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도를 구하고자 할진댄 마땅히 어떤 법을 닦아야 가장 뚜렷하고 요긴하겠습니까?”
“오직 마음을 관(觀)하는 한 가지 법이 모든 행(行)을 포섭하나니, 이를 뚜렷하고도 요긴한 것이라 부르느니라.
삼계(三界)의 업보(業報)는 오직 마음에서 생긴 것이니, 마음을 깨달으면 삼계안에서 삼계를 벗어나리라.
땅을 인해 넘어지면 땅을 인해 일어나거니, 땅이 너를 향해 무어라고 하겠는가?(因地而倒 因地而起 地向爾道什)
이 마음을 제하고는 따로이 부처를 찾을 수 없나니, 이 마음을 떠나서 보리(菩提)와 열반(涅槃)을 구한다는 것은 옳지 못하니라.
부처는 허물이 없건만 중생이 전도(轉倒)되어 자기의 마음이 곧 부처임을 깨닫지도 알지도 못하느니라.
자기의 마음이 부처인 줄 안다면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지 말지어다.
부처가 부처를 제도할 수 없는 것이니, 마음을 가지고 부처를 찾으면 부처를 알지 못하리라.
나고 죽는 일이 크니 헛되이 살아 버리지 말라.
진기한 보물이 산같이 쌓이고 권속이 항하의 모래만큼 많더라도 눈이 떠있을 때는 보이거니와 눈이 감긴 뒤에도 보이던가?
그러므로 유위법(有爲法)은 꿈이나 허깨비 등과 같은 것임을 알 수 있으리라.
삼계(三界)의 뜨거운 번뇌(煩惱)가 마치 불타는 집[火宅] 같나니 그곳에 오래 머물러 길고 긴 고통을 달게 받을 수 있으랴?
윤회를 면하려 하면 부처를 구하는 것만 못하니, 부처를 구하려 한다면 부처는 곧 이 마음이니라.
그러므로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중생들은 두루 관찰하건대 모두가 여래의 지혜와 덕상(德相)을 갖추고 있다.’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모든 중생의 가지가지 허환(虛幻)한 변화가 모두가 여래의 원각묘심(圓覺妙心)에서 나왔다.’하시니,
이로써 알라! 마음을 떠나서는 부처를 이룰 수가 없느니라.
마음의 성품은 물듦이 없어 본래 스스로 원만히 이루어 졌으니,
다만 허망한 인연[妄緣]을 여의기만 하면 곧 여여(如如)한 부처니라.
만일 알기를 바란다면 끝내 알지 못하리니, 오직 알려 하지 않을 줄만 알면 이것이 곧 성품을 보는 것이다.
보조스님의 옛말에도 있듯이,
도(道)란 아는 데 속한 것이 아니며 알지 못하는데 속하지도 않는 것이니,
안다는 것은 망상(妄想)이요, 알지 못하는 것은 무기(無記)이니,
만일 참으로 통달하여 의심하지 않는 경지는 큰 허공같이 넓고 끝이 없거니와 어찌 시비를 억지로 일으키겠는가?
‘티끌 번뇌를 활짝 벗어나는 일은 예사롭지 않으니, 고삐를 꼭 잡고 한바탕 애쓸 지어다.
한차례 추위가 뼈에 사무치지 않으면 코를 찌르는 매화향기 어찌 얻으랴.’하였으니
공부를 하되 가장 긴요한 것은 간절 절(切)자이니, 절 자가 가장 힘이 있느니라.
간절하지 않으면 게으름이 생기고 게으름이 방종(放縱)이 이르지 않는 곳이 없느니라.”
혜암 스님께서 이르신 것으로 저는 압니다. 만...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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