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성 있음을 믿고 *
주인공을 진실하게 믿고 거기에 모든 것을 일임하게 되면 왜 일이 잘 풀리는가?
그것은 근본 자리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힘이 우러나와서 유위의 법을 어루만져 주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자리는 본래 부동이지만 그 같은 나툼의 묘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체를 주인공에 맡기고 ‘그대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놓는다면 여러분은 분명 변화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앞뒤 좌우가 모두 꽉 막혀 어떻게 선을 써 불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이러 할 때 믿음이 흔들리고 공부가 뒷걸음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더욱 더 정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때에 깊이 새겨야 할 점은 언제 어디서나 여러분을 이끄는 것은 주인공일 수 밖에 없다는 믿음입니다.
그런 믿음이란 곧, 직면한 어려움이야말로 주인공이 나를 위해 공부를 만들어 준 것이라는 믿음을 뜻합니다.
그런 믿음만 있다면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염려할 것이 못됩니다.
왜냐? 어려움을 준 쪽에서 결국은 풀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불가사의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떠한 어려움에 봉착하더라도 완전한 믿음은 그 어려움이 얽힌 실타래를 깨끗이 녹여 버립니다. 믿음은 믿은 만큼 보답합니다.
일체는 믿는 이에게는 일체를 되돌려 주고 절반만 믿는 사람에게는 절반만 되돌려 줍니다.
주인공에 대한 철저한 믿음이 강조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사람의 뿌리는 모습이 없어 그것을 찾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무는 뿌리가 보이지는 않지만, 누구도 뿌리가 있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근본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자기의 뿌리를 믿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시작과 끝에 걸려 살기에, 태초가 따로 있고 종말이 따로 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본래는 언제나 영원한 오늘인 것입니다.
인간의 생사는 마치 옷을 입었다 벗는 것과 같아서 옷을 벗으면 죽었다 하고 새로 입고 나오면 살았다고 하지만,
실상은 끊어지지 않고 영원히 지속되는 것입니다.
그 끊어지지 않는 자리, 영원히 지속되는 불성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죽이든지 살리든지 만들어 놓은 당신께서 알아서 해결하시오!’ 하고 일체를 턱 맡기는 게 믿음입니다.
나는 죽는 것까지도 다 나를 있게 한 근본의 뜻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생활 중의 사소한 일 따위야 맡기지 못 할게 없습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믿는 사람은 드뭅니다. 내일 죽으면 어떻고 오늘 죽으면 어떤가 하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믿음이란 원력, 능력, 지혜, 영원한 밝음의 시작이자 회귀 처입니다.
물러서지 않는 믿음이야말로 모든 것을 다 갖춘 참 자기가 드러나게 하는 길입니다.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나를 보지 말고 네 자신 속의 너를 등불로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이는 많으나 그 말씀을 그대로 믿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그 말씀을 그대로 행하는 이는 더더욱 귀합니다.
부처님께서 목숨 얻기가 어렵고 불법 만나기가 더욱 어려운 중에 신심을 갖기란 더더욱 어렵다 하신 까닭도 거기에 있습니다.
믿고 물러서지 않는 마음이어야 부처님께서 함께하십니다.
여러분들은 스스로 ‘나는 중생이니까 고(苦)를 면할 길이 없구나.’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내게는 무한한 능력, 모든 것을 가능케 할 수 있는 재료가 다 갖추어져 있으므로 자신의 능력을 무시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무조건 믿으십시오. 물러서지 마십시오. 하늘이 무너지더라도 믿음에서 물러서지 말아야 합니다.
일체 만법이 바로 내 마음에서 나고 드니 주인공을 진실로 믿는다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주인공은 일체 만법을 해결할 수 있는 에너지이며 원소이며 핵입니다.
주인공에 모든 것을 맡겨 놓고 거기서 밖에는 해결할 수 없는 그런 이치라고 굳게 믿었을 때,
에너지는 속사포같이 한 찰나에 전달이 됩니다.
또 그런 믿음으로 주인공을 부르면 우주 전체가 한꺼번에 듣습니다.