그 마음을 안으로 머물게 하여 마음이 멀리 밖에 머무르지 않고 내면 가까이에 머물도록 한다. 5, 색성향미촉, 탐진치 삼독, 색욕 등이 마음을 흐트러지게 한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근심거리로 생각하고 그 생각하는 힘을 키워서 마음을 꺾어 흐트러지지 않게 하여 조절하고 따르도록 한다. 6, 좋아하는 것을 원하고 분노하고 해롭게 하는 것과 탐욕 등 여러 가지 번뇌가 마음을 요동치게 하기 때문에 이들을 경계해서 그 힘으로 마음을 흐트러지지 않게 하여 고요하고 평온하게 머무르는 것이다. 7, 앞의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을 놓쳐서 욕구와 분노와 해치는 마음 등 여러 가지 번뇌가 일어나더라고 거기에 반응하지 않고 반조함으로써 최고의 고요함과 평온에 머무는 것이다. 8, 더욱 힘써 수행하고 수행의 효과로 말미암아 부족함이 없고 삼매가 멈추지 않고 이어져서 머무르는 것이다. 늘 닦고 익힌 인연으로 더욱 힘써 수행하거나 그 수행의 결과도 따로 없어서 자연히 도에 들어가게 됨을 말한다. 이와 같이 삼매를 얻은 사람은 다시 삼매를 의지해서 마음을 일깨워 인식현상으로 향하게 하는 네 가지 마음작용을 거쳐서 위빠사나를 닦고 익힌다. 1, 청정한 행위와 연합된 대상과 선한 방편으로 연합된 대상과 청정한 계율로 연합된 대상에 대하여 일체의 시간적 공간적 존재를 바르게 생각하고 분별한다. -후득지. 2, 분별된 인식대상에 대하여 진여를 지극히 바르게 생각한다. -무분별지. 3, 인식대상에 대해서 바른 지혜를 함께 갖추어 명칭, 뜻, 자성, 차별을 전체적으로 분별하여 형상을 취하는 것이다. 4, 그렇게 해서 취한 인식대상을 자세히 더욱 세밀하게 찾아서 조시하는 것이다.
2, 수행과정에서 일어나는 장애
或有衆生無善根力 則爲諸魔外道鬼神之所惑亂 若於坐中現形恐怖 或現端正男女等相 當念唯心 境界則滅 終不爲惱
或現天像 菩薩像 亦作如來像 相好具足 或說陀羅尼 或說布施持戒 忍辱精進禪定智慧 或說平等空無相無願 無怨無親 無因無果 畢竟空寂 是眞涅槃 或令人知宿命過去之事 亦知未來之事 得他心智 辯才無礙 能令衆生貪著世間名利之事 又令使人數瞋數喜 性無常準 或多慈愛 多睡多病 其心懈怠 或卒起精進 後便休廢 生於不信 多疑多慮 或捨本勝行 更修雜業 若著世事種種牽纏 亦能使人得諸三昧少分相似 皆是外道所得 非眞三昧 或復令人若一日若二日若三日乃至七日住於定中 得自然香美飮食 身心適悅 不飢不渴 使人愛著 或亦令人食無分齊 乍多乍少 顔色燮異 以是義故 行者常應智慧觀察 勿令此心墮於邪網 當勤正念 不取部著 則能遠離是諸業障 應地外道所有三昧 皆不離見愛我慢之心 貪著世間名利恭敬故 眞如三昧者 不住見相 不住得相 乃至出定 亦無懈慢 所有煩惱 漸漸微薄 若諸凡夫不習此三昧法 得入如來種性 無有是處 以修世間諸禪三昧 多起味著 依於我見 繫屬三界與外道共 若離善知識所護 則起外道見故
만일 중행이 선근의 힘이 없으면 마음공부를 방해하는 마구니와 외도와 귀신들에 의하여 어지럽힘을 받고 사도에 떨어지게 된다. 좌선을 하고 있는 도중에도 어떤 형체를 보고 공포를 일으키거나 혹은 단정한 남녀 등의 모습을 보고 애욕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러한 경우에는 그 모든 것이 오직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때로는 천상의 보살이나 여래의 형상을 하기 때문에 아주 잘 생기고 원만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다라니를 설하기도 하고, 보시 · 지계 · 인욕 · 정진 · 선정 · 지혜를 설하기도 하고, 혹은 평등하고 공하며 무상하고, 바라는 것이 없고, 원한이 없으면, 친함이 없고, 원인도 없고 결과도 없어서, 궁극에는 비어있고 적막한 것이 참된 열반이라고 설하기도 한다.
혹은 숙명통으로 과거와 미래의 일을 알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얻기도 하고 말에 막힘이 없는 능력으로 중생들로 하여금 세간의 명예나 이익 되는 일에 탐착하게 만들기도 한다. 또 자주 성내고 자주 기뻐하게 하여 일관성이 없는 변덕스러운 성격으로 만들기도 한다.
때로는 지나치게 다정다감하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잠이 쏟아지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몸이 자주 아파서 마음이 늘어지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갑자기 열심히 정진을 하다가 금방 팽개쳐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이와 같이 하여 사람들에게 불신을 불러 일으켜서 의심하고 염려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또 본래 하던 훌륭한 행동을 저버리고 다시 쓸데없는 일에 매달리게 하며 세상일에 집착하여 갖가지로 얽매이게 한다. 또 표면적으로 비슷한 삼매를 경험하도록 하지만 그것은 모두 외도들의 삼매일 뿐 참다운 삼매가 아니다. 또 사람들에게 하루, 이틀, 사흘 내지 이레를 정(定)에 머물게 하여, 향기롭고 맛좋은 음식을 먹은 듯이 몸과 마음이 쾌적하고 배고픔도 목마름도 잊어버리는 경험을 하게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 경험에 애착하게 만든다.
혹은 무절제한 식욕으로 말미암아 안색이 변할 정도로 갑자기 많이 먹거나 갑자기 적게 먹도록 만든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사람은 자신의 수행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항상 지혜로써 관찰하여 마음이 삿된 그물에 떨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또 올바른 생각을 가지도록 노력함으로써 그릇된 집착을 버려야 한다. 그렇게 하면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장애를 멀리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외도의 삼매는 모두 아견, 아애, 아만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고 세간의 명예와 이익, 그리고 공경을 받으려는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다.
진여삼매란 주관도 잊고 객관도 잊었을 뿐만 아니라 삼매의 상태에서 벗어났을 때에도 게으름이 없이 계속 정진함으로써 번뇌가 점점 엷어지게 된다. 모든 범부가 이 삼매법을 익히지 않고는 깨달음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세상 사람들이 선을 하여 삼매에 든다고 하는 것은 대부분이 신비한 효과에 맛을 들여서 거기에 집착한다. 또 아견에 의해 세상일에 얽매이고 선지식의 보호와 도움을 떠나면 외도들의 삼매와 다를 바가 없다.
3, 삼매를 닦음으로써 얻어지는 이익
復次精勤專心修學此三昧者 現世當得十種利益 云何爲十 一者常爲十方諸佛菩薩之所護念 二者不爲諸魔惡鬼所能恐怖 三者不爲九十五種 外道鬼神之所惑亂 四者遠離誹謗甚深之法 重罪業障漸漸微薄 五者滅一切疑諸惡覺觀 六者於如來境界信得增長 七者遠離憂悔 於生死中勇猛不怯 八者其心柔和 捨於憍慢 不爲他人所惱 九者雖未得定 於一切時一切境界處 則能減損煩惱 不樂世間 十者若得三昧 不爲外緣一切音聲之所驚動
진여삼매를 전심전력을 닦아서 배우는 사람은 현세에서 열 가지 이익을 얻게 된다.
첫째는 항상 사방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이 보호하고 염려한다.
둘째는 모든 마구니와 악귀에 의하여 두려움을 받지 않는다.
셋째는 아흔다섯 가지 외도와 귀신들에게 미혹되거나 어지럽힘을 받지 않는다.
넷째는 깊고 미묘한 불법에 대한 비방을 떠남으로써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점점 사라진다.
다섯째는 모든 의심과 크고 작은 나쁜 생각이 없어진다.
여섯째는 여래와 여래의 경지에 대한 믿음이 커진다.
일곱째는 근심과 후회가 없어지고 사는 일이나 죽는 일에 용감해져서 두려움이 없다.
여덟째는 마음이 부드럽고 온화하여 교만하지 않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괴롭힘을 받지 않는다.
아홉째는 아직 삼매에 이르지 않은 경우에도 언제 어디서든지 인식대상에 대한 번뇌를 줄일 수 있고 세상살이에 탐닉하지 않는다.
열째는 삼매를 얻으면 외부에서 오는 모든 말과 소리에 놀라거나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된다.
4, 위빠사나 수행
復次若人唯修於止 則心沈沒 或起懈怠 不樂衆善 遠離大悲 是故修觀 修習觀者 當觀一切世間有爲之法 無得久停 須臾變壞 一切心行 念念生滅 以是故苦 應觀過去所念諸法 恍惚如夢 應觀現在所念諸法 猶如電光 應觀未來所念諸法 猶如於雲忽爾而起 應觀世間一切有身 悉皆不淨 種種穢汗 無一可樂 如是當念一切衆生 從無始世來 皆因無明所熏習故 令心生滅 已受一切身心大苦 現在卽有無逼迫 未來所苦亦無分齊 難捨難離 而不覺知 衆生如是 甚爲可愍 作此思惟 卽應勇猛立大誓願 願令我心離分別故 徧於十方修行一切諸善功德 盡其未來 以無量方便救拔一切苦惱衆生 令得涅槃第一義樂 以起如是願故 於一切時一切處 所有衆善 隨己堪能 不捨修學 心無懈怠
사람이 오직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멈추고 삼매에 들어가는 것만을 닦으면, 마음이 가라앉거나 나태해지고 선행을 즐기지 않게 되고 대비심을 잃게 되기 때문에 관(觀)을 닦는 것이다.
관을 닦아 익히는 사람은 당연히 모든 세간의 인연과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현상이 항상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변하고 인연이 다하면 사라진다는 사실을 보아야 한다.
또 마음이 일어나는 모든 감각, 감정, 사고, 기억 작용은 결국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면서 생멸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고통임을 관찰해야 한다.
과거의 기억과 생각이 만들어 낸 모든 심상은 황홀한 꿈과 같다는 사실을 관찰하고 현재의 생각이 만들어 낸 모든 심상은 번개와 같다고 관찰하고, 미래에 대한 상상과 생각이 만들어 낸 모든 심상은 마치 구름이 홀연히 일어나는 것과 같다고 관찰해야 한다.
한편 세간에 모양과 형태를 가지고 있는 모든 감각대상들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거나 코로 냄새를 맡거나 혀로 맛을 보거나 몸으로 감촉이 가능한 실체로 외부에 존재하는 것들. 역시 있는 그대로의 본질적이고 객관적인 모습이 아니라, 보는 관점과 관념, 생각, 감정, 기억 등의 영향으로 오염되었기 때문에 그 역시 실상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표상일심상은 생각이 만들어 낸 모양이기 때문에 생각이 일어나는 중생의 마음 안에만 존재할 뿐 마음 바깥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표상은 실제로 마음 바깥에 존재하는 사물들이다. 그러나 중생의 관념과 편견, 기억, 감정 등의 영향으로 오염되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인 실상이 왜곡된 것을 표상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관세음보살, 신, 천사 등은 생각하는 마음이 만들어낸 심상이지만 달라이 라마, 구름, 비 등은 실제로 존재하지만 그러나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즉, 구름의 본질적 모습과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모습은 일치하지 않는다.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서 똑같은 구름이 슬프기도 학로 아름답기도 하다. 달라이 라마 역시 어떤 이에게는 위대한 성자, 보살이고 어떤 이에게는 그냥 평범한 중생이기도 하다. 여기서 슬프고 아름다운 구름의 모양이나 성자와 중생으로서 달라이 라마의 모양은 다 각자의 생각과 관념이 작용해서 실상이 왜곡된 표상인 것이다. 뿐이다.
그러므로 관념과 편견으로 왜곡된 표상을 보고 좋아하고 싫어하고 집착하면서 즐거워하고 고통할 것이 못 된다는 사실을 관찰해야 한다.
모든 중생이 시작을 알 수 없는 아득한 전생부터 무지가 몸과 마음에 스며들고 익혀져서 갖가지 감정과 생각과 기억이 순간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면서, 과거에도 몸과 마음의 고통을 받았고 현재에도 엄청난 고통과 궁색함을 겪고 있으며 미래에 받게 될 고통도 끝이 없다.
그러면서도 그와 같은 괴로움의 굴레를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중생들을 늘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만일 그와 같이 사유한다면 과감하고 용기있게 대서원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즉 ‘나’와 ‘너’를 분별하고 차별해서 ‘나’만 생각하는 마음을 버리고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하나라는 믿음을 가지고 모든 선행을 하고 갖가지 방법과 수단으로 세세생생 고통하는 중생을 구원하여 그들에게 깨달음의 즐거움을 얻도록 원을 세우는 것이다. 그리하여 순간순간 머무르는 때와 장소마다 수많은 선행들을 닦고 익힌다.
Ⅳ 선과 위빠사나 수행의 관계
1, 선과 위빠사나의 병행
唯除坐時專念於止 若餘一切 悉當觀察應作不應作
若行若住 若臥若起 皆應止觀俱行 所謂雖念諸法自性不生 而復卽念因緣和合 善惡之業 苦樂等報 不失不壞 雖念因緣善惡業報 而亦卽念性不可得
좌선을 하기 위해서 앉았을 때는 모든 감각, 감정, 생각, 기억 등의 마음작용을 쉬고 멈추는 수행에 몰두하고, 좌선을 하지 않는 나머지 시간이나 일을 할 때는 항상 일어나는 모든 마음의 작용들을 세밀하게 살피고 관찰해야 한다.좌선하고 앉을 때에는 마음 작용이 멈추는 것을 수행하고[止] 그 밖에 움직이고 활동할 때는 마음 작용이 일어나고 있는 상태 자체를 세밀하게 관찰하는 수행을 관[觀] 한다는 의미다.
행동하거나 머물러 있거나 눕거나 일어나거나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반드시 움직이는 마음을 멈추는 수행과 움직이는 마음의 과정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수행을 함께 병행해서 훈련해야 한다. 비록 중생이 모든 정신적 · 물질적 현상을 다섯 가지 감각기관과 감정, 사고, 기억 등의 작용을 통해서 인식하고 사유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신적 · 물질적 현상의 본질이나 실상이 그와 같은 인식작용을 통해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움직이는 마음작용의 멈춤을 수행.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이 원인과 조건이 서로 상호작용한 인연다섯 가지 감각기관과 감정, 사고, 기억의 6가지 인식주관은 원인과 조건에서 원인[因]에 해당하고 모양, 소리, 냄새, 맛, 촉감, 의미의 6가지 인식대상은 조건[緣]에 해당한다. 원인과 조건의 상호작용을 인연이라고 한다.으로 생겨난 선행과 악행의 결과로 받게 되는 과보는 결코 없어지지 않고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움직이는 마음 작용 상태를 세밀하게 관찰하는 수행.
또 한편으로는 원인인 인식주관과 조건인 인시대상이 상호작용하는 인연으로 생겨난 악행과 선행의 결과를 생각하면서도,움직이는 마음 작용 상태를 세밀하게 관찰하는 수행-여실불공의 지혜로 발전 동시에 그것의 본질과 실상은 결코 얻을 수 없다.움직이는 마음 작용을 멈추는 수행-여실공의 지혜로 발전
2, 선과 위빠사나의 상호의존성
若修止者 對治凡夫住著世間 能捨二乘怯弱之見 若修觀者 對治二乘 不起大悲狹劣心過 遠離凡夫不修善根 以此義故 是止觀二門共相助成 不相捨離 若止觀不具 則無能入菩堤之道
만일 마음이 움직이는 작용을 멈추는 선수행무념무상의 수행, 즉 생각하는 마음 작용과 생각이 만들어낸 심상과 표상을 제거하는 훈련, 무분별의 지혜, 여실공의 지혜, 평등연, 자수용신, 본각지, 진여로 발전.을 하면 세속을 탐하고 집착하는 범부는 세속의 무상함을 깨달아서 세속에 대한 집착과 탐욕을 버리게 되고.범부의 아집과 범집을 제거함. 세속의 생사윤회를 두려워하는 성문 · 연각은 생멸하는 현상의색수상행식의 오온으로 이루어진 중생의 몸과 마음이 생멸하는 것을 두려워함. 본 성품이 불생불멸하는 진여임을 알아서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만일 마음이 움직이는 작용상태를 세밀하게 관찰하는 위빠사나 수행을진여법신의 불가사의한 공덕의 지혜, 차별연, 타수용신, 진여의 작용으로 발전. 하면 자신의 깨달음만을 위해서 수행하는 성문 · 연각이 생사에 고통하는 중생을 향해 대비심을 일으켜서, 좁은 마음을 없애고 중생의 이익을 위해서 깨달음을 구하는 보살의 마음으로 발전할 수 있다. 또 선행을 닦지 않는 범부가 세간의 고통하는 중생을 보고 선행을 닦고 악행을 멈추게 된다.
이와 같이 참선과 위빠사나는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을 서로 돕고 의지하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분리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에 이 둘을 함께 병행해서 수행하지 않으면 절대로 깨달음에 들어갈 수가 없다.지관수행은 수레의 두 바퀴와 같고 새의 양 날개와 같다. -원효스님
【설명】
참선 수행은 움직이는 마음을 고요하게 멈추는 작용을 하는 반면 위빠사나 수행은 움직이는 마음의 생멸과정을 관찰하는 작용이다.
그런데 위에서 일반사람이 참선수행을 하면 세속에 대한 집착과 탐욕을 버릴 수 있게 되고, 위빠사나 수행을 하면 선행을 하지 않던 일반사람도 악한 행동을 멈추고 선행을 닦게 된다고 했다. 또 생사가 두려워서 세속을 떠나 열반을 구하는 성문 · 연각이 참선수행을 하게 되면 생사열반이 본질적으로 하나임을 알게 되어 생사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진다.
반면에 성문 · 연각이 위빠사나 수행을 하게 되면 고통하는 중생을 향한 자비심이 생겨난다. 그래서 자신만의 깨달음을 구하고자 했던 좁은 마음을 버리고 중생의 이익과 깨달음을 위해서 수행하는 보살의 마음으로 발전하게 된다.
쉽게 말하면 참선 수행은 일차적으로 자신을 이롭게 하는 수행이고, 위빠사나 수행은 일차적으로 타인을 이롭게 하는 수행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점은 지금까지 우리는 위빠사나 수행은 주로 남방불교, 즉 소승불교의 전통에서 하는 수행방법이고, 참선수행은 그야말로 보살이 중생의 깨달음과 이익을 돕기 위해서 수행하는 대승불교의 수행 전통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대승불교의 핵심과 요체를 설명하고 있는 대승기신론에서 참선 수행과 위빠사나 수행은 깨달음을 완성하기 위해서 반드시 병행해야 할 요소로 설명하고 있다. 더욱이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서 타인을 향한 선행과 보살의 자비심이 길러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나름대로 그 이유를 살펴본다면 참선수행은 요동치고 움직이는 마음, 즉 망상분별을 무조건 무념무상으로 잠재우는 데 초점을 둔다.
그러므로 위빠사나 수행처럼 망상분별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주이멸의 과정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따라서 망상분별을 일으키는 인식의 주체와 대상의 작용이나 관계성, 상호작용에 대해서 수행자가 관찰이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화두라고 하는 수단을 통해서 처음부터 인식의 주체인 ‘나’와 인식의 대상인 ‘너’를 한꺼번에 무조건 버리고 망각하고 떠남으로써 곧바로 삼매에 들어가고자 하기 때문에, 중생이면서도 중생심의 생멸현상을 세밀하게 알거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따라서 자연히 일반사람이나 성문 · 연각의 수준에 있는 사람들이 참선수행에만 몰두한다면 중생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부족하므로 중생을 향한 자비심도 상대적으로 약한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반면에 위빠사나 수행을 하게 되면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망상분별하는 마음의 현상을 세밀하게 관찰하기 때문에 자신을 포함해서 중생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깨닫게 된다.
따라서 고통하는 자신과 중생을 향한 대비심이 생겨나고, 자연히 악한 행동을 멈추고 선한 행동을 닦게 될 것이다. 또 자신에게서 일어나는 일체의 마음의 현상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관찰하는 자각능력이 커지기 때문에 저절로 나쁜 행동은 약해지고 좋은 행동은 자라게 될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차원 높은 수행의 경지로 가면 자신을 이롭게 하고 타인을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가 완전히 분리된 별개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초보적 단계에서는 어느 수행에 더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서 상당히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둘을 병행하지 않고 어느 한 쪽에만 치우친 수행으로는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Ⅴ 정토왕생
復次衆生初學是法 欲求正信 其心怯弱 以住於此娑婆世界 自畏不能 常値諸佛 親承供養 懼謂信心難可成就 意慾退者 當知如來有勝方便攝護信心 謂以專意念佛因緣 隨願得生他方佛土 常見於佛 永離惡道 如脩多羅說 若人專念西方極樂世界阿彌陀佛 所修善根廻向願求生彼世界 卽得往生 常見佛故 終無有退 若觀彼佛眞如法身 常勤修習 畢竟得生住正定故
어떤 중생은 진여법을 처음으로 배우고 바른 믿음을 얻으려고 하는 마음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움과 나약함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제대로 잘 수행하지 못해서 영원히 사바세계에 머무르게 되어 부처님을 직접 친견하고 가르침을 받들어 모시지 못할까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믿음을 얻는 것이 너무 어렵고 힘들다고 말하면서 깨닫고자 하는 의욕을 상실하고 뒤로 물러나는 중생들이 있다. 그러한 중생들은 여래께서 특별히 뛰어난 방법으로 그들의 믿음을 거두어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오로지 마음을 다해서 부처님을 생각한 인연으로 자신의 원대로 부처님의 땅에 태어나서 항상 부처님을 친히 뵙고 영원히 지옥, 아귀, 축생의 세계를 면할 수가 있다.
경전에 의하면 만일 어떤 사람이 오직 서방극락세계의 아미타불을 생각하면서 선행을 닦아서 극락에 태어나기를 간절히 원하고 구하면 곧 극락에 태어나게 된다. 그리고 극락에서는 늘 부처님을 가까이서 직접 보기 때문에 깨달음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약해져서 뒤로 물러나는 일이 없게 된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만약 저 부처님의 진여법신을 생각하면서 항상 부지런히 닦고 익히면 종국에는 극락에 태어나서 믿음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원효스님 소에는 ‘필경에 왕생하게(11단계 이상, 상사견, 41단계 이상)되어 정정(正定)에 머물기(견도 이상, 11단계 이상) 때문이다.’로 되어 있다.
Ⅵ 수행의 공덕
已說修行信心分 次說勤修利益分 如是摩訶衍諸佛秘藏 我已總說
若有衆生欲於如來甚深境界得生正信 遠離誹謗 入大乘道 當持此論 思量修習 究竟能至無上之道 若人聞是法已 不生怯弱 當知此人定紹佛種 必爲諸佛之所授記
假使有人能化三千大千世界滿中衆生令行十善 不如有人於一食頃 正思此法 過前功德不可爲喩 復此若人受持此論 觀察修行 若一日一夜 所有功德 無量無邊 不可得說 假令十方一切諸佛 各於無量無邊阿僧祗劫 歡其功德亦不能盡 何以故 謂法性功德無有盡故 此人功德亦復如是無有邊際
其有衆生於此論中毁謗不信 所獲罪報 經無量劫受大苦惱 是故衆生但應仰信 不應誹謗 以深自害 亦害他人 斷絶一切三寶之種 以一切如來皆依此法得涅槃故 一切菩薩因之修行入佛智故
當知過去菩薩已依此法得成淨信 現在菩薩令依此法得成淨信 未來菩薩當依此法得成淨信 是故衆生應勤修學
만일 어떤 중생이 여래의 매우 깊은 경지와 가르침에 대해서 올바른 믿음을 일으킴으로써 비방하지 않고 대승의 길로 나아가고자 하면, 이 대승기신론에서 설명한 가르침들을 생각하고 헤아려서 닦고 익히면 반드시 더없이 높은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사람이 이 가르침을 듣고 나서 깨달음에 대해 두렵고 약한 마음을 내지 않으면, 틀림없이 깨달음의 종자에 싹을 내고 키워서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수기를 받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온 세계에 가득한 중생을 가르치고 변화시켜서 열 가지 선행을 하도록 만들었다고 해도 한 끼 공양하는 시간에 이 가르침을 올바르게 사유한다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공덕이 크다.
또한 만일 사람이 이 기신론의 가르침을 잘 받아서 관찰하고 수행하기를 하루 낮 하루 밤 동안 한다면 그 공덕은 한량없고 끝이 없어서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각각 끝없이 무수한 세월 동안에 그 공덕을 찬탄한다고 하더라고 다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진여의 본 성품이 갖추고 있는 불가사의한 작용의 공덕이 끝이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의 공덕도 또한 끝이 없는 것이다. 어떤 중생이 기신론을 비방하고 믿지 않는다면, 그가 받는 죄의 과보는 끝없는 세월을 지나도록 엄청난 고뇌를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중생은 다만 이 가르침을 우러러 믿어야 할 것이요. 비방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자신을 깊이 해치고 또한 다른 사람까지 해쳐서 모든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그 가르침을 따르고 수행하는 사람들의 종자를 단절하기 때문이다.
또 모든 여래가 다 이 가르침에 의해서 열반을 얻기 때문이고, 모든 보살이 이 가르침을 통해서 수행하고 부처님의 경지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과거의 보살도 이 가르침을 통해서 그릇된 생각에 오염되지 않은 맑고 깨끗한 믿음을 얻었고, 현재의 보살과 미래의 보살도 당연히 이 가르침을 통해서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믿음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중생은 부지런히 이 가르침을 닦고 배워야 할 것이다.
회향 廻向
모든 부처님들의 심오하고 광대한 가르침을 내 능력껏 전체적으로 설명하였으니, 이 공덕을 법성과 같이 회향하여 널리 일체의 육도 중생계를 이롭게 하여지이다.
諸佛甚深廣大義 我今隨分摠持說 廻此功德如法性 普利一切衆生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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